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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이정록

 

 

2. 수상작품 :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외 4편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
무값이 똥값이라
밭 가운데에 무를 묻었다
겨울에만 생겼다 없어지는 무덤
봄이 될 때까지 수도 없이 도굴 당하는 무덤
절만 잘하면 무를 덤으로 조는 무덤 밭 한 가운데에
겨우내 절을 받는 헛묘 하나 눈맞고 있다 저 묘 속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얼마나 많이 머리를
들이미셨던가, 그 누가 시퍼렇게 살아 있기에
한 집안의 머리채를 모조리 다 잡아채는가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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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황동규(시인, 서울대 교수), 정진규(시인), 오세영(시인, 서울대 교수), 조정권(시인), 최동호(시인, 고려대 교수)


4. 심사평

「이정록의 유머와 슬픔」

사는 일과 마찬가지로 글 쓰는 일에도 기복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그 동안 아름다운 시를 써 온 장석남은 긴장을 풀고 있고, 송찬호는 아예 붓을 걸어 놓고 있다(그 나이에 일 년에 짤막한 시 세 편밖에 발표하지 않다니).예심을 거쳐 넘어온 그 밖의 다른 시인들도 자신들의 이름에 걸맞는 작품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정록은 작년에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고, 또 이번에 예선을 거쳐 넘어온 몇 편의 시가 작년 수상작품과 겹친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나는 작년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의 하나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저했다. 그러나 상은 심사한 작품 가운데 가장 나은 작품을 쓴 시인에게 주는 것이고, 이정록의 경우 겹치는 작품을 빼고도 자신이 개척하고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데 충분했다. 예를 들어 「무덤에서 무를 꺼내다」를 보면 채소값이 ‘똥값’이 되는 농촌의 고통스런 현실이 전제되어 있으면서도 ‘무 무덤’에 들어가려면 고개나 허리를 숙여야 하는 것을 ‘절만 잘하면 무들 덤으로 주는 무덤’ (‘무덤’과 ‘무의 덤’이 가지고 있는 발음의 유사성에도 눈을 줄 것) 같은 유머로 처리하는 시인의 여유가 보인다. 그 여유는 그러나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이 ‘한 집안의 머리채를 모조리 다 잡아채는’ 슬픔으로 끝난다.
유머와 슬픔은 곧은 것보다도 구부러진 것이 더 간절함이 있다는 「구부러진다는 것」에도 나타나고, 죽을 때 촉수였던 눈을 공양하는 달팽이의 눈을 ‘씨눈’으로 보는 애절한 감각의 「씨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표본으로 선정한 작품 속에 들어 있지 않지만 「주름살 사이의 젖은 그늘」, 그리고 마지막에 실린 「서부극장」을 물들이고 있는 것도 이 유머와 슬픔이고, 그것은 앞으로 한동안 그에게 가치 있는 광맥으로 남아 있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정록이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열매보다 꽃이 무거운 生이 있다
-「슬픔」전문

같은 어느 정도 성공한 아포리즘이다. 이것도 유머와 슬픔의 반경 안에 들어 있지만, 그러나 이런 ‘멋진’ 아포리즘은 시의 근원인 노래에서 멀어지기 쉽다.(황동규)

 

 

파란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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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 김성용

 

 

극장에 사무실에 학교에 어디에 어디에 있는 의자란 의자는

모두 네 발 달린 짐승이다 얼굴은 없고 아가리에는 발만 달린 의자는

흉측한 짐승이다 어둠에 몸을 숨길 줄 아는 감각과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을 지니고 온종일을

숨소리도 내지 않고 먹이가 앉기만을 기다리는

의자는 필시 맹수의 조건을 두루 갖춘 네 발 달린 짐승이다

이 짐승에게는 권태도 없고 죽음도 없다 아니 죽음은 있다

안락한 죽음 편안한 죽음만 있다

먹이들은 자신들의 엉덩이가 깨물린 줄도 모르고

편안히 앉았다가 툭툭 엉덩이를 털고 일어서려 한다

그러나 한 번 붙잡은 먹이는 좀체 놓아주려 하지 않는 근성을 먹이들은 잘 모른다

이빨 자국이 아무리 선명해도 살이 짓이겨져도 알 수 없다

이 짐승은 혼자 있다고 해서 절대 외로워하는 법도 없다

떼를 지어 있어도 절대 떠들지 않는다 오직 먹이가 앉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곤 편안히 마비된다 서서히 안락사한다

