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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칸에 앉은 돌부처 / 심은희

 

 

생은 울렁거림이다;(누군가 말을 걸어오는지)

목젖을 타고 올라오는 건

환멸이란 이름의 멀미다

 

그만 살았으면 싶은 노인들의 푸념 또는 수작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늘어진 가로수들이나

심하게 처진 할머니 입꼬리에 걸린 담배처럼 언제라도 툭

떨어질 듯이 과자 봉지를 들고 질주하는 어린 아이를 볼 때면

그것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기어이 아이의 과자는 축포처럼 공중분해되고

어디선가 날아든 비둘기들은 겁도 없는 상이군인처럼

버스 전용차선으로 뛰어든다 순간 나는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어머니의 노동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비틀거렸는지도 모르겠다

! 이제 알겠다 콘크리트 벽에 일렬로 달라붙어

초호와 캐스팅을 자랑하는 나이트 클럽 벽보를

무슨 복권처럼 자랑하는 노인들을 볼 때면 왜

까닭 모를 화가 치미는지를

 

버스는 이내 저 홀로 풍성한 계절을 맞이한 청소차를

아슬아슬 비껴나간다 청소차에서 분명

낯익은 해골 하나가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차가 덜컥덜컥거리며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짤랑거리며 들어서는 건 언젠가는 내 몸 가장

투명한 부분을 밀치고 들어설 낯선 불행들일 것이다 ; 갑자기 숨이 가빠온다

(아까부터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2002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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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다시 ''''를 검열하자...그리고 세상을 돌아보자

 

기뻤다기보다는 얼떨떨했다. 첫 응모라 큰 기대를 하지 않은 탓에 막상 당선 소식을 듣고는 덜컥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시를 쓴다, 쓴다 하면서도 쉽게 세상에 디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준비는 항상 부족했고 시는 언제나 불만족스러웠다. 그걸 참고 고칠 수 있을 때까지 몇년씩 묵혀두기도 하면서 아주 가끔씩 그렇게 시를 써왔다. 돌이켜 보면 어리석게도 시를 썼던 시간보다 시가 도리질치다 달아날까 봐 안절부절 못하던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시인이 되기 위해서 시를 쓰려고 했던 적은 없었다. 다만 어렸을 적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시를 쓰겠노라고 우격다짐하던 기억은 있다. 지금 나는 시인이 되기 위한 출발선에 있긴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을 위해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지금까지도 나의 화두가 ''''에게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한 편의 시를 쓰거나 고칠 때 뿌듯한 적인 많았지만 진정으로 행복한 적은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책읽기가 가능하듯이 행복한 글쓰기도 가능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시대에 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그럴 수록 철저한 자기 검열을 거쳐 나름의 시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시금 시를 쓸 용기를 주신 두분 심사위원님과 항상 그리웠지만 제대로 인사 한번 드리지 못한 한신대 국문과-문창과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함께 고민을 나누었던 내 오랜 벗들과 문창 선-후배님들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과 언니, 동생에게 진한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고 싶다. 시를 좋아하게 된 것도 영광인데, 시를 쓸 수도 있다는 것은 나에게 가장 큰 행운인 듯싶다.

 

 

 

 

[심사평] 작품마다 결정적 새로움 부족당선작 ''젊음의 직핍'' 돋보여

 

예심자의 진지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본심에 넘어온 작품들은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었다. 아직도 시의 말법을 익히지 못한 평균 이하의 시들이 섞여 있는가 하면 사적인 감정의 절제 없는 토로를 서정시로 착각한 작품들도 많았고, 지리한 자기 주장을 역시 반성 없는 지리한 산문 형식에 의탁한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다음과 같은 작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먼저 ''공터는 만삭이었네''(전혁)는 노래의 유연성이 살아 있는 아름다운 시였다. 1연의 "공터는 어머니들/쉬었다 간/ 자리였네/ 젖먹이들 응석부림에/ 목이 늘어나/ 보유스름한 가슴/ 언덕 드러낸 메리야스"라거나 2연의 "풋풋한 공터의 아이들이/ 휘휘 휘파람 불며/ 어머니들 품으로 되돌아가고/ 만삭의 달이/ 뽀도독/ 힘찬 턱걸이를 시작하는 시간" 같은 구절은 이제는 사라져버렸지만 지난 한 시절의 가난의 탁발한 시적 형상화다. , 낡은 내용을 너무 낡은 형식에 수습하고 있어서 오늘의 젊은 시로서는 한계라는 점. 작품마다 뚜렷한 현대성을 성취한 백석의 경우를 고구(考究)해보기 바란다.

