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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비평에서 출간한 이병일 시인의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이 제2회 송수권 시문학상 젊은 시인상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송수권 시문학상은 전남 고흥군이 주최하고 송수권 시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문학상입니다. 2회를 맞는 올해, 본상에는 이은봉 시인의 열번째 시집 봄바람, 은여우(도서출판b 2016), 남도시인상에는 배용제 시인의 시집 다정(문학과지성사 2015)이 선정되었습니다.

 

젊은 시인상 선정작인 이병일 시인의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은 친숙한 대상을 젊고 도전적인 감각으로 발견하고 우리 시의 자연 풍경을 풍요롭게 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본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3000만원이, 남도시인상과 젊은시인상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1000만원과 500만원이 수여됩니다. 시상식은 201693일 고흥문화회관에서 시낭송대회와 함께 열립니다.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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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이 돋보이는 시를 써 온 이병일 시인이 새 시집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창비)을 냈다. 옆구리의 발견에 이은 두 번째 시집이자 창비시선399번째 시집이다.

 

68편의 시를 담은 이번 시집에서 이 시인은 두부·안경·구두와 같은 일상의 사물은 물론 호랑이·구렁이·펭귄·백상아리·물사슴·기린·가물치와 같은 동물, 꽃잎·풀피리·석청 등의 자연물에 의미와 빛을 부여한다. 시집에 실린 피순대에 관한 기록은 어린 시절 본 피순대를 만드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도 서민적 감성으로 풀어낸다.

 

돼지의 멱을 따자 나온 피, 핏덩어리를 양동이에 받아놓고 할아비는 내장을 뒤집어 똥을 털어내고 소금으로 씻는다(중략) 통곡이 후련하게 터졌다가 캄캄하게 멈춘 저녁, 이웃집의 죽음 앞에서 할아비는 그 옛날처럼 돼지의 멱을 따고, 피순대를 만들고, 한입씩 물고 너덜너덜 침 흘리며 목젖 크게 웃어보는 일이 상가(喪家) 저녁이라고 했다”(이병일, ‘피순대에 관한 기록부분)

 

두부의 맛은 부드러운 두부에서 을 느끼는 반전이 있는 시다. 아이가 두부를 먹는 모습을 보며 말랑함 속에 단단함이 있음을 깨닫는다. “두부의 바깥은 잠잠하다 두부의 심장엔 무너지는 하얀 달이 있어 조용한 온기가 들끓고 있다고 믿었다(중략) 잇몸 속에서 앞니가 돋아날 때, 아이는 가장 말랑한 것이 가장 단단하다고 생각한다 손톱과 발톱이 자라듯이 차가워지는 이 희끄무레한 두부 앞에서 아이는 입을 크게 벌린다

 

시집 제목은 수록작 나의 에덴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무도 닿은 적이 없어 늘 발가벗고 있는 깊은 산, 벌거벗은 아흔아홉개의 계곡을 가진 깊은 산에 홀리고 싶어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물소리를 붙잡고 싶어(후략)”

 

이 시인은 “100은 정돈되고 굳어진 느낌이지만 아흔아홉은 꿈틀대는 신비로운 세계라며 시집에 사물의 빛나는 지점에 대한 시들을 담았다. ‘빛나는 것이라고 하면 이 구절이 제일 먼저 생각나 시집 이름으로 붙였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중앙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7년 문학수첩 신인상에 시가 당선돼 등단했다. 2010년에는 일간지 신춘문예에 희곡도 당선됐다. 대산창작기금,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주문학상을 받았다. ‘시인 부부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4년 한국경제신문 청년신춘문예에 뇌태교의 기원으로 당선돼 등단한 이소연 시인이 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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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목은 갈데없이 / 이병일

 

 

기린의 목엔 광채 나는 목소리가 없지만,

세상 모든 것을 감아올릴 수가 있지

그러나 강한 것은 너무 쉽게 부러지므로 따뜻한 피와 살이 필요하지

 

