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를 펼치다 / 오장근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서편에서 울던
갈가마귀떼가 동편으로 분주했다 한점
멀리 갈대밭에서 사내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오랜 슬픔같은 그의 아쟁이 등뒤에서 먹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그의 두 눈 속으로
노을이 설핏 지고 있었다 낯선 그의 발자국 소리로하여
야트막한 강 언저리에서 몇몇 물고기들이
물밑으로 잠수하곤 하였다 미세하게 출렁이는 강물과 함께
그의 아쟁도 바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울고 있었다
그의 산발한 머리카락과 어깨를 잘 익은 어둠이 감싸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아쟁을 풀어 내렸다 어둠 속에서 아쟁만이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아쟁의 가는 현이 아주 낮게
동심원을 그리자 강물에 한 발을 담그고 있던
풀들이 춤을 추었다 갈대들이 불타올랐다
그의 모든 현들이 몸을 놓아버렸을 때,
일곱 마리의 용들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먹구름 속에서
마른 번개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지상으로 일제히 꽂히고 있었다
동편에서 분주했던 갈가마귀떼가
그의 앞에서 무작정 내려앉고 있었다 강물 깊숙히 잠수했던
물고기들이 차례차례 물길을 차고오르며 수면으로
솟아올랐다 검은 현 사이사이로 은빛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며
수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당선소감]
백석을 생각했던 것, 높고 쓸쓸한 이상(理想), 그러면서도 가장 낮은 데로 흩날리는 눈들이 생각처럼 내리는 날이면 가끔, 나도 포족족하니 ‘여우난골族’에 젖기도 했던 것, 시처럼 살았던 그의 발그림자를 따라가다 보면 난데없는 담 밑에 피어있는 그림자꽃이 알 수 없는 사투리로 피기도 했던 것. 허영허영 저 홀로 꿈넘어가는 시인이여! 나에게도 그대의 꿈한자락 잘라주시라.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흰머리의 의미를 묵묵히 알게 해준 아버지, 어머니, 언제나 비껴갈 수 없는 아픔이란 이름이여. 내 삶의 나침반이었던 무거움의 다른 이름 석근형, 한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준 수근형, 그리고 동심원처럼 커지는 가족이란 나이테여, 지금 당신들 이름에 입김을 불어넣어보는 것.
웃음의 중심을 가르쳐주신 장인어른, 지혜의 끝 간 데를 항상 굴리고 계신 장모님, 나의 가장 처음과 마지막을 관통하고 있는 아내 임효진, 씨앗의 의미로 사무치는 나의 아들 창헌, 그들 이름에 축복 있으라!
문학의 꽃대궁을 깊숙이 숨기고 있다가도 불쑥불쑥 나태해진 나를 향해 매운 향기를 날리는 종필형, 문학과 삶의 어쩔 수 없는 도반(道伴) 종호, 한결같음의 또 다른 이름 병희, 사과 같은 풋풋함의 청필, 있음의 없음, 없음의 있음 석우, 그리고 내 문학의 근원 글바람문학회, 선배들과 후배들, 모두들 가는 길에 꽃길 있으라!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선생님과 한국문학의 제사장인 박상륭, 그의 작품들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것, 그의 작품들은 살아있는 칼날이요, 경전이며, 스승일지니….
아, 문학의 도가니에 얼음꽃이 난만하다!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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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사물에 대한 통찰력 돋보여”
예심을 거친 170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려졌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시의 구조와 언어의 쓰임이 탄탄한 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산문성이 짙고 장황한 사설로 압축미나 주제의식이 결여, 그리고 신인에게 요구하는 개성과 신선함의 부족도 흠이었다.
최종적으로 이와같이 지적된 문제점들을 가장 최소화시킨 작품으로 ‘딱따구리 경전’ ‘대추나무 집’ ‘노인과 그 가문’ ‘李賀를 펼치다’가 집중적으로 검토됐다.
‘딱따구리 경전’은 언어의 쓰임이 깔끔하기는 하나 주제의식이 가볍고 ‘대추나무 집’은 언어를 아껴 쓸 줄 아는 시적 긴장이 요구됐다.
‘노인과 그 가문’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돋보인 반면 이미지나 구성에서 새롭지 못한 게 아쉬웠다.
결국 사물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 언어로 드러내보이는 통찰력과 따뜻한 시선, 그리고 개성있는 목소리로 시를 다뤄가는 솜씨가 돋보인 ‘李賀를 펼치다’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앞으로 등단작에 못지 않는 좋은 시 쓰기만을 고집하는 시인이 되기를 바라면서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허형만 목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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