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티건 풍으로 / 신윤서
선풍기의 날개 사이로 부는 바람은, 내 이름이다. 모기장을 둘러 친 침대에 기대어 워터멜론 슈가에서를 읽는다.
약속한 날들이 지나가버리고, 나는 결코 책제목처럼 달콤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몹시 쓸쓸했다. 당신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들판에 망연히 앉아 망초꽃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다.
강을 지날 때마다 높이 튀어 오르는 숭어의 은빛 비늘이거나,
빼곡히 적힌 수첩의 전화번호 따위로 우리의 관계가 표현되었으니,
그것은 참 슬픈 일이라 생각했다.
창가에 놓인 유자나무 한 그루가 칠 년째 열매를 매달지 않은 이유는 뻔하지 않겠는가.
선풍기의 날개 사이로 부는 바람이 나를 한 페이지 넘긴다.
오래 전 쉴 새 없이 내게로 날아들었던 그대들의 열렬한 편지들이 내 삶을 두껍게 하여
그동안 아무도 나를 즐겁게 읽어주지 않았다.
가끔은 아침을 거르고, 벌에 쏘인 듯 다급하게 지평선으로 가버렸다.
어쩌면 당신은 망초 속에서 늘 울고 있을지도 몰라서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 사이로 짙은
안개가 내려앉는다.
경부선 첫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끝내 돌아서질 못하는, 여행 가방처럼 나는 무겁다.
긴 치맛자락처럼 책의 내용에 굵게 밑줄을 그으며, 서성이고 망설이다 끝내 나는
당신의 기억 속에서 현실로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 이름이 떠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선풍기 바람이 불어오는 모기장이 쳐진 침대 위에 누운 나의 반쯤 드러난
가슴을 열고 들어와 나를 달콤하게 읽어주기를 바란다.
당신이 나의 주인공이 되어 들판에 망연히 앉아 망초꽃이 흔들리는 것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군과 실천문학사를 따르면 신씨는 이번 '제2회 오장환신인문학상'에 '브라우티건 풍으로' 등 5편의 시를 응모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신씨에게는 상패와 500만 원의 상금을 주고, 수상작은 다음 달 발행하는 '계간 실천문학' 겨울호에 실린다.
이번 '제2회 오장환신인문학상'에 전국에서 150여 명이 750여 편의 시를 응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사를 맡았던 송찬호·최금진 시인은 심사평에서 "신인으로서 지녀야 할 도전정신과 참신성, '재치'를 '가치'로 바꿀 줄 아는 능력, 그리고 투고작들의 한결같은 완성도를 높이 샀다"고 말했다.
당선작인 '브라우티건 풍으로'에 대한 평은 "당신과 나의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을 그리고 있다. 실험성과 사실성으로 양분돼 있는 듯한 지금의 문학 구도에서, 존재의 의미를 고찰하고자 하는 그의 작품들은 분명 희귀한 것이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이유도 이에 있다"고 밝혔다.
신씨는 대구에서 출생해 부산에서 성장했다. 그는 2012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을 받았다.
군은 회인면 출신인 오장환(吳章煥·1918~1951) 시인의 시적 성과를 기리고, 나날이 부박해지는 문학적 환경 속에서 시의 현실적 위의를 되새기기 위해 지난해 이 상을 제정했다.
오 시인은 한국 아방가르드 시단의 흐름에서 김수영과 황지우로 이어지는 하나의 길을 개척한 시인으로 1933년 '조선문학'에 '목욕간'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오 시인은 이후 '시인부락'과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성백(1937년)', '헌사(1939년)' 등의 시집을 남긴 뒤 1946년 월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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