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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시라시 / 염민숙

 

 

초봄이면 한강으로 시라시를 뜨러 갔다

빚보증으로 논밭을 날린 후 어머니는

책값이며 차비가 없어 꾸러 다녔다

어머니가 떠오는 시라시는

식구들 마른 삶에

도랑물을 내었다

 

시라시를 따라 강의 깊은 데까지 가

등에 업힌 막내와 자맥질도 하였다

눈물자국 같은 물빛이 뜰채에 걸려나왔다

물의 정수리를 오래 들여다본 죄로

햇살에 눈이 멀어

어머니 돌아오는 걸음이 출렁거렸다

 

어디 먼 바다로부터

제 어미의 길을 되짚어

시라시가 오는 철이다

곁에 감기던 식구들 다 떠나고

어머니 혼자 봄밤을 지새우는 날

얼음장 떠가던 그 밤처럼

무릎 시리게 떠오르는

물빛 기억들

 

*시라시: '시라시'라고 부르는 작고 가는 실뱀장어. 외국에 양어종자로 팔았다

 

 

 

[밀크북] 시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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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시의 곁을 맴돌며 떠나지 못한 저에게"

 

지난여름 교통사고로 눈을 조금 다쳤습니다. 치료를 받으면서 녹내장 초기증세를 알게 되어 앞으로 올 실명을 예방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식은 시의 곁을 맴돌며 떠나지 못한 저에게 모닥불로 다가왔습니다. 껍질 벗기려다 심은 도라지가 꽃 핀 것처럼 숨어 있는 것 꺼내고 싶은 열망이 듭니다.

 

걸어온 모퉁이 돌아보면 고통은 혼자 오지 않고 기쁨도 같이 데리고 왔습니다. 어깨의 짐을 걸머지고 오는 동안 웃음을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지나고 보면 삶의 자락에 빛이 들거나 그림자가 지든지 그것이 모여 아름다운 무늬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환희가 그 자락에 밝은 그림 하나를 짜 넣는 일이기에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길이 맞닿을 때까지 천천히 걸어가겠습니다.

 

문학의 길로 이끌어주신 시인 장석남, 김우섭 선생님과 지도해주신 여러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새얼문학 찬용, 진채, 수조, 선우, 선호, 계숙······ 함께 길을 걸어온 문우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끊임없이 문학적 소재와 이야기들을 길어다 부어주는 성식씨와 가족들 사랑합니다. 넘어질 때마다 일으켜준 광미, 경희, 지은, 명자, 여러 친구들과 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작] 뿌리 / 최재영

 

 

뿌리는 힘이 세다

수십 년 세월을 밀어 올리는 힘으로

매일 쥐눈이콩 같은 눈망울을 매달고 길을 낸다

기억 켜켜이 어둠의 지층을 뚫고 나아간 흔적이

시퍼런 강물처럼 겹겹이 굽이치는 저녁

뿌리는 뿌리만으로도 온전한 몸통을 이룬다

어둠보다 두터운 벽이 있으랴

누구도 읽을 수 없는 뿌리의 내력을

더운 숨결 내뿜는 잔털이 말해준다

축축한 흙냄새에 처음 내딛는 발걸음이 말랑해지고

이제부터 모든 어둠은 뿌리의 시작이다

뿌리의 문을 밀면 저 안쪽 깊은 곳에서

쿵쾅이며 들려오는 우렁찬 함성들

지상의 푸른 잎들이 땅 밑으로 신호를 보내는지

파르르 가녀린 심호흡을 내 뱉는다

누구나 보이지 않는 어둠의 시간 있었으리라

폭풍우 몰아치는 날에는 잠시 주춤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어느 종족이 이리 형형한 눈빛을 가졌는가

단단한 암벽을 파헤치는 힘으로

여전히 길을 탐색하는,

뿌리에게는 어둠도 환한 불빛이다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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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가 주최하고 금융위원회 후원, 신한은행 협찬으로 실시된 '제10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당선작을 선정했습니다.

