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 강지이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매우 조용한 공간이 나타난다 먼지가 쌓여있는 침대 불이 들어오지 않는 복도 어떤 단어든 소리 내어 말해도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지는
저 침대에 누워 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누워서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 같다
침대에 누워
누군가를 기다리는 과정
옷깃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고
안구엔 먼지가 천천히 내려앉는다
아무도 이곳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알코올 냄새와 같이
누워 있다
[당선소감]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밝혀주는 일 계속할 것
삶을 뒤흔든 책이 있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다. 책의 주인공은 말한다. 자신의 존엄을 지켜준 건 “너는 돌아올 거야” 라는 말과 눈처럼 새하얀 손수건이었다고. 나는 시가 이와 같은 것이라고 여겨왔다. 그리고 이름이 지워졌지만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것, 그것들을 부르고 싶었고 그게 시가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시는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큰 영향력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시가 가지고 있는 찬란함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전부 소멸하더라도 그 쓸모없는 찬란함은 오히려 고유의 빛을 내며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밝혀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형태의 부당한 폭력이나 차별에 반대한다.
고마운 사람들이 아주 많다. 권희철 선생님, 김경욱 선생님, 장석남 선생님, 허윤진 선생님에겐 쓰는 기쁨과 그 이상의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강화길 조교님과 서창과 친구들. 할아버지, 할머니, 성미, 정숙, 미숙이모, 나의 엄마 허원정 배우님과 고양이들. 이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회를 주신 중앙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심사평] 상황과 조율된 언어의 넓은 정적 돋보여
총 788명의 투고작 가운데 14인의 작품을 넘겨받아 본심을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조주안·권명규·강지이씨의 작품이 논의되었다. 조주안씨의 작품에 나타나는 죽음과 시원, 탄생과 실종의 긴 시간과 먼 공간에 이르는, 드물게 확장된 시선에 대한 논의가 먼저 있었다. 가령 ‘자라나는 꽃병’에서 “움직일 기미가 없”는 꽃병이 “먼 곳을 응시”하는 장면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기원과 중심에의 서사적 상상이 현상에 더 밀착, 개방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권명규씨의 ‘우울의 유행’은 일상에 깃들어 있는 무차별적이고 불가해한 상실이 우울의 방식으로 전염되는 과정을 시적 압축과 더불어 산문적 디테일로 그려낸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우울의 세부 묘사가 흡인력을 갖는 화면들로 과감하게 펼쳐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논의는 강지이씨의 구체성과 몽환성, 선명한 이미지와 신비한 여백 쪽으로 기울었다. 상황에 잘 조율된 언어의 넓은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당선작 ‘수술’은 수술을 기다리면서, 의식이 꺼지기 직전의 짧은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어떤 단어든 소리 내어 말해도 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지는” 그 순간에 시가 들어서는 정밀함이 돋보였다.
심사위원 본심 고형렬·이수명(대표 집필 이수명) / 문태준·조재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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