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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지역 / 정경미

 

 

굴피집 처마 끝에서 포크레인이 홰를 친다

노란 살수차가 산동네의 새벽을 깨우며

을씨년스런 거리를 적신다

콘크리트 더미에서 요란하게 터져 나오는

철지난 전화부가

다이얼을 돌리며 안부를 묻는 동안

재개발 택지 분양 프랭카드는

부푼 몸을 날리는 햇살에 눈을 뜬다

비닐 하우스의 골담초는

봄을 기다리며 세간들을 살피고

떠도는 개똥지빠귀새 추운 어깨에

살풀이구름이 내려앉는다

찢긴 연체료 고지서가 수화를 건네며

검은 입술에 묻은 상처를 펄럭이고

왼쪽 어깨가 밀려나간 외등이

백밀러 속으로 뒷걸음질 친다

멈춰버린 괘종시계는 언제나

뜨거운 한낮에도 저무는 하늘을 가리킨다

팽팽한 오후가 하수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골목길은 말 잔등처럼 출렁거리며

어두운 길목에서

희미한 등불을 켜고 있다

 

 

 

 

어린 철학자는 꽃이 지는 이유를 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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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뙤약볕 내려 쬐는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왔습니다. 발이 부르트는 지경에서도 시에 대한 믿음 하나로 마다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시를 향한 우직한 집념으로 더러는 흔들리는 걸음걸이로 더욱 시에 대한 오기와 열정을 용솟음치게 만들었습니다.

 

한때는 바닥이 두껍고 편안한 신발을 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에 대한 절명의 애착 때문에 외로운 수행자의 고행처럼 세속적인 소망을 애써 저버린 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결코 앞으로도 평탄한 걸음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름다움만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노래한 키이츠의 행로를 따라 걸어갈 것입니다.

 

가장 진실한 지혜는 사랑하는 마음이라 여겨왔습니다.

 

신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그곳에 빛나는 시의 소재가 숨어있고 현란한 관념과 이미지가 내재해 있음을 깨달아 왔습니다.

 

그것이 곧 진실의 표정이요 지혜의 속내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다짐해 왔습니다.

 

당선 소식을 접하자 문득 봉숭아꽃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어릴 적 봉숭아꽃 속에는 시의 텃밭이 되어 주신 아버지의 영상이 겹쳐져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세상을 버리신 아버지께서 사랑과 망각을 깨우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8년 전 가을 어느 날 봉숭아꽃이 피었다고 나들이 오라시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그리움의 울타리 안에서 피어오릅니다.

 

부족한 글을 눈여겨 살펴주신 경인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부르튼 맨발을 말의 붕대로 감싸주신 하현식 교수님과 이신정 시인을 비롯한 문우들과 악동님께 감격을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고집스런 시의 길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준 가족들과 아들 성로, 그리고 올케 송인숙 님께 고마움을 전하면서 이 영광을 아버지 영전에 드립니다.

 

 

 

 

차라투스트라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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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시인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이번에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좋은 시와 좋은 시인이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 원래 그저 좋은 것은 희귀하게 마련이지만 시의 기본적인 품격조차 갖추지 않은 시의 과도한 생산은 시의 위력과 본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 볼 일이다. 영상 매체의 발달에 따라 활자 매체의 존립 근거가 퇴색해 가고 있다는, 단순하고도 문학 외적인 진단에 의한 시의 위기론보다는 좋은 시의 위기를 우려해야 할 시점이 지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좋은 시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시는 기존의 시적 상상력을 무너뜨리고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언어 표현이 생기를 얻을 때 발아한다. 단 한 편만 뽑는 신춘문예를 의식해서일까. 모두들 수준이 엇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오래된 집'은 크게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한 시다. 시에서 감정을 제어하는 능력도 오랜 수련의 결과로 생각된다. 하지만 소품이라는 점이 끝내 마음에 걸렸다. 때로 시의 스케일을 크게 잡아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밥상'은 발상이 참신하고 평범한 소재를 평범하지 않게 그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시를 세밀하게 다듬는 데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듯하다. 난데없는 돌부리들이 곳곳에 출현해 시의 품격을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마장 풍경''철거지역' 두 작품을 놓고 고심했다. 앞의 시는 세상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바탕으로 시에 삶의 온기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있다. 군더더기가 거의 없고 감각적 표현도 아주 볼 만하다. 하지만 어디에선가 본 듯한 몇몇 이미지들이 신선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당선작으로 고른 '철거지역'은 주체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한 객관적 묘사의 시다. 특별히 눈에 띄는 표현은 없지만 안정적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는 점이 믿음직스럽다. 상처 입은 것들에 시의 렌즈를 들이대는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지속적으로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드린다. 

