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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의 비 / 마종기

 

 

너무 넓어서 무섭게 조용한 들판에 들어서니

소아시아 지방의 아득한 유적지에 도착했다.

그 시절 유행어로 짖어대는 헐벗은 개 한 마리,

때 묻은 눈에는 행선지의 지명이 지워져 있다.

갑자기 어디서 도착한 빗소리가 들판을 뒤집고

수천 년 늙은 돌들은 소란한 진동이 귀찮다고

선잠 속에서 오래된 하품만 계속 토해놓는다.

죽은 돌이 어찌 한순간에 깨어날 수 있으랴만

이 땅은 수명도 긴지 은신의 몸을 털기 시작하고

지표 아래에서 웅성거리던 젊은 고고학자들은

어느새 요술 부리듯 작업장 밖으로 숨어버린다.

분명하게 나이를 구분하던 재판관이 떠나자

흩어져 누운 다른 돌들도 눈치 보며 눈을 뜬다.

일어나면서 중얼거리는 나른한 부족의 방언,

혼자 있기 힘들었다고, 많이 보고 싶었다고

서로를 다독이는 모습이 비안개에 젖는다.

믿지 못하겠지만 나도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

돌아보면 빛나고 슬프고 아련한 것만 펼쳐 있고

앞을 보면 부질없는 방랑자들의 발걸음이

어둑한 저녁이 되어도 찾아갈 곳이 없다.

관광객은 아직 짜릿한 승리만 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패배한 죽음의 소식만 듣고 싶은 것인지.

비에 파인 땅은 반나절도 되기 전에 잠잠해지고

모양 죽인 마모된 돌들 다시 쉽게 잠에 빠진다.

인류의 문명은 결국 비의 속도가 결정한다.

진혼을 위해 사람도 집도 뜰도 호흡을 멈추고

비 그친 소아시아 보름달이 몸을 떨며 오른다.

 

 

 

 

마흔두 개의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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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제6회 박두진문학상 심사는, 예심을 통과한 다섯 분의 중진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1년 동안 발표한 시편들을 읽어나가면서 진행되었다. 특별히 이번 박두진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탄탄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중량감 있는 시인들을 만나보게 되었다. 모두 우리 시단에서 남다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시인들이어서 시적 성취의 높고 낮음은 차이를 두기 어려웠고, 각자 그 나름의 개성적 음역을 갖추고 있어서 심사위원들로서는 수준 높은 시적 진경을 경험한 셈이다. 이분들은 이미 등단 20년을 모두 넘긴 터라, 각자의 미학적 완결성과 개성을 두루 갖춘 시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심사에서는 미적 품격에서 그 어느 해보다 미더운 성취를 보여주었다는 평가가 제출되었다. 오랜 토론 끝에 마종기(馬鍾基) 시인의 최근 시적 성취가 괄목할 만한 것이며, ‘박두진문학상’의 여러 기율들을 충족하고 있다고 심사위원들은 합의를 이루었다. 곧 그의 시편들이, 혜산 시학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스케일과 진중한 사유를 두루 결합하여 혜산 시학의 정신적 풍모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오래도록 모국어로 시를 써온 마종기 시인은 언젠가 "나는 아직 긴 여행중이고 어쩌다 한곳에 오래 머물고 있을 뿐"이라고 썼다. 수상작인 「유적지의 비」는, 이러한 노마드 의식을 아름답게 그려낸 수작으로서, 너무 넓어 무섭게 조용한 들판의 유적지에서 마주친 빗소리를 통해 "돌아보면 빛나고 슬프고 아련한 것만 펼쳐 있고/앞을 보면 부질없는 방랑자들의 발걸음이/어둑한 저녁이 되어도 찾아갈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을 가열하고도 아름답게 보여준다. 견고하고 일관된 심미적 의식 속에서 길어 올리는 인생론적 깊이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수준 높은 내면 의식과 심미적 감각을 결합하는 과정을 소홀치 않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라고 생각되었다. 거듭 수상을 축하하면서, 마종기 시인만의 고유하고도 따뜻한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 진경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유종호, 김용직, 이영섭, 조남철, 유성호, 임충빈

 

 

 

 

천사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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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는 '제6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마종기(馬,鍾基, 72세) 시인이 선정됐다고 20일 밝혔다.

안성시에 따르면 혜산 박두진 시인의 시세계를 기리기 위해 안성시에서 주최하고 혜산 박두진 문학제 운영위원회(위원장 조남철)가 주관하는 문학상은 올해로 6회째로 지난 16일 심사위원회를 통해 마종기 시인을 선정했다.

심사위원은 유종호(위원장, 문학평론가, 예술원 회원), 김용직(문학평론가, 학술원 회원), 이영섭(시인, 가천대 교수), 조남철(한국방송통신대학 총장, 문학평론가,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 교수) 선생이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은 오랜 토론 끝에 마종기(馬鍾基) 시인의 최근 시적 성취가 괄목할 만한 것이며, ‘박두진 문학상’의 여러 기율들을 충족하고 있다는 것에 합의를 이루고, 곧 그의 시편들이 혜산 시학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스케일과 진중한 사유를 두루 결합하여 혜산 시학의 정신적 풍모를 잘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 했다.

 

또한 수상작인 ‘유적지의 비’는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면서 오래도록 모국어로 시를 써온 마종기 시인의 노마드 의식을 아름답게 그려낸 수작이며, 다른 작품들도 수준 높은 내면 의식과 심미적 감각을 결합하는 과정을 소홀치 않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며, 이러한 시세계를 기려, 제6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시인 마종기는 1939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의대 및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방사선의사로 일하고 있다.

1959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1976년 한국문학 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그 나라 하늘빛(1991), 이슬의 눈(1997),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2011), 하늘의 맨살(2010)이 있으며, 시선집은 마종기의 시선집(1999)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2004) 등이 있다.

시상식은 22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성시 안성문예회관 공연장에서 제11회 혜산문학제 때 시상할 계획으로 상금은 일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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