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익 시인이 처음 시단에 나왔을 때,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 ‘비애와 우수의 시인’으로 문단은 기억한다. 그 말에 문인들은 매우 공감했다. 그리고 그는 나이가 들면서 더욱 이미지를 선호하게 되고 정교한 언어에 집중하면서 저자는 사물시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였다. 차츰 세월이 지나면서 시에다가 인간의 현실적 삶을 그려내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시와 인간의 고뇌와 번민을 염두에 두면서 작업을 했다.
이렇게 지난 과정을 살펴보면 그의 시는 이미지와 정서, 그리고 관념이 하나로 묶여져 있음을 실감하는데, 관념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집 『불과 얼음의 콘서트』에서 밝힌 것처럼 허무의 낭만주의는 시작에서 ‘뜨거운 열망과 차가운 절제 사이’를 명료하게 짚어서 걸러냈다. 서로 모순된 에너지끼리 상호 침투하면서 특유의 화음을 발생시키는 일이 이수익 시의 본질적 사명이므로, 허무의 낭만주의는 아직 젊고도 푸르다
이수익李秀翼 시인은 1942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서울대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함.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 그 이후 동인지 『현대시』에 들어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함. 저서로는 1969년 첫 시집 『우울한 샹송』을 펴내고 이어서 『야간열차』 『슬픔의 핵』 『단순한 기쁨』 『그리고 너를 위하여』 『아득한 봄』 『푸른 추억의 빵』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꽃나무 아래의 키스』 『처음으로 사랑을 들었다』 『천년의 강』 『침묵의 여울』 등 12권을 펴냈으며, 시선집으로는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불과 얼음의 콘서트』 등이 있음.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협상, 지훈문학상, 공초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부산시문학상 등을 수상함.
[수상소감] 45년 전 지훈 선생의 질책을 떠올리며
기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순간 당혹감도 있었습니다. 바로 얼마 전 한국시인협회가 운영하는 제33회 ‘한국시협상’을 수상한 터라 연거푸 제가 상을 받게 되니까 이 연쇄적인 상복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얼떨떨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제1회. 그것은 하나의 새 출발의 선언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갈 진로와 행보를 가늠하며 귀중한 첫 수를 두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 시문학사에 큼직한 족적을 남긴 고(故) 조지훈 선생님의 지고한 시정신과 그 업적을 기리는 사업에서 제가 첫 번째 행마의 역을 맡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영광이면서 아울러 엄중한 책무임을 절감합니다.
이런 복합적인 느낌과는 별도로, 저는 ‘芝薰償’ 수상 소식을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제 어릴 적에 있었던 소중한 추억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시 쓰는 데 꽤 소질이 있는 학생’으로 친구들한테 알려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국어 선생님이 숙제로 내준 시 한 편 지어오기에서 단연 제가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부터 저는 공부는 뒷전이고 시간만 나면 엎드려 시를 끼적거리는 문학소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당시(1950년대) 중고등학생들 사이에 거의 유일한 잡지였던《학원》에서 매년 주최하는 ‘학원문학상 작품공모’에 응모해서 뜻밖에도 입상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생이 선배 중고등학생 틈에 끼여서 제4회 ‘학원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그 해 가을은 정말 하늘 높이만큼 뛸 듯이 기쁜, 그런 나날이었습니다. 그 때의 입상작이 시〈농촌의 오후〉였는데, 그 작품을 뽑아준 심사위원 두 분 중에서 한 분이 바로 지훈 선생님이었습니다. 지금도 선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지훈 선생님은 제 작품평의 말미에 “시가 따분하고 맥이 없다”며 작품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 앞에서는 무어라고 칭찬을 하신 듯한데 그런 내용은 잘 기억되질 않고 이런 결점만 오래오래 남아있는 걸 보면 제가 선생님의 그 지적을 소중한 교훈으로 받아들인 듯합니다.
