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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지붕을 사야겠다 / 유종인

 

 

다시 양철지붕을 올려야 겠다

내게 저 들판 끝 단독의, 아니 독단으로라도

새로 지붕을 얹을 폐가가 있다면

 

빗방울이

얼어오는 몸을 부풀려

눈송이로 맘을 띄우는 겨울이 오기 전에

 

모든 소리에 성감대를 가진

양철지붕을 올려야 겠다

상수리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너도 밤나무 나무란 나무들

갈잎과 솔가리에 얹히는 된서리와 별빛 달빛마저

여줄가리 소리들로 쟁쟁하게 되비추는

거울을 눌로 입힌 양철지붕을 그믐밤 고양이가 거닐 때

그 발자국에서

꽃들이 눌러 퍼지는 소리에 소스라치는 고양이여

겨울엗 한뎃잠을 자가 깬 꽃들이

양철지붕에 꿈속의 비명을 던져 올려도 좋겠네

 

한 무덤 방에 누워

부부가 동짓달 궁금한 입 군것질거리를 구시렁거릴 때

그 소리마저 눈보라에 실려

양철지붕에 내려앉으면 그 말 서슬에 깬 아들이

그날로 때아닌 제사상을 보는 저녁도 있어

운감하시라

운감하시라

서로 마음 출출한 날이 가장 좋은 제삿날이니

 

키 높은 옆집 처마의 눈석임물이

양철북을 두드리듯

양철지붕을 두드려 먼가래 한 꽃들의 귀를 부르네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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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출판이 주관하는 지훈상의 제16회 수상자로 문학 부문에 유종인 시인과 국학 부문에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유씨의 시집 '양철지붕을 사야겠다'(시인동네)와 안 교수의 저서 '담바고 문화사'(문학동네)이다.

 

지훈상은 청록파 시인이자 국학자인 조지훈(1920~1968)을 기리기 위해 2001년 제정됐다.

 

상금은 각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오는 2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동 예인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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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괭이*소식 / 육종원(유종인)

 

 

제주 바닷가에 죽은 상괭이가 떠밀려왔다는 말에

나는 그 입꼬리가 올라간 미소만은 썩지 않게 해달라고

두 손도 모으지 않은 채 기도를 붙드는 것이다

 

살아서는 바다가 제 안방 아니 운동장 같았어도

죽어서는 아무려나 떠밀리는 타향 같은 바다

젖먹이, 그걸 그친 지 오래지만 그 눈웃음만큼은

그 젖빨던 입술로 가만히 번져내던 울음만큼은

아직도 싱싱한 마련인 듯 따개비 등짝을 들썩이게 하는 것,

무슨 일로 바다가

상괭이에게 급살(急煞)을 입혔나 곰곰히 헤아리듯

낮별들도 바닷가 하늘에

물음처럼 물끄러미 턱을 괴고 눈빛을 반짝였을 것이다

 

상괭이가 떠밀렸으나 상괭이 죽음은 아직 이르다

파래 미역 줍던 노파는 상괭이 등짝을 쓰다듬어

그 간절한 손길 아래 다시 지느러미가 움찔거렸으면

옆구리 썩어드는 자리엔

사월의 유채꽃 미소로 새살이 돋았으면

망막이 흐려진 그 눈동자는

늦봄의 천동소리에 맑게 다시 틔어오는 기척이었으면

바다가 아니면 이젠

뭍으로 지느러미가 다리를 내어 걸어 나올 미소여

 

제주 바닷가에 상괭이 주검이 눈에 띄었다는 말에

나는 그 천연의 미소만은 묻히지 않게 해달라고

그제사 두 손을 마저 모은 채

파도처럼 기도를 철썩이는 것이다

 

* 상괭이 : 쇠돌고랫과에 속하는 작은 고래.

 

 

 

[당선소감]

 

올해는 유독 가뭄이 길었네요. 길거리 대형 화분에 심겨진 꽃들이 누렇다 못해 하얗게 말라죽는데 제 손길은 미약합니다. 농경지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 속수무책을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제 상상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하마(河馬)나 코끼리라도 얼러내고 싶어지네요. 메마른 논밭에 가서 한 1톤씩의 물을 즐거이 토해낼 수 있는 짐승들 말이지요.

