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상자 : 송재학
2. 수상작품 : 「감은사에 가다」외 5편
「감은사에 가다」
감은사는 없다 감포 바다가 눈 높이까지 밀려와도 감은사 스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무너진 돌들을 쌓아 놓은 두 개 석탑이 감은사를 변명한다 지도에도 감은사로 적혀 있고 길을 물어보면 모두 아 감은사 말이지요, 감탄한다 시커먼 찰주까지 남아 있는 감은사 탑과 탑의 균열은 감은사의 부재와 더불어 꽃핀 현호색을 에워싼다
저 연보라빛 현호색을 가로질러 감은사를 볼 수 있으리라
절은 늘 가파르다 계단과 회랑과 높은 천장의 가파름은 삶과 절의 경계인 것 현호색은 감은사가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동안 보라빛인 양 내 속에서 번진다
그곳에 감은사가 있어야 하는지 저녁 예불 소리를 듣거나 석등의 불빛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몇 백 년 동안 감은사는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 감은사에서 바다까지 수로의 기록과 석탑을 찾았다 내가 감은사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곧 밀어닥칠 해일의 기미와 내 마음을 본뜬 수줍은 현호색 무더기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한다 감은사에서 너무 지체했다 감은사 밖으로 나오면 먼 바다는 종소리 같은 저녁놀을 떠밀며 달이나 바람소리 곁에 있다 내 누추한 마음이 먼저 그것들을 짊어지기도 한다
3. 심사위원 : 김종길(시인), 장호(시인),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황동규(시인, 서울대 교수),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4. 심사평
「참신한 시상과 활달한 상상력운동」
본심에 회부된 일곱 분 모두가 수상시인으로 뽑힐 만한 능력과 자질을 지닌 분들이기에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30대로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60년대에 데뷔한 시인부터 80년대 시인까지 각기 경륜과 특징이 있어서 한 사람을 뽑아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다소 연륜이 있는 시인으로 임영조씨와 보다 젊은 시인으로는 송재학씨를 추천했다. 임영조씨의 작품들은 비교적 깊이가 있고 완성도가 높았으며 작품의 수준이 일정해 보였고, 송재학씨의 시는 참신한 시상전개와 활달한 상상력 운동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임영조씨의 시들은 안정돼 있는데 비해 생동력이 덜해보였으며, 송재학씨의 시들은 완성도가 다소 덜했지만 시적 패기와 열정이 신선하고 뜨겁게 다가오는 게 장점이었다. 심사위원들의 경우 두 분은 완성도 쪽에 점수를 후하게 매겼다. 이 과정에서 김달진 문학상의 선격이 논의되었고, 그 결과 앞으로의 가능성에 더 높은 평가를 주어 왔던 상의 성격을 고려하여 나는 송재학씨를 수장작으로 미는데 적극 동의하였다.
제5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송재학씨의 「감은사에 가다」외 5편들은 참신한 시상과 활달한 상상력 운동이 돋보이는 게 특징이다. 광물적 상상력과 식물적 상상력이 부드럽게 때로는 날카롭게 부딪치면서 현대적 삶 속에서 마모돼 가는 인간성과 위축돼 가는 생명력을 복원해내는 힘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도 장점이다. 〈산의 터널 공사가 시작되었다/ 햇빛과 소나무가 무너진다/ 는개와 푸른 새순/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의 길이 갈라지고 부딪치는/ 그곳에는 절벽이 없다/ 늙은 여자의 化粧은 봄날을 힘겨워 한다/ 다홍치마 아이가 목덜미를 봄볕에 맡긴다/ 〔중략〕/ 늑골을 뜯고 비집고 올라오는 노루귀 흰 꽃 옆/ 우레와 폭우가 서성대는 봄밤〉(「봄날」)과 같은 시에서 보듯이 광물심상과 식물심상이 빚어내는 날카롭고 부드러운 화음 속에 따뜻한 생명의 울림과 율감을 섬세하게 포착해서 형상화해내는 힘과 눈이 돋보이는 것이다. 다만 비교적 긴 산문시 호흡을 지닐 경우 시상의 중첩과 동어반복적 요소 및 율감의 매끄럽지 못한 것들이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의 곳곳에 튕겨 오르는 신선한 시정신의 건강성과 감각의 신선성은 앞으로의 더 큰 발전에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시인의 앞날에 더욱 정진이 있어서 대성해 가기를 빌면서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김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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