 

''마음의 위기''(김지연)''기념품''(박선영)은 각기 단아한 서정시들이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아직 떨어지지 않은 단풍잎은/ 시든 꽃잎을 위해" 내리는 비의 운행이 "계절과 계절 사이" 혹은 "벌어진 계절의 틈"을 벗어나지 못한 채 자족적 공간에 갇히고 마며, 후자는 전자에 비해 시상(詩想)의 전개도 활달하고 시적 대상을 장악하는 솜씨도 볼만하며 이제까지의 꽃과의 대화를 전복하여 '''' 스스로 씨앗인 기념품이 되기도 하지만 상상력의 이동에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즉 시에 기운이 생동하지 않는다.

 

''그 집 앞 능소화''(이현승)''버스칸에 앉은 돌부처''(심은희)는 앞의 작품들에 비해 당선권에 훨씬 더 육박해 있으나 두 작품 공히 어떤 결정적인 새로움을 담보하지 못하여 아쉬움이 크다. ''그 집 앞 능소화''는 이른바 ''마음''의 행방을 좇는 시여서 절제되어 있고 고즈넉하나 행간(行間)이 표현된 것 이상의 또 다른 의미를 내장하고 있지 않으며 언어와 언어 사이의 긴장 또한 없다. 긴장이 없으니 시적 울림이 없고 울림이 없으니 좋은 예술품이 거느리기 마련인 소란 뒤의 고요의 그늘이 없다. 모호한대로 생활의 실감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 ''버스칸에 앉은 돌부처''인 듯 싶다. "생은 울렁거림이다;(누군가 말을 걸어오는지)/ 목젖을 타고 올라오는 건/ 환멸이란 이름의 멀미다"로 시작되는 1연은 젊음 특유의 직핍하는 절규이며, 2-3연의 세부묘사는 죽음을 잊고 사는 오늘의 도시현실에 대한 통렬한 고발로도 읽힌다. 그리고 "낯익은 해골 하나가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는 파격을 선사하고 있는 4연은 이제까지의 모든 현실을 다시 공()으로 돌리는 불교적 각성에 이르게 함으로써 이 시가 세속의 삶을 명상의 눈으로 담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표현이 다소 모호하고(하기야 모호성도 현대시의 한 특장이다) 얼개가 좀 삐걱거리긴 해도 환멸과 도시적 삶의 권태까지를 포함하여 생활인의 구체적 실감에 기초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며, 이 작가의 앞날의 가능성에 선자들의 더 큰 기대를 걸기로 한다.

 

- 심사위원 유종호 <문학평론가>, 이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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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踰里에서 / 장만호

 

 

함부로 살았다, 탕진할 그 무엇도 없었다

그대에게 말할까 말까, 사랑하는

어머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석달 열흘

한 줌의 마늘과 쑥을 드시고도,

강림하지 않는 아버지를 우리가 기다릴 때

그대를 만나고 미아리나 수유리 저녁을 만날 때

간혹 희망은, 뽑지 않은 사랑니처럼

아팠다, 생애의 묽은 죽을 반추하거나

희망과 혁명을 바꿔 부르기도 했지만,

집 근처 국립묘지의 무덤과 무덤들

푸르고 단단한 입술들이 일러주던 또 다른 피안은

시대의 낙엽들 되돌아 갈 길을 묻고 있었다

그렇게도 읽을 수 없는 날들이 지나갔다

세상은 징검다리였다

삶은 금간 항아리 같았다

성급한 이해가 한 생애를 그르쳤으므로

점자를 읽듯 세상을 더듬거렸으나

잇몸인 물과

행간에서 깊어지는 한숨 같은 우물들

읽을 수도 재울 수도 없는 세상을

탕진할 것 하나 없는 시절을

한 켤레 벙어리 장갑처럼, 함부로

나는 살았다

 

 

 

 

2001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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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이제는 많이 늙으신, 계속 늙어가실 어머니에게 이 기쁨을 드려야겠습니다.

