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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활 / 조용우

 

 

문병을 다녀오는 길에 새 옷을 사기로 한다

 

벽장 속 셔츠들은 옷깃이 바랬고

오늘은 사야한다 새로운 흰 것을

 

여름의 아우렛 비어있는 리넨들은

간소하고 청결한 라이프 스타일을 권하고

 

너는 이제 그런 생활을 한다

얇은 옷 한 벌과 주머니 두 개로

 

마당 없는 병원 벤치에 간간이 내리는

미적지근한 볕을 받으며 너는

 

우리가 함께 좋아했던

좋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운이 좋았다, 좋다

라는 말을 번갈아 고르고

 

오늘도 너를 찾아오지 않는

우리를 여전히 좋아하는 척하면서

 

어떤 얼굴을 하얗고

어떤 사람은 점점

창백해져 가는가

 

하얀 것이 하얀 것을 더하지 못하

뻣뻣하게 구겨져갔다 나는

 

새로 산 셔츠를 벽장에 건다

버릴 옷들이 다시 버릴 옷으로 남겨진다

 

뿌옇게 젖어가는 깃과 깃

땀방울은 매일 차가운 목덜미를

투명히 흘러내리는데

 

 

 

 

2019 신춘문예 당선시집

 

nefing.com

 

 

 

[당선소감] "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시를 쓰고 싶다"

 

싫어하는 것, 사람에 대해 욕을 하는 기분으로 입을 다물고 읽고 썼던 적이 있다. 조롱과 분노는 조롱과 분노로 끝났다. 이러려고 시를 쓰나. 그렇지만 그것도 시였고 나는 나였다. 그렇게 시는 시, 나는 단지 나였을 뿐이었다.

 

시는 단지 시로 있을 수 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만으로 머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에게 가 있다면, 문학에게 문학이 있다면 충분한가. 혹은 진정성, 진실이라면, 문학은 충분히 문학이 될 수 있나. 시를 쓰는 것은 어떻게 진실한 일이 되는지. 그럼 진실한 문학을 했던 그 사람들은 대체 어째서.

 

문학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것.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문학에 관한 유용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을 읽고 쓰는 일,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 가볍고 쓸모없다면, 가볍고 쓸모없는 것이다. 그 무용함 뒤에 한 문장으로 덧붙여지는 유용한 역설을 나는 쓸 수 없다.

 

그렇지만, 그래도 계속 하자고, 함께 시를 쓰고 살자고 얘기해주신 임솔아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선생님이 계셔서 시를 쓰고 함께 사는 일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긍정할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겠지만 믿음으로 걱정하고 보살펴준 부모님, 동생에게도 오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내가 지닌 모든 이야기의 독자가 되어 주는 지원에게 온 기쁨을 보낸다. 함께 웃고 떠들 수 있어서 연습 없이 쓰고, 살 수 있었다.

 

문학으로 던지는 물음 뒤에 숨지 않겠다. 문학에게만 진실을, 폭력을, 무지를, 아름다움을 내맡기지 않겠다. 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은 시를 쓰고 싶다.

 

 

 

 

[심사평]

 

올해 중앙신인문학상 본심 대상작들은 수준이 고르고 높았다. 본심 작품을 여러 차례 고심하며 읽었다. 최종심에 오른 것은 이영원, 남수우, 조용우 등 세 분이다. 세 분의 응모작들은 개성적인 경험의 포착, 발상의 창의성, 이미지의 조형력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 분 중 누가 당선되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작은 차이로 당락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영원의 '어제의 최선, 오늘의 바이킹'은 어제와 오늘, 노인과 청년 세대가 공존하는 공구 상가의 오후 풍경과 최선을 다하지 않는 세계의 우연한 일들을 묘사한다. 모호함을 뚫고 나오는 시적 전언은 명료하고, 시의 화법은 자연스럽다. 수미쌍관(首尾雙關)하는 유기적 관련성이 느슨하지만 손에서 내려놓기 아쉬울 만큼 매력이 있었다. 남수우의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이 거울이 마음에 든다'한 사람에게 가장 먼 곳은/자신의 뒷모습이었네라는 첫 구절이 인상적이다. 누군가 떠나고 홀로 남은 거실을 배경으로 펼쳐진 거울과 자아의 백일몽, 그 심리 드라마는 공감이 되었다. 또렷하게 도드라지는 한 줄의 통찰력 부재와 사소한 것을 전체에 그러 매는 고리가 약한 점이 지적되었다.

 

두 심사자가 당선작으로 선택한 것은 문병(問病)과 새 옷에의 욕구가 교차하는 일상을 그린 조용우의 '새로운 생활'이다. 바랜 옷깃을 두고 생활의 느낌과 사유를 교직하는 시의 세계는 작다면 작다고 할 수 있겠다. 때 타고 구겨지는 생활에서 청결한 라이프 스타일을 향해 뻗치는 청신한 감각이 그 작은 세계의 평면성을 뚫고 나온다. “하얀 것이 하얀 것을 더하지 못하고”, 버려지거나 남는 것이 옷만의 일은 아닐 테다. 사소함 너머를 붙잡는 촉()의 풋풋함, 사유의 명료함, 들뜸이나 과장이 없이 자기의 세계를 거머쥐고 들여다보는 시선의 깊이가 놀라웠다.

 

심사위원 본심 고형렬·장석주(대표집필 장석주) / 예심 김수이·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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