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속에 눕히며 / 문동만
억울한 원혼은 소금 속에 묻는다 하였습니다
소금이 그들의 신이라 하였습니다
차가운 손들은 유능할 수 없었고
차가운 손들은 뜨거운 손들을 구할 수 없었고
아직도 물귀신처럼 배를 끌어내립니다
이윤이 신이 된 세상, 흑막은 겹겹입니다
차라리 기도를 버립니다
분노가 나의 신전입니다
침몰의 비명과 침묵이 나의 경전입니다
아이 둘은 서로에게 매듭이 되어 승천했습니다
정부가 삭은 새끼줄이나 꼬고 있을 때
새끼줄 업자들에게 목숨을 청부하고 있을 때
죽음은 숫자가 되어 증식했습니다
그대들은 눈물의 시조가 되었고
우리는 눈물의 자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곱 살 오빠가 여섯 살 누이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줄 때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을 먼저 보내고
아가미도 없이 숨을 마칠 때
아이들보다 겨우 여덟 살 많은 선생님이
물속 교실에 남아 마지막 출석부를 부를 때
죽어서야 부부가 된 애인들은 입맞춤도 없이
아, 차라리 우리가 물고기였더라면
이 바다를 다 마셔버리고 살아있는 당신들만 뱉어내는
거대한 물고기였더라면
침몰입니까? 아니 습격입니다 습격입니다!
우리들의 고요를, 생의 마지막까지 번지던 천진한 웃음을 이윤의 주구들이
분별심 없는 관료들과 전문성 없는 전문가들이
구조할 수 없는 구조대가
선장과 선원과 또 천상에 사는 어떤 선장과
선원들로부터의……습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3층 칸과 4층 칸에
쓰린 바닷물이 살갗을 베는
지옥과 연옥 사이에 갇혀버렸습니다
우리도 갇혀 구조되지 않겠습니다
그대들 가신 곳 천국이 아니라면
우리도 고통의 궁극을 더 살다 가겠습니다
누구도 깨주지 않던 유리창 위에 씁니다
아수라의 객실 바닥에 쓰고 씁니다
골절된 손가락으로 짓이겨진 손톱으로
아가미 없는 목구멍으로
오늘의 분통과 심장의 폭동을
죽여서 죽었다고 씁니다
그대들 당도하지 못한 사월의 귀착지
거긴 꽃과 나비가 있는 곳
심해보다 짠 인간과 인간의 눈물이 없는 곳
거악의 썩은 그물들이 걸리지 않는 곳
말갛게 씻은 네 얼굴과 네 얼굴과
엄마아 아빠아 누나아 동생아 선생니임 부르면
부르면 다 있는 곳
소금 속에 눕히며
눕혀도 눕혀도 일어나는 그대들
내 새끼 아닌 내 새끼들
피눈물로 만든 내 새끼들
눕히며 품으며 입 맞추며
[심사평]
예심 추천위원들의 추천을 거쳐 심사위원들에게 전달된 작품들의 면면은 충분히 상징적이다. 박영근 시인이 세상과 불화하면서 보여준 시편들의 자리를 그 작품들은 탄탄하게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뚜렷한 경향성이 ‘박영근작품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라고 심사위원들은 동의하였다. 최근의 여러 문학상들이 그 상에 내걸린 이름의 문학적 상징과 무관한 나눠주기식 수여라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그 모습은 더 소중하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이미 다른 문학상을 수상한 경우는 제외하기로 하였다. 중복 수상을 배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심사기준은 박영근이 추구한 시적 완성도이다. 박영근의 그 까다로운 심미안은 이미 작품의 내용-형식 차원을 넘어서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넘어서는 것이지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시의 완성도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집요하고 깊게 추구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의 고통을 상식적으로 다루거나 참신한 언어만을 공교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모두 박영근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심사위원들은 생각하였다.
이런 기준 아래 ‘박영근작품상’으로 결정된 것은 문동만의 「소금 속에 눕히며」이다. 지난 1년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는 세월호의 처참한 비극을 잊지 못할 것이다. 문동만의 이 시는 그 비극이 발생하고 모두 공황 상태에 빠져들고 있을 때 어렵게 써진 작품이다. 경악의 감정 때문에 대상에 대한 미적 거리가 허용되지 않던 시기에 「소금 속에 눕히며」는 힘겹게 어떤 성취를 보여준다. 세월호는 단순한 침몰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이 저 압도적인 권력으로부터 습격을 당하고 있는 사건이라는 인식을 튼튼히 보여주는 성취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비극에 대해 분노하고 슬픔을 공유하려는 큰 공력이 들어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그 난경 속에서 이 작품이 도달하고 있는 모든 마음과 정신의 언어를 존중하여 ‘제1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작을 결정하였다. 한 가지 밝혀둘 사실은 지금 세월호와 관련한 어떤 행위에 상을 수여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점에 대해 심사위원들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논의가 오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 「소금 속에 눕히며」는 세월호를 추념하는 시인들의 작품집에 수록된 것이다. 고민을 했고 그러나 결정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결국 함께 작업한 모든 시인들에 대한 평가와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함께 작업한 모든 시인들의 힘으로 이 처참한 세월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세월 속에서 박영근작품상이 환한 웃음으로 축하될 수 있는 날이 그리하여 언젠가 올 것이다.
- 심사위원 나종영, 도종환, 박수연, 정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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