 

봉문(封門)하고 산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 속에 있지 않으려고, 스스로 빚어 올린 항아리에 갖혀 지내며 시를 읽는 밤이 있었습니다. 예민해진 귀는 작은 소식에도 멍멍해졌습니다. 간혹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했지만 그 이름 부르지 않았습니다. 상처라는 걸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곱게 키우던 새를 날려 보내며 세상의 조롱 속에서 한껏 자유롭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깨달음도 없이 나는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문도 창도 길도 없는 항아리 속에서 나오기 위해, 굳은 마음을 깨기 위해 나는 그 마음과 같이 넘어져 굴렀습니다. 계속 굴러가 시장에 이를 때까지…….

 

'큰 현명함은 시장에 숨는다'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비록 작은 현명함도 못되겠지만, 상대를 용인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거래하며, 그 거리에서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말들을 엮어 꽃을 만들며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 송이씩 나눠주고 싶습니다.

 

이 당선의 기쁨이 그런 힘으로 치환되기를 바라며 부디 내 시가 깨달음의 경지로 떨어지지 않기를, 그래서 계속 삶 속에서 기우뚱거리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종암동 시절의 식구들, 문창반 선후배님들, 고전기타부의 사람들, 인생의 모든 스승들과 뽑아주신 선생님들, 애정으로 가르쳐 주신 최동호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서운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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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들이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 너무들 비슷비슷하다. 유행처럼 생긴 대학의 문예창작과나 각종 문학강좌 탓이 아닌가 싶다. 시란 어차피 남과 다른 시각 없이는 쓸 수 없는 것, 이런 시각은 손기술의 훈련만으로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감각적으로 세련된 시들이 적지 않으면서도 큰 울림을 주는 시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도 이번 심사를 하면서 느낀 점이다.

 

하지만 최승철('눈 덮힌 돌''목도장이 있는 골목' ), 이현승('근황''모과'), 장만호('수유리에서''겨울잠' )의 시는 크게 돋보인다. 최승철의 시에는 생활의 음영이 짙게 배어 있다. 특히 '목도장이 있는 골목'의 분위도 시를 재미있게 읽히는 데 한몫을 한다. 표현을 공연히 모호하게 하여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게 만드는 버릇은 고쳐야 할 것 같다. 이현승의 시는 남과 비슷하지 않은 시로서 매우 개성적이다. '근황'이 가장 좋았는데 이만큼 유니크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한데 수준에 미달하는 시가 여러편이다.

 

장만호의 시는 우선 읽기에 편하다. 자연스럽고, 그 나름의 리듬도 갖고 있다. 젊음만이 가질 수 있는 회한이며 안타까움, 그리움이며 깨달음 같은 시적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지만 남의 것이 아니고 진짜 자기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억지로 만든 시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 점은 매우 값진 것이다. '수유리에서'가 가장 빛나는데, "점자를 읽듯 세상을 더듬거렸으나" 같은 비유도 시에 생기를 더한다. 밝고 환한 분위기의 '원정'(園丁)은 생명감으로 충일해 있고 완결성에 있어서도 돋보인다. '청어'(靑魚)도 그가 시를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자질을 가졌음을 말해주는 균질감 있는 시다. 우리는 그가 시인으로 출발할 준비를 충분히 끝냈음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주저하지 않고 '수유리에서'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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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한 잎 / 최용수

- 용역 사무실을 나와서

 

 

날이 저물고,

마음 맨 안쪽까지 가벼워질대로 가벼워진

낙엽 한 잎이 다 닳아진 옷깃을 세운다

밥 익는 소리 가만히 새는 낮고 깊은 창을 만나면

배고픔도 그리움이 되는 걸까

모든 길은 나를 지나 불 켜진 집으로 향한다

그리운 사람의 얼굴마저 도무지 생각나질 않는

바람 심하게 부는 날일수록

실직의 내 자리엔.

시린 발목을 이불 속으로 집어넣으며

새우잠을 청하던 동생의 허기진 잠꼬대만

텅텅 울린다

비워낼수록 더 키가 자라는

속 텅 빈 나무 앞에 가만히 멈추어 섰을 때,

애초에 우리 모두가 하나였던 시절이 그랬던 것처럼

먼데서부터

우리 삶의 푸르른 날은 다시 오고 있는지!

