728x90

 

 

훔쳐가는 노래 / 진은영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훔쳐가는 노래

 

nefing.com

 

 

 

고 천상병 시인의 추모 20주기를 맞아 제15회 천상병 시 문학상 수상자로 시집 ‘훔쳐가는 노래’의 저자 진은영(사진) 시인이 19일 선정됐다.

시상식은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올해로 제10회째를 맞이하는 천상병 예술제 기간(4월19~28일) 중인 27일 토요일 오후 2시에 함께 진행된다.

이번 시 문학상의 심사위원은 신경림 시인, 박수연 문학평론가, 고영직 문학평론가로 구성 되었다. 등단 10년 이상의 경력과 최근 1년새 시집을 발간한 시인을 대상으로 1차 15명의 후보작품을 심사하여 두 작품으로 압축하고, 2차 심의에서 최종적으로 진은영 시인의 시집 ‘훔쳐가는 노래’를 선정했다.

심사위원장 신경림 시인은 “올해로 20주기를 맞는 천상병 시상의 당사자로 진은영 시인이 결정되었다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진은영 시인의 시가 현실을 낯설게 만들고 그 낯섬 속에서 현실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천상병 시인의 초기의 현실성과 후기의 천진난만함에 대한 현재적 변형일 수 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천상병 시문학상의 역대 수상자는 1회 이상만ㆍ2회 한정옥ㆍ3회 박주관ㆍ4회 최정자ㆍ5회 이길원ㆍ6회 이수영ㆍ7회 김신용ㆍ8회 김유선ㆍ9회 김선우ㆍ10회 길상호ㆍ11회 박 철ㆍ12회 송경동ㆍ13회 박남준ㆍ14회 정한용 시인 등이다.

 

728x90

 

 

훔쳐가는 노래 / 진은영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훔쳐가는 노래

 

nefing.com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관하는 제21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에 진은영(43) 시인의 시집 '훔쳐가는 노래', 소설 부문에 김숨(39) 씨의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이 선정됐다.

 

희곡 부문은 '칼집 속에 아버지'를 쓴 고연옥(42) 작가, 번역 부문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영어로 번역한 최양희(81) 씨가 수상자로 뽑혔다.

 

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진은영 시인은 "이번 수상은 문학적 행운이다. 언제 또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궁핍한 순간에 찾아온 이 행운을 벗 삼아 좋은 시인이 되겠다." 소감을 내놨다.

 

진 시인은 "제 시는 누군가의 전범이 되는 종류의 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범이 되지 않는 문학의 소중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범이 될 수는 없으나 존재해야 하는 특별한 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저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진씨는 시집 '훔쳐가는 노래'로 한국시의 미학적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문별로 상금이 3천만5천만 원이었던 대산문학상은 올해부터 전 부문 5천만 원으로 조정됐다. 희곡과 평론 부문은 격년제 심사로 바뀌어 내년엔 평론 부문을 시상한다.

 

올해 시상식은 다음달 3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