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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방 있음 / 성윤석

 

 

수갑도 없이 들어갔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간혹 햇빛에 널어 말렸고

붉은 벽돌이 그려진 벽지도

발랐습니다

기껏해야 한 생의 자세를

생각해서 들어간 감옥입니다

낡은 침대며, 깨진 거울까지

미리 짐은 다 뺐습니다만,

심심해하실까 봐 버려진 화분

하나 업어와 살려놓았습니다

소철나무 화분은 거리에서 살며,

병따개며, 잘린 신용카드를

받아놓고 있습니다

혼자 살았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무기징역을 받은 감옥이지요

그까짓 노역형

앞으로 백 명의 설울쯤은

수면고문만으로도 진술을 받아줍니다

사랑했던 감옥을 내놓습니다

나는 모범수였고

다시 자유를 외치는 잡범들의 거리로

이송됩니다

뾰족구두를 따라가는 바람과

길을 가로막고 서는 오월의 바바리 나무들

이 감옥에서 살면,

집과 감옥이 모두 나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조그만 창밖을 바라보며

한 생의 자세를 생각하면 먼 곳에서

길들이 두텁게 이곳으로 흘러들어 오는

게 보입니다

갓 출소해 어두워진 두부를 씹는

별 들도 보입니다

어두컴컴한 벽을 질러야, 갈 수 있지만,

나한테 똥 사고

검사도 되고 의사도 되었다고

깨진 변기가 늘 꼬르륵 목이 잠기는,

밤하늘도 잘 보입니다

 

 

 

[수상소감]

 

소식을 듣고 한순간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시를 쓰면서 문학상과는 별개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그걸 잘 지켜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상이라는 것은 쓰는 자에게 격려의 의미가 크겠지만, 때로는 사람을 오만하게 하고 게으르게 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무 살 무렵 공장 아르바이트와 입주 과외를 하면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민중시로 습작을 했고 민중시를 참 많이 쓰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리얼리즘, 새로운 민중시를 쓰고 싶었지만 그 당시 저의 시들은 그 뜻을 투영할 만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대학을 나와 지방신문사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자연히 모더니즘과 도시시를 쓰기 시작했고 첫 시집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 11년쯤 단 한 편의 시도 쓰지 않았고 문학과는 별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땅에는 고 박영근 선생님처럼 치열하게 살고 쓰는 분들이 더러 있었고 저는 변변찮은 재능과 성실하지 못한 태도를 가진 자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년 전 저는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 하지 못했던 새로운 리얼리즘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들의 뒷면을 낱낱이 뒤집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마도 오늘 제게 상을 주신 건 고 박영근 시인께서 이 후배를 눈치채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의 가시고자 했던 세계, 새로운 리얼리즘의 세계로 초대해 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위적이면서도 졸작인 저의 시 셋방 있음을 선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신뢰할 수 있는 시인이 되도록 쓰고 생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170년 12월 23일

 

nefing.com

 

 

[심사평]

 

성윤석의 셋방 있음은 시적 화자가 자신이 살던 셋방을 비워 내놓으면서 내건 광고문의 형식으로 그 방에서 살던 자신의 가난하고 남루했던, 하지만 그렇게 가장 낮아서 오히려 거리낄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삶을 담담하게 표백하는 시이다. 그 작은 셋방은 옹색하고 가난하여 자유롭지 못하므로 감옥이지만 한 생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었던 곳이어서 당당한 집이고 자유의 공간이기도 했던 곳이다. 이 시는 이처럼 겸허함과 오연함으로 강제되거나 자발적인 가난을 긍정하는 차분하고도 깊은 힘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역시 남루하지만 견고했던 지상의 집을 버리고 저 추운 눈길로 떠나는 시인의 깊은 고독을 아프게 보여주었던 박영근의 시 이사와도 어딘가 많이 닮아 있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성윤석의 셋방 있음이 풍요와 가난이 대극을 이루는 오늘의 한국사회를 아래로부터 이겨나가는 도저한 긍정의 힘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2016년의 한국 시단이 낳은 매우 소중한 성과라는 점에 합의했으며, 이는 또한 고 박영근 시인의 깊은 가난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시세계와 결코 멀지 않다는 점에서 제3회 박영근작품상의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흔쾌히 동의하였다.

 

-심사위원: 정희성(시인), 백무산(시인), 김명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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