어쨌든, ‘학원문학상’ 수상은 저를 대내외에 공개적으로 ‘시를 잘 쓰는 아이’로 부각시켜준 최초의 사건이 되었으며, 바로 그때의 고무와 성취감이 결국 오늘의 ‘시인 이수익’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제게는 내밀한 인연이었던 조지훈 선생님과 두 번째의 만남이 제1회 ‘지훈상’ 수상자로 이어지게 된 것을 저는 아마도 중학교 2학년때부터 40여 년 세월을 꾸준히 시쓰기에 정진해 온 저를 하늘에서 지켜보신 선생님께서 가상타 여기시며 음덕을 베풀어주신 게 아닐까 하는 묘한 생각도 가져봅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제 제1회 수상자로서 짊어져야 할 보이지 않는 구속과 책임도 은근히 느끼고 있습니다. 상을 받은 사람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으면 앞으로 그 상의 존재 가치와 권위가 퇴색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꽤 나이를 먹었습니다. 아무리 ‘인생은 60부터’라고 매스컴에서는 화려한 언사로서 초로의 인생들을 격려하고는 있지만, 나이 60에 앞으로 이룰 수 있는 일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큰 욕심을 가지려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앞으로 제 시의 건강성이 유지, 발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만은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이를 실천하는 데 견마지로(犬馬之勞)의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제가 보고 느끼는 중견 및 중진 시인들의 작품 쓰기의 어려움은 주로 신선미와 탄력의 상실에 있는 듯합니다. 시의 소재가 어쩔 수 없이 회고적인 것이 된다거나 표현이 평면화되고 서술적인 것으로 기울어 버립니다. 체험 영역이 점차 축소되다보니까 소재에서 쉬이 한계를 드러내게 되고, 노화에 따른 집중력의 저하로 표현은 느슨해지고 상상력은 날지 못하는 새처럼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이런 보편적 흐름에도 아랑곳없이 탄력과 절제를 보이며 신선하고 깊이 있게 소재를 다루는 중견 및 중진 시인들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 수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젊음의 패기를 작품으로 보여주는 선배와 동료 시인들을 존경하며 저 역시 그런 시인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직도 저는 경제활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생활인의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올해부터는 작품 쓰기가 본업이고 직장일은 부업이라는 생각을 갖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시쓰기를 위해 갖는 직업정신이야말로 제 시의 건강성을 복원하고 유지, 발전시켜줄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전 같으면 원고 청탁을 받아야 어쩔 수 없이 작품을 쓰던 태도를 버리고 이제부터는 시쓰기가 나의 피할 수 없는 일과요 책무라는 마음가짐으로 저의 생활방식을 규제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과연 얼마나 제가 자신에게 부과한 책무를 수행해 나갈지 알 수 없는 터에 이런 욕심을 공개하는 걸 보면 아직도 제 기분은 수상자의 흥분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끝으로, 제게 다시 한번 저의 현실적 위치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지훈상’을 제정하고 제게 큰 영광과 격려를 주신 ‘지훈상 운영위원회’와 (주)나남출판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1회 지훈문학상 심사보고
芝薰賞의 문학부문 심사위원들은 지훈의 활달한 기상과 높은 지조, 겨레의 문화 전통에 대한 깊은 사랑이 이 상을 통해 계승되어, 한국문학의 발전에 오래도록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심사위원들은 1999년 3월 1일부터 2001년 2월 28일까지 발간된 시집들과 평론집을 대상으로, 나남출판사 편집국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목록 가운데 30여권의 작품집들을 선정한 후, 각자 2주일간에 걸쳐 이를 검토하였다. 이 검토의 결과, 최종 수상작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물망에 오른 작품은,
김정환,《해가 떴다》
송재학,《기억들》
신대철,《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
이수익,《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
등 4권의 시집이었다. 심사위원들은 장시간의 논의를 거쳐 이 가운데 이수익 시인의 시집《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던》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김정환 시인의 시집은 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노력이 높은 시적 서정성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송재학 시인의 시집에서는 인간의 삶과 자연질서 간에 조화를 찾으려는 섬세하면서도 광활한 시선을 만날 수 있었다.
신대철 시인의 시집은 자연의 엄숙한 힘을 가난한 삶을 통해 재발견하는 특별한 감수성을 보여 주는 한편, 분단조국의 비애와 그 극복의 희망을 힘찬 언어로 활달하게 풀어내고 있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수익 시인의 시집은 단정하게 명징한 시어와, 절제된 표현으로 한 도시민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구성은 단단하고 지적이다. 시의 소재는 늘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세목에서 구한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해석하는 지혜는 인간사의 요체를 짚어내며, 그것들을 형상화하는 상상력은 종종 존재의 비극에 닿아 있다.
그의 오랜 시력과 부단한 창작의 열정도 그를 수상자로 결정하는 데에 큰 요인이 되었다. 이수익 시인은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된 이후《우울한 샹송》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8권의 시집을 상재하고, 한국시단의 중견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훌륭한 시작품을 발표해 왔고, 문학에 높은 열정을 지닌 이수익 시인이 제1회 문학부문 수상자가 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하였다.
심사위원 유종호(前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 황현산(고려대 불문과 교수) 김종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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