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꽃 / 오늘
사랑하는 빨간 의자가 죽었다
휘청거리는 나무와 서서 바라만 보는 너와 너무하다고 하는 나, 접힌 페이지의 중간부터 불의 상징을 지나는 중이야 그러므로 나는 목각인형이야 한껏 줄을 비튼다고 해서 그게 춤이 되겠어 슬픔에 비트가 붙으면 더 빠르게 몸을 훑는데, 미는 힘이 부족해서 서로에게 갇혀 있나 봐 어쩌다 그늘을 열면 쪼그리고 앉아 있는 내가 보일 거야 내 낡은 손목을 기억하니? 자꾸만 엉키는 영혼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첫 페이지에 앉아서 빗줄기를 긋고 싶은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래 지상으로 묶인 줄이 풀리면 재빠르게 공중으로 사라지는 꽃의 사람들 어제는 목련의 줄이 풀렸고 오늘은 장미의 줄이 느슨해지고 있지 내 향을 기억하니 너의 하루에서 지우고 싶은 것이 뭐야 내 몸에 단물이 배어 있을 때 붉게 사라지고 싶어 난 사과를 먹을 거야 이제부터 짓는 모든 죄는 사과 때문이지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수상소감
괜찮다고, 등을 쓸어주시던 할머니가 유독 그리운 날들입니다. 말의 끝을 질질 끌며 할머니를 끌어안으면 울대 안으로 숨겨 둔 꼬깃꼬깃한 감정들이 할머니의 포근한 냄새에 맥없이 풀어지곤 했었습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품으로 파고드는 제 손에 효자손을 쥐여 주었습니다. 소파 밑에는 친지 분들이 주고 간 액수가 제각각인 돈 봉투가 많았는데 효자손으로 긁어 봉투 하나를 뽑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부러 빈 봉투를 넣은 꽝도 있고 얇지만 큰 금액도 있으니 잘 뽑으라고, 꽝을 뽑으면 계속 재수가 없는 것이고 꽝이 아니면 금액에 맞게 저를 위해서만 그 돈을 쓰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의 봉투는 단 한 번도 꽝이 없었습니다.
시를 잘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절대 표현하지 못했을 구절의 좋은 시가 미치게 부러워서, 내 시가 너무 초라해서 눈물이 난다는 제게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언젠가 제 시도 소중해질 거라고. 기쁜 곳에서 제 이름을 부를 거라고.
저는 여전히 좋은 시를 만나면 설레고 부럽습니다. 그 반짝이는 생각들이 욕심나서 마음이 까무룩해질 때가 많습니다.
제 잔에 넘치는, 지리산문학상을 부어주셨습니다. 몇 년 전 작고하신 지리산 시인 문길 선생님께서 계신다면 무척 기뻐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시를 봐주시고 제 이름을 기뻐하게 해주신 곽재구 선생님 정윤천 선생님 김중일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쁘고 황홀했습니다. 저의 시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저도, 저와 제 시를 이루는 사람들의 손에 효자손을 쥐어 주고 싶습니다.
모래폭풍이 지나도록 조용히 무릎 꿇고 낙타를 기다리던 날들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제16회 지리산문학상에 `오늘` 시인이 선정됐다.
지리산문학회와 계간 `시산맥`은 오는 10월 8일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릴 제16회 `지리산문학제`에서 시상할 지리산문학상에 오늘 시인이 선정됐으며, 수상작으로 `무서운 꽃` 등 5편이 최종 확정됐다고 밝혔다.
계간 `시산맥`과 `지리산문학회`가 공동 주관하는 지리산문학상은 시상금이 1,000만원으로, 전국 시인들이 선망하는 대표 문학상으로 도약하고 있다.
이번 제16회 지리산문학상은 곽재구 시인 등 심사위원들이 오랜 검토와 격론 끝에 오늘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심사위원들은 "오늘 시인의 시집 `빨강해`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큰 편차 없이 시적 호흡이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흥미로워 읽는 이를 시종 자연스럽게 집중시키게 하는 힘이 있다. 요컨대 한 편의 시를 넘어 한 권의 시집으로 판단했을 때 전반적인 요소에서의 균형이 고루 수준 높게 가장 잘 어우러지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심사배경을 밝혔다.
지리산문학상과 함께 공모한 제16회 최치원신인문학상의 당선작은 강다솜(1991년 서울 출생)의 `우리들에 관한 독서` 등 5편이 선정돼 같은 날 수상하게 된다.
본심은 곽재구 시인과 정윤천, 김중일 시인 등이 맡았으며 수상작품과 수상소감, 심사평 등은 계간 `시산맥` 가을호와 `지리산문학` 동인지에 소개될 예정이다.
지리산문학상은 시상 전년도 발표된 기성 시인들의 작품 및 시집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제로 운영된다. 지리산문학상은 함양군과 `지리산문학회`가 제정해 첫해 정병근 시인으로부터 유종인, 김왕노, 정호승, 최승자, 이경림, 고영민, 홍일표, 김륭, 류인서, 박지웅, 김상미, 정윤천, 조정인, 김참 시인 등이 수상했으며 엄정한 객관성 확보를 통해 전국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동안 `지리산문학제`를 주관해온 `지리산문학회`는 올해로 결성 59년을 맞는 중량감 있는 동인회로 성장했다.
함양과 지리산 지역을 중심으로 문학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며 매년 `지리산문학` 동인지를 발행해왔다.
문학회는 그동안 문병우, 정태화, 권갑점, 박철 등의 시인과 노가원, 곽성근 작가와 정종화 동화작가, 박환일 문학평론가 등을 배출했다.
이번 지리산문학상 수상자인 오늘 시인은 서울 출신이며 2006년 `서시`로 등단했다.
2015년 한국문예진흥기금 수혜, 2020년 제10회 시산맥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나비야, 나야`(2017년 세종우수도서)와 저서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멜랑콜리 연구`가 있다.
최치원신인문학상을 수상한 강다솜 시인은 이번 수상으로 계간 `시산맥` 등단자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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