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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인드라망 / 이선

 

 

차 한 잔 들고 창가로 가면

맞은편 101동이 성큼 다가온다

먼 나라에서 내려오신 함석지붕들

푸른 하늘 모래알 이야기를 받아 적느라

자글자글 삼매에 빠졌다

꼼꼼하게 써 내려간 경문들

구절구절 기왓장마다

흐르는 법문이 팔만이겠다

이렇게 우리 마주 보는 거울이듯

모든 동과 세대들

주고받는 선문답이 무량이겠다

구구절절 날아드는 비둘기들

벽에 갇힌 창문들도 틈틈이 귀를 열고

질서정연하게 밖으로 향해 있다

한 치 흔들림 없는 수평의 감각으로

층층이 견뎌내고 있을 천장들

모두 하나같이 바닥으로 존재할 터

내가 딛고 있는 이 자리

아래층에서 받쳐주듯

위층 이웃들 고단한 몸 뉠 수 있도록

내 생의 천장 높이 받드는 일

누겁의 업장을 녹이듯

하루하루 달게 받들어 모시는 일

삼키고 삼켜도 끓어오르는 솥단지 삼독을

식어 버린 한 모금의 찻물로 달래는 지금은

녹음이 독물처럼 퍼져나가는 상심의 계절

저 멀리 하늘가 햇살 비추이는 아파트들

수미산 그물망처럼 펼쳐져 있다

 

* 인드라망: 인드라(인도 신화의 천신)가 사는 궁전에 쳐져 있는 그물. 부처가 세상 곳곳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말.

 

 

 

 

[당선소감] “하루하루 견뎌내야 하는 일에 대한 시 쓰고파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고군분투하는 삶의 진실 앞에 누구나 절대적인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동네 작은 공원을 찾아 걸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동무들과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먼저 생기 가득한 화원 한 귀퉁이에 매어 체념한 듯 짖지 않는 개의 하루에 대해. 길머리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철부지처럼 피어 있는 꽃. 대책 없이 퍼져 나가는 신록의 잎사귀들. 개천가에 이르면 켜켜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처박힌 채 생을 건너고 있는 크고 작은 돌부리들. 뿌연 하수 물도 푸른 은하수를 찾아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존재의 진면모란 티끌 하나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수한 별들도 반질반질 자기 궤도를 닦으며 돌고 도는 일. 어둠 속을 떠도는 외톨이별에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잊지 않는 일. 그의 등 뒤에서 잠시 불 밝혀 주는 일. 우주라는 망막한 거소에서 밥을 나누며 그렇게 우리 함께하는 사이. 거기 진땀을 흘리고 좌절하는 일.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 앉아 고배를 마시는 일. 밤하늘 금송화처럼 피어나는 별을 바라보며 일어서는 일. 하루하루 다만 견뎌내야 하는 일에 대해 더듬더듬 쓰고 싶다.

 

무엇보다 졸작을 뽑아주신 유종호 선생님과 오탁번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지용신인문학상에 성원을 아끼지 않는 동양일보와 옥천문화원, 옥천군에도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또 외롭게 글을 쓰며 좋은 시를 출품했을 많은 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심사평] 따뜻한 삶의 모습 형상화놀랍도록 참신해

 

지용신인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해마다 더해가는 것 같다. 올해 응모자는 300명을 훌쩍 넘었고 응모작품은 한 사람이 열편 스무 편도 응모한 경우를 포함해서 2000편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요즘 날로 더해 가는 시창작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당선의 영예를 놓고 겨룬 작품은 염종호의 금강초롱’, 윤계순의 그늘들은 가볍다’, 이선의 아파트 인드라망이었다.

 

염종호의 작품은 아주 정밀한 시적 장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내딛는 시창작 주체의 치열성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관습적인 창작 방법을 탈피하여 과감하게 만의 시세계를 발견해 나갔으면 좋겠다. 윤계순의 작품은 느티나무그림자의 대조를 개성적으로 형상화한 시적 풍경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느티나무 그늘이 일렁거리는 모습을 온갖 사건 사고를 보도하고 비평하는 일간지의 페이지와 비교하는 재치 있는 수사가 너무 작위적인 비유라는 점이 아쉬웠다.

 

당선의 영광을 안은 이선의 아파트 인드라망은 신인이 지녀야할 독창성과 새로운 시창작 방법을 고루 갖춘 뛰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떤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햇볕 밝게 비치는 아파트의 지붕과 창문들의 풍경을, 엉뚱하게도 제석천의 궁전 위에 펼쳐진 보배구슬 그물인 인드라망으로 순간적으로 기막히게 변용시키고 있다. 이웃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가는 따뜻한 삶의 모습이 곡진하게 형상화되고 있는 놀랍도록 참신한 작품이다.

 

우리 삶이 아무리 고되고 험난할지라도 시인은 저 멀리 하늘가 햇살 비추이는 아파트를 고즈넉이 바라보는 일이다. ‘내가 딛고 있는 이 자리/아래층에서 받쳐주듯/윗층 이웃들 고단한 몸 뉠 수 있도록/내 생의 천장 높이 받드는 일이야말로 시인이 지녀야할 시 의식의 첫째 자리가 되는 것이다.

 

심사위원 오탁번 시인, 유종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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