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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눈부처 / 이기호

 

당신의 눈동자 속에 아지랑이가 보였어요

곧 봄이 온다는 걸 알았지요

당신의 눈동자 속이 아주 화안했어요

곧 꽃이 핀다는 걸 알았지요

당신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기로 했는데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눈물이 맺혀 있던 걸요

나는 얼른 눈물을 닦았어요

이젠 안 울겠어요

누군가 울면 세상 모든 이들이

다 운다는 걸 오늘 알았어요

 

 

 

2010 제2회 천강 문학상 수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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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숫돌 / 도복희

 

 

칼날이 지나가기 위해서는 물을 적당히 축이고

일정한 리듬과 손목을 통해 가해지는 힘이 필요하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몸과 몸이 섞이며 만들어 낸

날 선 눈빛으로 아침이 싹둑 잘려 나간다

잘려나간 아침들이 오래된 공복을 든든하게 채우리라

받아들일 때마다 얇아지는 살들의 쓰린 기억을 잊고

내 몸은 늘 똑같은 자세로 너를 향해 눕는다

닳고 닳는 것이 내 길이어서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면

내 전부를 내어주며 빛나는 너만을 지켜보겠다

날 선 날이 지나갈 때마다 온 몸으로 토해내는 소울음

노래로 들릴 때까지 나, 부동의 자세 바꾸지 않겠다

검은 눈물이 앞강을 채우고 움푹 패인 유방암 환자의

절망을 고스란히 떠안는다 해도 네가 지나간 그 시간의

기억으로 즐겁게 우주를 떠다니고 싶다

바람이 되고 물이 되어 산천 구석구석

가벼웁게 휘돌아칠 수 있는건 사각의 한 생애,

너를 위해 고스란히 내어놓은 결과이다

살과 뼈로 남아 너와 쉼없이 부대꼈기 때문이다

징그럽고 품안으로 파고들던 칼날도 늘

똑같은 자세로 나를 향해 눕는다

 

 

 

바퀴는 달의 외곽으로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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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군이 제2회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31일 확정·발표했다.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는 소설부문 대상에 '안개 소리'의 유정현씨(서울 59), 시 부문 대상에 '토구(土狗)'를 출품한 박은영씨(대전 33)를 선정했다.

 

시조부문은 장은수씨(서울 57) '새의 지문-빗살무늬토기', 아동문학 부문에는 박재광씨(수원 37) '돌배나무 두 그루', 수필 부문에는 정성희씨(대구 45) ''가 대상으로 확정됐다.

 

각 부문별 우수상에는 시 부문은 대전 도복희씨의 '숫돌'과 서울 이기호씨의 '눈부처', 시조 부문은 전남 목포 박성민씨의 ''과 수원 김사은씨의 '껌이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소설 부문은 서울 홍지화씨의 '내 거울 속 달팽이'와 캐나다에 사는 김외숙씨의 '매직'이 뽑혔다.

 

또 아동문학 부문에는 대구 김규학씨의 동시 '등 돌리고 자면'과 인천 조명숙씨의 '바보 토우', 수필 부문에 부산 김혜강씨의 '()'과 서울 장미숙씨의 '바지랑대'가 각각 선정됐다.

 

이번 작품 공모에는 모두 960명에 4965편이 접수돼 지난해 제1 816, 4482편에 비해 500편 가량 늘었다.

 

한편 시상식은 10 5일 곽재우 장군 탄신 458주년 다례식과 병행해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 경내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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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맑음 / 이기호

 

 