기린의 목은 뿔 달린 머리통을 높은 데로만 길어 올리는 사다리야

그리하여 공중에 떠 있는 것들을 쉽게 잡아챌 수도 있지만

 

사실 기린의 목은 공중으로부터 도망을 치는 중이야

쓸데없는 곡선의 힘으로 뭉쳐진 기린의 목은

일찍이 빛났던 뿔로 새벽을 긁는 거야

 

그때 태연한 나무들의 잎눈은 새벽의 신성한 상처와 피를 응시하지

 

아주 깊게 눈을 감으면 아프리카 고원이,

실눈을 뜨면 멀리서 덫과 올가미의 하루가 속삭이고 있지

 

저만치 무릎의 그림자를 꿇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기린의 목과 목울대 속으로 타들어가는 갈증의 숨을 주시할 때

 

기린의 목은 갈데없이 유연하고 믿음직스럽게

아름답지 힘줄 캄캄한 모가지 꺾는 법을 모르고 있으니까

 

 

 

나무는 나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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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서정시란 어떤 대상을 빌려 내면 고백, 즉 시인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대상의 선택과 출현, 내면 고백은 하나로 자연스럽게 빚어져야만 한다. 한 시인의 어법을 빌리자면, "나는 뱀을 빌려 고백하겠다. 나는 뱀의 성질이 아니라 뱀의 모양을 빌릴 수 있다."(김행숙, 사춘기) 대상과 표상의 적합성이 이루어질 때 시의 깊이도 생성된다.

 

그러니 시의 대상을 선택하는 찰나 시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40여 분의 작품들이었다. 저마다 다채로운 개성으로 시적 진경에 가 닿았기에, 그걸 한 편 한 편 읽어내는 일이 즐거웠다. 최종심에서 다뤄진 시들은기린의 목은 갈데없이,가막조개,꽃마리,별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방식,사랑하는 이에게,미안의 피안등 여섯 분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의 수준이 기대에 비해 상당히 높아서 놀랐다. 다들 시의 기본을 충실히 다진 단단한 시편들이었다. 앞으로도 더 좋은 시를 써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기대되었다. 그중에서 기린의 목은 갈데없이외 작품을 낸 응모자가 빼어났다.

 

처음 시를 읽을 때 왜 하필이면 기린일까, 하는 의구심이 없지 않았지만 "곡선의 힘으로 뭉쳐진 기린의 목"에 대한 상상력은 단박에 독자를 아프리카 고원으로 안내한다. 기린은 강하기보다는 따뜻한 피와 살을 가진 연약한 짐승이다. 그 길고 아름다운 목을 가진 기린이 사는 아프리카 고원은 약육강식의 원리가 엄연하고 "덫과 올가미"들이 널린 곳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고원이 먹고 먹히는 정글 법칙이 엄연한 신자유주의의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자본 논리가 판치는 현실에 대한 강력한 은유로 탈바꿈할 때, 우리 심사자들은 이 시인의 솜씨에 감탄했다. 당선작과 함께 응모한진흙여관,풀피리,녹명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언어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 독창적 발상, 사물에 대한 해석력, 능란한 시행의 배열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다. 빼어난 시편으로 수주문학상을 수상한데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고형렬, 장석주()

 

 

 

아흔아홉개의 빛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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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구자룡)는 제16회 수주문학상 당선자로 이병일(33, 서울) 시인을 선정했다고 20일 밝혔다

 

수주문학상은 부천이 낳은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전국 공모를 실시하고 있으며 총상금은 1000만원이다.

 

이에 앞서 지난 81~20일까지 접수된 331명의 작품 2.800여 편이 예심(40명 작품 선정)과 본심 (심사위원: 장석주 시인, 김명인 시인)을 거쳤으며, 시상식은 오는 1028() 오후 3, 부천시청 5층 만남실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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