 

- 심사위원: 정희성,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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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 정경미(정미경)

 

 

빵부스러기를 끌고 가는 개미
개미 가는 길을 신발로 가로막지 마라
끓어질 듯 가는 허리에 손가락을 얹지 마라
죽을 때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 한 마리가 손등으로 오른다
언젠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아버지
바짝 마른 허기가 만져질 것이다

아버지는 털털거리는 생선 트럭을 끌고
돌무지 비탈길을 누비고 다녔다
생선 상자 위로 쏟아지는 땡볕
신경질적으로 바퀴를 두드리는 돌덩이들
왕왕거리는 메가폰 소리를 뚫으며
식식거리며 아버지는 나아가고 있었다
거친 시동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괜찮아, 내 허리띠를 붙잡아라
그날도 아버지는 덜컹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손등에 오른 개미를 가만히 내려놓는 당신
개미 앞길에 놓인 돌멩이를 치워준다
멀어져 가는 아버지,
당신의 눈 속으로 기어든 개미가
시동을 건다 여섯 개의 다리가 붕붕거린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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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詩作은 ‘현실 감각 무딘 꿈꾸기’

시를 쓰는 그녀는/조금씩 거미가 되어간다네/무언가 걸려들 구석구석에/시신경에서 실을 뽑아 줄을 친다네//가랑잎 걸렸으면 어쩌나/괜찮은 요리감이 걸렸어야 하는데/겨울이 흘려놓은 사연을/폐부 깊숙이 삭히면서/흑백 필름에 빗줄기 서는/기억을 얇게 펴면서/숨죽여 먹이감을 살핀다네//우두커니 앉은 사람 곁에서/칭칭 하루종일 실을 감기도 하고/포크레인 거친 손아귀에 실 엉켜도/눈길 가는 곳이면 거미줄을 친다네/가정법원에 뛰어 들어가/차갑고 미끄러운 대리석에 씩씩거리며/몇 번인가 줄을 친 적도 있다네//오늘도 그녀는 아테나 여신과/최고의 직물짜기를 시합한 아라크네처럼/몸뚱어리로부터 거미줄을 뽑아내다가/뒤엉킨 거미줄을 둘둘말아 잠이 든다네/그 모습이 불후의 시 한 편이라네.(거미시인)

‘간절한 꿈꾸기는 그 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물이 도와주려 아우성친다’는 문장을 붙들고서....나는 꿈꾸기를 좋아한다. 계속해 나간다. 그 꿈꾸기가 나를 밝히고 곁의 사람들에게 밝음으로 다가가기를 꿈꾸는 것이다. 이런 현실 감각 무딘 꿈꾸기에 힘을 북돋아주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시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속 끓이신 김명인교수님과 시모임 선생님들 또한 늘 의지가 되어주는 블루마운틴과 고마운 친구들과 이 기쁨을 같이하고 싶다.


부족한 시에 텃밭을 허락해 준 신문사와 이제부터는 심호흡하여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발성을 하라고 선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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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정신 내적인 질박함 구축 돋보여


다섯명의 응모작품이 최종선까지 남았다. ‘사마천을 읽다’외 4편의 경우 군더더기 없는 시어들과 이미지활용이 눈에 띄었다. 반면 전통적인 소재의 선택이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확인작업이 미흡해 보였다.


‘궁지댁’외 4편의 응모작은 걸죽한 입담속에 스며있는 삶에 대한 따뜻한 인식이 돋보였으나 이들로써 현대시의 내외적 질량을 채우기에는 아무래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술’외 5편의 응모작품은 탄탄한 습작기를 거치는 과정의 작품이라 생각되었다.


특히 거친듯하면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생동감을 주었으나 시어와 이미지의 구성력에 있어 치밀한 미적 정제의 과정이 더 요구되어 보였다.


‘노래가 있는 풍경’과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의 두 응모작은 서로의 장단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노래가 있는 풍경’의 경우 크게 드러내는 목소리는 없으나 시의 외장이 세련되게 보였다. 평범한 일상속에 스며있는 삶의 의미를 바라보는 분은 예비작가로서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신뢰감을 주는 바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가벼운 발상과 풍경의 터치가 신인의 목소리로써 그 울림이 작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의 경우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외장을 지니고 있다. 아버지의 노동을 매개로 한 개미의 상상력은 어딘지 진부한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삶을 정통적인 방식으로 바라보려한 고지식한 작가의 눈은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는 바가 있었다.


동봉한 ‘돈 안되는 쑥개떡’ ‘황태덕장에서’와 같은 시편들에게도 이런 질박한 시선은 동일하게 존재했다.


많은 망설임 끝에 선자는 ‘개미는 시동을 끄지 않는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세련되고 자유로워 보이는 외장대신 시정신의 내적인 질박함을 택한 것이다. 삶의 내종까지 끝내 밀고 가는 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 탓이기도 하다.


삶의 끝까지 시동을 끄지 않는 개미의 탄탄한 노동처럼 생의 매순간 순간 시의 정신을 추스려 나가는, 거칠면서도 내실있는 목소리를 현대시의 나약한 울림에 경종을 주는 시인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곽재구(시인·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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