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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조성식
 

 

집에 들어서면 대문 옆에 헛간이 서고처럼 서 있는데 처마 끝에 도서 대여목록 카드처럼 여섯 자루의 호미가 꽂혀 있다. 아버지 호미는 장시간 반납하지 않은 책처럼 한번 들고 나가면 며칠씩 밤새고 돌아온다. 산비탈을 다듬는지 자갈밭을 일구는지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자루만 조금 길면 삽에 가까운 호미, 그 옆에 어머니 호미는 가장 많이 빌려 보는 연애소설 같다. 테이프 여러 번 붙인 표지에서 파스 냄새가 난다. 빛나는 손잡이에 밥주걱의 둥근 날을 가진 넉넉한 호미, 땅을 파는 일보다 아버지가 파 놓은 흙을 다시 훑어보는 돋보기 알 같은 눈 밝은 호미, 나란히 서 있는 아내와 내 호미는 주말이나 가끔 들고 나가는 장식용 백과사전, 철물점 쇳내도 가시지 않은 두 자루 쇳덩어리, 제대로 땅 한 번 파지 못하고 마늘이나 고구마 살점만 물어뜯는 날선 칼날, 그 옆에 장난처럼 걸려 있는 아이들의 호미가 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밭에 나가실 때 말동무로 따라 나서는 동화책같이 착한 호미가 한집에 산다.

 

 

 

 
[당선소감] '호미 손잡이 빛낸 부모·이웃이 스승'


호미가 시의 선생님입니다. 호미의 손잡이를 빛나게 하는 아버지 어머니, 함께 땅을 파는 이웃들의 갈라진 손금이 시의 스승입니다. 시는 쓰는 게 아니라 그려야 한다고, 팔순의 어머니 눈에 선하게 읽혀지는 시. 그 밑그림에 색만 덧칠하는 것이 저의 몫입니다.


시와 꽤 오랫동안 함께 걸었습니다. 내가 먼저 불평을 했고 이별을 고한 적도 있었습니다. 시는 아무 말 없이 그림자처럼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무거운 제 몸에 시가 날개를 선물합니다. 이제 내가 시를 등에 업고 이웃들에게 날아갑니다. 무디고 날카로운 세상의 일을 다 받아주는 땅으로 시의 뿌리를 내리고 싶습니다. 당선 소식이 늦게까지 잠 못 이루게 합니다. 소주잔에 기쁨 반 두려움 반을 따라 마십니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비무장지대 동인들과 시의 라이벌 은기찬 형, 시 쓰기에 늘 격려해주신 이정록 형과 밤늦도록 술잔을 비우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조준희 조은진, 아빠가 오늘처럼 행복할 때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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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호미와 도서관 카드 결합한 발상 참신'


본심에 올라온 응모작들이 비교적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을 버리고 어떻게 세상을 새롭게 보는가에 심사의 초점을 맞췄다. 시의 값은 세상과 사물의 내면에 숨어 있는 비의(秘意)를 캐내는 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풍경〉은 시를 다루는 솜씨가 퍽 세련돼 있다. 삶의 갈피에 품은 신비성과 아픔 등이 거슬림 없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소재의 진부성과 새로운 시각이 부족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2007 몽유도원도〉는 비교적 새로운 구성법과 다양한 상상력을 거느리고 있으나 다소 산만한 느낌이 들어 최종선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가족〉을 당선작으로 뽑기로 했다. 도서관의 카드목록과 농기구인 호미를 결합해 시를 구성한 발상이 매우 참신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가지의 사물을 매우 절묘하게 합성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새로움과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했다. 가족의 분열 현상으로 따뜻함을 잃어가는 현대의 을씨년스러움을 극복하고 가족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통해 가정의 포근함을 회복하려는 숨은 메시지도 이 시대에 매우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도 구성의 단순성이 지적되었다. 좀더 많은 사유와 상상적 세계를 구축하는 힘을 기른다면 매우 좋은 시인이 될 것으로 심사위원들은 믿는다.

 

심사위원 문효치·신규호·손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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