 


우수상(신한은행장상)에는 상금 300만원, 가작에는 상금 100만원이 각각 지급됩니다. 당선작은 2015년 1월 1일 머니투데이신문과 홈페이지에 게재됩니다. 시상식은 내년 1월 21일(수) 오후 3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국화실에서 열립니다.

당선자께서는 시상식에 참석해 상장과 상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응모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12월 '제11회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공모가 이뤄질 예정이니 많은 성원과 응모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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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 정임옥

 

 

나무 뿌리에 앉아 잠이 들었다

뿌리가 말을 걸어왔다

바람이 이따금씩 그 말을 끊어 놓았다

빈깡통이 재활용 쓰레기통에서

꽃으로 피어나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다시 뿌리가 말을 걸어 왔다

이번에도 바람이 귀를 막아버리자

뿌리가 가지 끝으로 손을 내뻗었다

만져지지 않았다

네가 만져지지 않던 지난날의 내가

저 뿌리와 같았음을 알겠다

네 마음 끝까지 오르지 못한 내가

나무의 빈 물관에 불과했음도 이제는 알겠다

네가 잠 속까지 따라 들어왔다 잠에게 말을 걸자

꽃들이 일시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바람도 숨을 죽였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침

가지 끝에 매달린 뿌리를 본다

 

 

 

 

2001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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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가슴 깊은 곳에서 우담바라꽃 피워내듯

 

밤새 뒤척이고 난 새벽 불곡산을 올랐다. 돌아와 문을 여는데 발밑으로 이슬 하나가 툭, 떨어진다. 옷에 묻히고 온 많은 이슬 중에서 단 한 방울만이 나를 떠난 아침, 젖은 옷 벗어 걸며 내 안에서 마르지도 못하고 떨어지지도 못한 그들에게 미안했다.

 

얼마 전, 삼천 년 만에 핀다는 우담바라꽃을 보았다. 금불상을 뚫고 나온 그 꽃은 마치 이슬방울 같았다. 시를 쓴다는 것이 가슴으로 우담바라꽃을 피워내는 일이 아닐까. 일생동안 갈고 닦아 좋은 시 한 편 써야 할 숙명의 길로 나는 지금 한 발 들어서고 있다.

 

삶은 생각했던 대로, 계획했던 대로 오지 않음을 알고 느꼈던 비애마저 기쁘게 감싸 안도록 다독여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 친정 부모님과 종가의 맏며느리 역할에 소홀함을 덮어주느라 더 바쁘셨던 시어머님, 글쓰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는 현식과 담비 그리고 야생화로만 알았던 당신이 내겐 우담바라꽃이었음을.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

 

시의 호흡법조차 모르는 내게 산소호흡기를 끼워주신 정호승 선생님, 이제 '어떻게' 보다 '무엇을' 쓸 것인가로 고민하라고 하신 말씀 늘 기억하겠습니다. 황야에 조심스레 밀어올린 대궁에 튼실한 뿌리가 되어주신 두 분 심사위원님께도 감사드린다.

 

슬프게 떠난 이와 그리움으로 머무는 뭇 인연들에게도 인사해야겠다. 그들과 함께하고, 함께 할 세상이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파밀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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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정직한 자기성찰 돋보여

 

조필수, 이채운, 정임옥 세 분의 작품을 놓고 당선작을 결정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들 가운데 어느 것을 당선작으로 하더라도 별무리가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임옥의 '뿌리'가 당선작이 되었는데, 이 작품은 시적 완성도에서 뛰어날 뿐 아니라 주의 깊은 관찰력, 섬세한 즉물성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다정한 분위기를 이루어내고 있는 수작이다. 정직하고 겸손한 자기성찰이 그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정 씨의 모든 응모작은 당선작에 못지않았으며, 특히 '명암방죽'은 보기에 따라서 더 매력있는 작품으로 뽑힐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채운의 '리듬체조''사과알 속의 수행자'도 당선작에 비해 손색없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한편 조필수의 '내부 순환로'는 패기와 독창성이 돋보인 작품이다. 당선권에 든 분들은 아니지만 최승철의 몇몇 작품들도 힘이 있어 보였으며, 하정임의 '햇빛별빛잔치'도 동화적 목가성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 심사위원 황동규·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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