모시등걸에 찬바람이 일면 수수알도 붉어갔다

텅 빈 들녘은 눈이 해맑고 빈 볏단들은 幕舍처럼 서 있었다

논두렁에선 우렁이들이 둥싯거렸다

상지냇가의 소금쟁이 긴 다리 밑으로 새털구름이 빠져나갈 때

오포소리에 고무신 뒤축이 자꾸 벗겨지고

점심광주리를 머리에 인 어머니와 물주전자 든 나의 그림자가

삽다리를 따라 빠르게 흘렀다

새참이 나간 부엌은 매캐한 연기에 휩싸였다

양재기에 굴 무나물을 볶던 아궁이는

잔뜩 쓸어 넣은 왕겨에 속이 더부룩해졌다

장죽에 불붙이려던 할아버지는 눈이 내어 그대로 돌아 나왔을 터였다

몽당수수비와 부지깽이는 모처럼 火像의 몸을 쉬고 있겠다

들녘에 어둠이 오고 홀연 귀뚜리의 노래 들리고

먼 하늘에서는 별들의 점등이 시작되었다

용수 안으로 밥알이 동동 뜨는 마을에서는 술처럼 시간이 익어

밤이 점점 까매지자 어머니는 우렁이와 양재기를

앞세우고 아버지별을 찾아 은하로 떠났다

문득 낯설어지는 풀벌레소리에 창가로 다가가는 마음

오래 묵은 가을밤이 가라앉고 있었다

내 별이 다 보였다

 

 

 

 

노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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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지용신인문학상에 이기호(62)씨의 '내일은 맑음'이 당선됐다. (수상작 인터넷 게재)이 씨의 수상작 '내일은 맑음'40여 년 전 떠난 고향 충남 광천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정지용의 시처럼 아름다운 시어 사이로 이씨 고향의 모습이 그려지고 어린시절 시인 자신의 모습도 엿보인다.

 

"귀뚜라미 소리, 텅 빈 들녘, 매캐한 연기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나요. 고등학교 때 서울로 이사 와 벌써 4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고향은 고향이지요."

 

심사위원인 유종호 문학평론가와 신경림 시인은 '농촌의 가을 저녁 풍치가 눈에 선하게 다가 온다. 비유나 재담도 은근해서 공감을 자아내고 끝내기 부분의 동화적 상상력도 정감 있어 단연 빛나는 작품이다'고 평가 했다.

 

이기호씨는 늦깎이 시인이다. 평소 마음을 달래기 위해 글을 썼던 이씨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시어머니의 죽음이었다. 23년간의 시집살이, 눈물이 마르지 않던 시간이었지만 정작 시어머니의 빈자리는 더 힘이 들었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마음에서 수많은 감정이 솟구쳤어요. 그렇게 밉던 시어머니였고 그렇게 힘든 시절이었는데 몹시도 그립습니다. 제가 시를 쓰고 지금 느끼는 이 행복은 모두 시어머니 덕이에요."

 

이씨는 제대로 공부를 해보자며 2004년 뒤늦게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지금은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정 수업을 들으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정지용 시인은 이 씨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시인이다. 이미 대학교에서 '정지용 시 연구'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해 정지용 신인문학상 수상의 의미가 더 깊다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정지용 시인의 고장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만든 상을 받게 돼 영광입니다. 아름다운 시어와 눈앞에 보일 듯 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정지용 선생의 시를 좋아하는데 그분의 뒤를 따라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아름다운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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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신인문학상 수상자인 이기호(67) 시인이 최근 시집 <노년을 위하여>와 수필집 <아름다운 날들>을 발간했다.

 

5년 전 62세의 나이에 동아일보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한 이기호 출향인은 삶이 고단할 때면 마음은 어느새 어린 시절 고향으로 닿곤 한다. 그 유년의 시간들과 그리움의 과정들을 그대로 시로 담았다고 첫 시집 발간의 소회를 밝혔다.

 

차분한 관찰과 치밀한 어사 선택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번 시집에는 지용신인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긴 시 <오늘은 맑음>을 비롯해 <광천 독배 옹암포구에서>, <구 장터 냇가>, <고향 들녘에> 67편의 시가 담겼다. 특히 가생이’, ‘지랑’, ‘산내끼등 어린 시절 듣고 자란 충청도 사투리들이 고스란히 시가 돼 눈길을 끈다.

62세에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이기호 시인은 광천 옹암리 출신으로 2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2회 중봉조헌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숙대문인회 회원, 정형시학 회원, 그레이스 수필 문우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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