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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 공원묘지 / 정재학

 

 

곤충들이 내 머리로 몰려든다 죽은 줄만 알았던 이 숲, 땅에서는 개미집 냄새가 질척이고 낙엽들은 흰 가지를 붙들고 있었다 귀로 들어온 딱정벌레 하나 출구를 찾지 못하고... 나는 귀를 막고 걷는다 몇 마리의 벌레가 떨어졌다 나는 죽은 벌레처럼 말라 흙이 되고 싶었다 이곳에서도 난 자유롭지 못하다 이 길은 분명 흐르고 있다 길을 막고 있는 묘비들을 뚫고 얼굴 없이 심장만 두 개인 사람들의 행렬을 뚫고

 

이곳에서 나는 뒷모습으로 걸었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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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박인환문학상 선정이유서]

 

5회 박인환 문학상 수상작으로 정재학의 빌딩 숲 공원묘지4편과 특별상으로 김언희의 예를 들면4편을 선정한다. 올해로 5회가 되는 박인환 문학상은 강원도 인제 출신으로 1950년대의 대표 시인 박인환의 시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젊은 시인에게 주어진다. 박인환은 우리 모더니즘 시학을 발전시키고 전후의 암담한 현실을 지적으로 노래하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은 개성적인 시들을 발표했다. 한 마디로 그의 시정신은 투철한 현실 인식을 토대로 언제나 새로워지려는, 그런 점에서 모던한 태도로 요약된다.

 

어느 시대나 문학과 예술은 이렇게 모던한 태도를 지향하는 집단과 전통을 지향하는 집단으로 양분되고 따라서 문학은 보수 미학과 진보 미학의 대립, 갈등, 변증법적 긴장에 의해 발전한다. 사실 전통과 반전통,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의 긴장, 대화, 만남은 얼마나 아름답고 역동적인가? 최근의 우리시는, 특히 많은 젊은 시인들의 시는 이상하게도 이런 역동성을 잃고 전통적 서정시로 퇴행하는 느낌이고 그런 점에서 시대착오적인 시들이 판을 치고 있다. 젊은 시인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중견, 노장들도 인생은 21세기를 살면서 시는 농경시대로 퇴행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런 아이러니를 극복하는 것도 박인환 문학상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심사위원들은 보수적인 시인들보다는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시인들의 작품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김언희는 1989[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후 시집 [트렁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를 펴내면서 세기말의 내면을 반영하는 섬뜩한, 징그러운, 정체불명의 요리 같은 시들을 발표하고, 그가 우리시의 역사에 기여한 건 이런 그로테스크 미학이다. 그는 지금도 우리시의 역사를 비틀고 숨막히게 하고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일부에선 그의 시를 엽기적이라고 비판도 하지만 엽기도 엽기 나름이다. 예를 들면 이번에 특별상으로 선정한 '예를 들면'의 경우 그의 엽기는 흥미 본위의 변태적인 기이한 이야기가 아니라 상투적인 상상력, 고상한 문학, 인습적인 시쓰기에 대한 미적 비판을 노린다. 주어가 생략된 서술 형식, 혹은 비유를 구성하는 취의와 매재 가운데 취의, 곧 말하려는 것을 생략한 이런 문체는 충분히 새롭다. 그렇다면 왜 특별상인가? 그건 그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경력이나 시단의 위치는 박인환 문학상 심사 대상의 시인들보다 한 세대 위라는 느낌이고 따라서 별도의 특별상을 마련했다.

본상 수상자인 정재학은 1996[작가세계]로 등단한 이후 올해 첫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를 펴내면서 시적 능력을 인정받은 매우 전위적인 시를 쓰는 젊고 유능한 시인이다. 촛불로 밥을 짓는 어머니도 그렇지만 한 마디로 그가 노래하는 것은 죽어가는, 아니 이미 죽은 현대이고, 그런 현대를 표상하는 도시이고, 이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청춘의 악몽이다. 그에게는 악몽이 현실이고 따라서 그의 시는 이 악몽 속에서 악몽과 함께 악몽을 뚫고 나가려는 고통의 기록이다.

 

악몽이 낯선 문체, 낯선 상상력을 낳는다. 수상작 '빌딩 숲 공원묘지'만 하더라도 그의 악몽 의식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가 사는 도시는 빌딩 숲이고 이 숲에는 공원이 있지만 그 공원은 무덤이다. 그가 마른 도시에서 만나는 것은 아름다운 공원이 아니라 징그러운 공원묘지이다. 이런 공간에서는 머리로 곤충들이 몰려들고, 개미집 냄새가 질척거리고, 귀로 딱정벌레가 들어오고 그는 귀를 막고 걷는다. 요컨대 이곳에서 그는 자유롭지 못하고 결국 뒷모습으로 걷는다. 그가 노래하는 것은 얼굴이 사라진, 정면이 보이지 않는, 마침내 군중들이 묘지가 되는 그런 끔찍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공간을 사랑하자. 삶은, 인생은, 도시는 그렇게 아름다운 게 아니다. 글쓰기는 무한한 헤어짐의 고백 속에서 타자를 향해 가는 자기의 찢김이라고 말한 철학자는 누구인가?

 

심사위원장 허만하, 이승훈, 윤호병

 

 

 

 

모음들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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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강원도 인제군지부는 올해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정재학(31)씨를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한국문인협회 인제군지부와 계간 시전문지 `시현실'이 인제 출신으로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인 고 박인환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박인환 문학상은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정씨는 서울 출생으로 지난 96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으며 수상작품은 `빌딩숲 공원 묘지'이고 최근 시집 `어머니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를 펴냈다.

 

시상식은 105일 제5회 박인환 문학제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인환 시인은 1926년 인제에서 태어나 서울 종로에서 서점 `마리서사'를 운영하면서 시 `남풍'을 발표했으며 195631세의 나이로 요절할때까지 `세월이 가면'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편 인제군은 박인환 시인의 선양사업을 추진, 인제읍 상동리 산촌민속박물관 인근 박인환 시인의 생가터를 중심으로 기념 공원과 전시관 야외무대 광장 등을 조성중이며 2006년 완공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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