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속에서 길을 잃다 / 김경옥
빌딩 숲 어디에 새가 살고 있나
호르르르
호르르르
어느 구석에서 노랫소리 올라온다
(짝을 부르는)
긴 부리 아래
목울대 출렁이는 소리다
푸른 물 위, 깃을 스치며
한 마디 두 마디 가슴선 그려
저수지를 건너오던
빛깔 고운 청호반새
무너진 산허리 붉은 황토
절벽에 지은 구멍집 드나들던
그 새 소리다
탁, 무슨 새? 몰라 그런 거
그냥 벨소리보다 이게 좀 낫잖아
나 떠난 뒤
도시로 팔려와
핸드폰 속 전자음으로 갇혔구나
등허리에 디미는 칼
아프게 밀려오는 그리움
작은 눈 아득하게 감긴다, 돌아보니
사방에서 들린다
휘파람새, 동박새, 오목눈이 울음소리.
[당선소감] “새로운 인식.미학적 깊이 고심”
머리에 허옇게 디디티를 뿌리고, 껴입은 겨울 내복을 뒤집어 솔기마다 이약을 묻혀 바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성이 아닌 모든 것을 박멸해나가던 대학시절엔 논리의 각이 좁혀지고 날이 예리해지면 진보는 한 치의 착오도 없으리라 믿었던 것일까. 우리는 철망 속에 갇힌 닭들처럼 끝없이 서로를 쪼아댔다. 낭자하게 피가 흐르고 마침내 내장이 꺼내진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끝없이 쪼고 분해하던… 그 어느 때쯤이었을 것이다. 몸에서 잘 떨어지지 않으려던 시를 억지로 떼어냈던 것이.
언제인가부터 그런 날들이 무망해 보이기 시작했다. 살충제, 제초제의 범람에도 해충과 잡초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용케도 멸종을 피한 서정이나 쓸쓸함, 상상력 따위가 몇 올 살아있었다. 부끄럽고 안쓰러웠다 쓸쓸해 할 겨를도 없이 살아온 나날들이. 그 작은 이파리들에 입김을 불어가며 키워보았다. 이것들이 제대로 자라줄려나, 씨앗을 맺어줄려나, 걱정했는데 희소식이다.
시가 새로운 인식의 범위에 든다는 말을 아직도 온전하게 내 것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나는 말할 수 있다. 미학적 깊이 없이 사람의 깊이나 올바름의 깊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올라갈 길 아직 멀다. 하마 산허리쯤 올라왔나보다.
[심사평] “참신한 발상.신선한 이미지 관심”
많은 사람들이 시(詩)의 시대는 끝났다고 입을 모아 비쭉대고 있다. 하지만 신춘문예 응모작 수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올해 무등일보 신춘문예에는 무려 750여편이 응모됐다. 응모자의 직업도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주부, 교사, 자영업자 등으로 다양했다.
결심에 오른 작품은 6편이었다. 김경옥의 ‘빌딩 숲 속에서 길을 잃다’, 박자경의 ‘氷魚’, 이종숙의 ‘길 위의 식사’, 금별뫼의 ‘소리의 집’, 김범남의 ‘마음의 소도’, 임해원의 ‘칠불사 일주문 앞 연못에는 간짓대 하나 걸쳐져 있다’ 등이다. 모두 일정한 예술성과 나름의 문제의식을 지닌 작품이었다.
비유도 화사하고 리듬이며 구성도 정밀한 이종숙의 시는 충분히 뛰어난 심미적 세공을 거친 작품이었다. 하지만 함께 응모한 작품들이 뒤를 받춰주지 못한데다 소재가 다소 낡은 점 등이 한계로 거론됐다. 박자경의 시는 문제의식을 지녔으며 시를 열고 닫는 솜씨도 좋았다. 그러나 주제가 지나치게 노출돼 있고 구성이 단조롭다는 점 등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근대적 삶의 실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는 김경옥의 시는 참신한 발상과 신선한 이미지 전개 등의 면에서 두루 관심을 모았다. 도시 문명의 현실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적 자아가 안간힘으로 뒤돌아보고 있는 자연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이 정서적 주조였다. 리듬이 다소 거친 점 등 한계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신진 시인으로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선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숙의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축하의 말을 전하며, 더욱 정진해 세계적인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은봉, 김선태(시인·광주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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