길바닥에 이대로 버려지면

어쩌나

부르르 떨기도 하면서

구로동 구종점 사거리 횡단보도 앞,

누런 작업복 달랑 걸친 낙엽 한 잎이

한 입 가득 바람을 베어 문다

세상을 둥글게 말아 엮던 달빛이 하얀 맨발을

내려놓는다

 

 

 

 

200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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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꽤 열정적이었던 문학청년 시절이 내게도 한때나마 있었다는 게 새삼스럽다. 군 제대 후,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느 것 하나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많은 이름들이 반짝 나를 스쳐가는 동안 살아서 외로웠던 날들이 많았다. 어떤 길은 반드시 갔어야만 했고 또 어떤 길은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오랜동안 있었지만,작년에 만난 몇몇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름대로 의미있고 소중한 작업들을 시작했다. 이 사회 혹은 세상에서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할 일을 나는 서른이 되었서야 하게된 셈이었다.

 

아주 가끔씩 시를 적었다. 창작의 성과물로서가 아니라 그저 생각날 때 일기를 쓰듯이 말이다. 적어도 시 적는 동안에는 스스로에 대해,이웃들에 대해고민할 수 있었던 게 나에게 더없이 소중했다. 반강제적으로 친구에에 등 떠밀려 응모를했고 그리고 염치없이 당선이 되었지만,내게 시는 앞서 밝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게 사실이다. 삶의 많은 사소한 부대낌을 접어가면서까지 시를 적진 않을 것이다. 다만,더욱 몸을 부려 시 적는데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다는 재미없는 다짐을 해볼 뿐이다.

 

공사현장에서 지하 공장에서 자신들만의 세상을 묵묵히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두 동생에게 아주 작은 위안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등 돌리기에도 바쁜 시절에 변변치 못한 나에게 안부를 물어주던 몇몇 벗들이 있다는 게 살아오는 매순간 힘이 되었다. 그들에게 한 번쯤 질퍽한 술이라도 대접해야 겠다는 생각을 오래도록 했었는데,그러한 계기와 여건을 한꺼번에 마련해준 두 분 선생님께 다른 그 무엇보다도 감사드리고 싶다.

 

새 천년에는 하루라도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심사평] "생활 속 소재... 밝고 따뜻하다"

 

시들이 틀에 맞춘 것처럼 너무 비슷하다. 산문시와 운문시 또는 한 시에서 산문과 운문을 적당히 배합하는 형식부터 그렇다. 신춘문예를 위한 특별한 텍스트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내용도 서로 비슷비슷하고 알쏭달쏭이다. 억지를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시는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만드는 것, 쓰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냥 만드는 것은 아닐 터이다.

네 사람의 작품을 주목해서 읽었다. 최승철의 작품 중에서는 '편지에게 쓴다'가 가장 재미있게 읽힌다. 제목은 좀 이상하지만 불안하고 무언가 을씨년스러운 작자의 느낌이 상당한 호소력을 지닌다. 한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목소리다. 요즈음 유행하는 젊은 사람들의 시와 너무 다른 점이 없다. 이현승의 시는 장황한대로 지루하지 않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근황' 같은 시는 경쾌하고 발빠른 느낌을 준다. 시어의 선택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안정감이 없다.

김성곤의 시는 무언가 하고싶은 얘기가 있는 것 같은데 선뜻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만추'가 가장 좋은데 좀 산만하다. '다물도' 같은 시가 왜 지루하게 느껴지는지 작자는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용수의 시는 생활 속에서 가져온 소재이면서도 밝고 따뜻해서 좋다. '낙엽 한 잎'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는데 고달픈 삶의 현실을 다루었으면서도 어둡거나 부정적이지 않고 그지없이 아름답다. "누런 작업복 달랑 걸친 낙엽 한 잎이 / 한 입 가득 바람을 베어 문다" 같은 비유도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리라. '그녀 이야기'도 쌈박한 시다.

이상 네 사람의 시 가운데서 최운의 '낙엽 한 잎'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다른 응모자들과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 당선작으로 뽑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자기 말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평가되었다.

 

- 심사위원 유종호.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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