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의 집 / 김정임
외포리 뻘밭 소라의 집을 보셨나요
굵은 밧줄 한 개씩 기둥처럼 세워서
수 백 개 다닥다닥 붙은 소라의 빈 집들
지금은 선홍빛 노을만 그물질하고 있어요
빈집의 적막이 굴뚝의 연기처럼 피어올라
밀물대신 갯내 나는 뻘밭을 메워가고 있어요
소라의 그물망을 드넓은 바다 어장에 던져두면
호기심 많은 쭈꾸미가 소라의 빈 집으로 스며든다 지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능소화빛으로 색칠한 대문을 열고
미로같이 꾸불꾸불한 계단을 내려갔을 테지요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 되어 울리는
아득하고 속이 깊은 방으로 스며들어
제 꿈을 익히곤 했을 소라의 집
간간이 파도 소리는 열어 둔 창으로 들어 왔다가
꿈의 한 가운데를 현처럼 긋고 나가곤 했겠지요
누군가를 기다리듯 대문 활짝 열어놓은
소라의 빈 집이 나를 자꾸만 끌어 당겨요
제 몸을 던져 꿈을 익혀가던 쭈꾸미처럼,
꿈은 꿈꿀 때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니던가요
[당선소감] 빛을 얻은 언어의 새벽
오늘은 시가 내 안의 어둠을 말끔히 털어내며 내가 소망하는 경이로운 당선소식을 가지고 왔다.
갑자기 울컥 목구멍을 타고 치밀어 오르는 한 덩어리의 붉은 슬픔.
아마 중간 중간 너무 멀게 느껴져 무릎을 꺾으며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고 싶었을 때의,
참담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예고 없이 경쾌하게 날아든 당선소식에 한없이 기쁘고 행복하다.
내 안에 깊숙이 숨겨진 상처와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아직 흰 종이에 담아내지
못한 언어들이 탄력을 받게 될 것 같다.
용기와 힘을 얻었으니 채찍으로 알고 더 열심히 써 나가겠다.
부족한 글을 택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다.
시의 아름다운 문장에 처음 눈뜨게 해 주신 문효치 선생님, 시의 삶을 직접 실천하며 보여주신
박제천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시를 고민하는 나의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심사평] 진정성으로 정제된 단아한 멋
예심을 거쳐 본심으로 올라온 열일곱 분의 응모작 가운데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권혁찬씨의 ‘노트북’ 외4편과 김정임씨의 ‘소라의집’ 외 4편이었다.
권혁찬씨의 작품들은 일정한 문학적 수준을 유지한다. 주제를 형상화하는 능력이 있고 언어의 선택과 배치에 공을 들인 문체에서 만만치 않은 문학적 역량이 느껴진다.
선이 굵고 리듬에도 탄력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산문적으로 읽힌다.
시는 확산의 문법이 아니라 응축의 문법이고 생략의 문법이면서 여백의 문법이다.
언어를 최소화하는 과정 뒤에 남는 광채나는 보석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들이 좀더 정제되고 표현의 광채를 획득하기 바란다.??
김정임씨의 시는 단아하다 절제에서 우러나오는 응축의 힘이 있고 활달한 어조는 아니지만 작품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감정의 과장없이 조심스럽게 망설이듯 전개되는 그의 시들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깊이 각인되는 예리한 이미지들은 그의 시의 독특함이자 매력이다.
당선작 ‘소라의집’에서 확인 되듯이 노련한 장인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신인에게 요구되는 패기나 대담함 출렁거림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그의 정진을 기대해 본다.
- 심사위원 : 김창균, 이영춘 최승호
'신춘문예 > 강원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 김현숙 (0) | 2011.02.09 |
---|---|
200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 유태안 (0) | 2011.02.09 |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 김영식 (0) | 2011.02.09 |
200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 이병철 (0) | 2011.02.09 |
200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 최재영 (0) | 2011.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