제발 앉아 달라고 제발 혼자 앉아 달라고 호소하지 않는 의자는

누구보다 안락한 죽음만을 사랑하는 네발 달린 짐승이다

 

 

 

 

200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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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알코올이 잠시 내 몸의 주인이었을 때, 전화가 왔다. 내가 세운 계획보다 앞서가는 현실을 알려주는 낯선 전화였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 후 나는, 나를 앞서가는 현실 앞에서 먹먹하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새천년을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 서른 세 번이 술기운과 함께 지난 밤 내내 내게는 앞서 울리는 듯도 했다. 유독 '부끄럽다'는 종소리만이 기억에 남는다.

 

나보다 더 기뻐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막내의 철없는 모습에 마음 졸이시며 살아오신 부모님과 가족들, 궁핍한 주머니 사정에도 꿋꿋이(?) 술자리를 지켜준 친구들, 형들, 그리고 문학을 이야기하며 함께 밤을 지새던 '까치노을'문학동아리 후배들,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이 내게는 기쁨일 뿐이다.

 

무엇보다 시의 길로 입문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손진은 선생님, 배우는 학생들보다 더 큰 열정을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 학과 장윤익, 여세주, 김주현, 구광본 선생님과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죄송함과 감사함을 동시에 전한다.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에게도.

 

짝사랑에 고민하던 한 사내가 그동안 참았던 용기를 모두 풀어 고백하고 당당하게 퇴짜맞은 기분으로 이제 대문을 연다. 대문이 더듬거리며 열릴 것인가, 수다스럽게 열릴 것인가, 고민하지 않겠다. 제 자리에서 소외된 것들과의 한울림을 위하여 종신불퇴(終身不退)하겠다.

 

20세기의 작은 먼지가 21세기의 민들레를 꿈꾸며

 

 

 

[심사평]

 

응모된 시를 읽으면서 상향평준화 현상이 뚜렷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2천여 편에 이르는 응모작 가운데 예선을 거친 작품들은 대부분 수준작으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나 상대적으로 두드러지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아 어려움이 따랐다.

 

김미영의 '보영약국은 따뜻한 말을 조제한다'는 일상사의 이면을 신선한 시각으로 그리고 있으나 '소설적'인 묘사에 그쳐 깊은 울림이 아쉬웠다. 이계희의 '볕이 잘 드는 마을'은 잔잔하고 단단하게 세상살이의 고랑을 파고 일궈내는 감수성이 돋보이지만 삶을 장악하고 뭉뚱그려내는 힘이 부족하다. 이별리의 '철길 사이'는 언어와 감정의 절제, 한층 높은 도약이 요구돼 좋은 시의 문턱에 머문 느낌이며, 유가형의 '기억의 상자에 빠집니다'는 발상이 참신하고 언어 감각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이 흠이었다.

 

마지막까지 겨룬 작품은 신민철의 '앵무새와의 대화'와 김성용의 '의자'였다. '앵무새와의'는 독특한 시각으로 삶을 액자 속에 담아내는 기교가 능숙하고 언어의 행진이 현란하다. 하지만 말을 너무 이리저리 돌리는 바람에 삶에 대한 인식의 바닥이 얕아지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 재미있는 언어유희와 세련된 감수성이 장점이자 약점을 만들고 있는 경우지만 좋은 시인으로서의 자질이 엿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언어보다는 삶에 더 기대고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를 기대한다.

 

'앵무새와의'에 비해 '의자'는 완성도와 세련미가 떨어진다. 거칠고 튀며 난폭하다. 전체적인 숨고르기와 후반부의 마무리도 허술하다. 파괴적이고 현대적인 것까지 유형화되는 이 시대에 이런 유형의 시가 일종의 '상투성'으로 자리 잡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없지 않다. 그러나 '의자'를 통해 우리의 삶이 사로잡힌 수렁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파괴적이지만 역동적인 이미지로 삶의 '굳은 살'을 떨궈내는 힘을 지니고 있어 호감을 갖게 한다. 끊임없이 관습과 고정관념, 상식에 도전하는 패기와 힘을 견지하기 바라며 당선작으로 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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