 

물이 갖는 그 전지구적인 종요로움이 커지는 시대네요.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도 물부족 국가의 불명예스러운 대열에 들고 말았습니다. 그 넉넉하던 수려하던 물은 어디로 갔을까요.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선배의 말에서는 물에 대한 농투성이들의 광적인 집착이 종교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렁이 침이라도 모아야 할 판에 장마가 온다니 반가운 일이지요. 물이 있으니 꽃과 열매와 길이 열리고, 선량한 만남도 당연히 면면히 이어져야 할 판입니다. 속악함을 순치(馴致)시키는 물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지요.

 

노담(老聃)선생의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진언(眞言)도 단순히 인문학적 철리(哲理)나 비유의 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물의 실용과 생명성에 대한 직시로도 읽힙니다. 모든 숨탄것들과 함께 메마르지 않고 서로 너나들이 상통하는 물의 성정이 생태계를 웅숭깊고 낙락하게 하는 마음, 그 냅뜰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상생의 물길이 트이는 그 생각의 물소리는 곧 시()이자, 관용의 문화이며 포용의 너름새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공모는 생태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는 재미, 그 아우라(aura)를 넓히는 발상과 애정으로, 그 기꺼운 생각을 마주하는 계기였습니다.

 

인간과 자연, 사회를 아우르는 생태계에 대한 남다른 탁견으로 제정된 문학상에 제 시편을 흔쾌히 밀어주신 심사위원님 여러분과 평택문인협회 관계자분, 평택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양철지붕을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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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생태계의 생명에 대한 존재의 염원

 

태양계 행성 중에서도 생물이 살고 있는 곳은 지구뿐이고 그 이유는 지구가 햇빛, 공기, , 흙 등 생물이 살기에 알맞은 환경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서 지금 많은 생물의 멸종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기온상승에 의한 지구의 온난화로 생태계의 급속한 쇠퇴가 도래할 수도 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동물사냥이나 자연을 파헤치는 등 인간으로 인한 자연 파괴 때문에 많은 생물들이 멸종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생물의 멸종은 다른 생물의 멸종을 가져올 수 있어 모든 생명체들은 공존하며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역사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석학 아놀드 토인비는 환경 즉 숲과 물을 파괴한 문명은 거의 모두 멸망했다고 지적한다.

 

육종원(유종인)님의 시 상괭이*소식은 제주 바다에서 죽은 상괭이의 소식을 듣고 전해지는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게 된다. 그 기도 소리는 돌고래의 죽음을 통해 자연생태계 질서의 파괴가 불러오는 비극적인 세계와 단절하지 않고 새롭게 눈뜨려는 인식의 전환이다. 죽음으로 생명이 완전히 소멸되고 이 세계와 절연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불러오는 비극적인 자연환경이 아니라 돌고래의 미소로 새로운 생명성의 가치와 대자연의 우주적인 탄생을 염원하고 있다.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나 기후 변화에 의해 죽은 돌고래의 슬픔을 우주의 원리의 새로운 생명의 생성으로, 생명에 대한 존재를 영속시키고자 하고 있다. 다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국제멸종위기종인 죽은 돌고래의 소식을 듣지 말고, 바다에서 웃는 돌고래를 만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5회 평택 생태시 문학상으로 육종원(유종인)상괭이*소식을 대상 당선작으로 뽑았다. 생태계의 새로운 질서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자연생태계의 환경보존과 그 소중함을 일깨워주고자 하는 평택시와 평택문인협회의 취지에 맞는 작품으로 생태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구현시켰다 하겠다. 또한 당선자의 최종후보로 세 편의 작품이 모두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크게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이밖에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 수준도 만만찮아서 심사위원들은 심사숙고의 시간을 더 가지게 되었음을 밝힌다. 그중에서 상괭이*소식은 전원일치의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최종심사까지 올라와 경합을 벌인 작품으로는 동백꽃” “들판에 나온 밀항고래. 모두 탄탄한 내공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 심사위원 김영자, 배두순, 성백원, 이귀선, 진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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