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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지리산 /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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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내 시의 주제는 / 이철산

 

 

 

 

 

 

 

 

 

 

 

강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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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그의 목소리는 피곤하지 않은 고음

 

70년대에 사회적 할례식을 받은 세대에게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그 어둡고 막막했던 시대의 창공을 섬광으로 채찍질하는 뇌성번개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대학이라는 피뢰침 아래에서 어떤 갚을 길 없는 부채의식과 접선과 그의 이름을 받아들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20년 뒤, 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이 문학상에 응모된 여러분들의 시편들을, 이른바 '심사'라는 명목으로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새 잊어먹었던 빚을 재촉하는 명세서들을 다시금 대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투고된 작품들을 여느 문학상 심사에서처럼 진품을 골라내는 보석 감정가의 잔뜩 찌푸린 눈으로 더 이상 볼 수 없었으며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서 나는 어느 수준에서 포기하고 읽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마침내 내 눈이 황규관의 <해방연서 1>9편을 만났을 때 번쩍 일어났던 시적 광채는 단순히 노동현장 체험을 저당으로 하여서 비슷한 것을 강요하는 것 같은 다름 응모작들을 일시에 빛 바래게 했다.

 

'나는 노동자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시절의, 소위 노동문학이나 민중시의 상투형들은 이번 응모작들 가운데 일정한 시적 수평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들에 여전히 남아 있지만 황규관은 그것을 벗어나고, 그러나 그것을 우회하지 않고 자신의 음성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것이 돋보인다. 물론 그의 목소리는 고음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것은 잘 조절된, 말하자면 구조를 가진 소리이며, 그래서 듣기에 피곤하지 않다.

 

사람을 금방 피곤하게 하는, 글로건화된, 이를테면 '투쟁', '해방', '노동'과 같은 완강한 말들을 그가 영락없는 시속에 녹여내는 것은, "내 하루의 노동이/강물에 몸던져 빛나는/한웅큼의 햇살처럼 벅찰 때/그대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해방연서 1)라는 구절 아니 "진달래는/오래 오래 운 눈빛처럼 더욱 붉고"(내 조국이 식민지일 때)라는 구절에서 입증되듯이 세상과 사물에 대한 그의 빼어나 서정적 시선 탓이리라.

 

심사위원 전원은 제6'전태일문학상'을 황규관으로 하여금 감당하도록 하는 데 유보없이 동의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이 흉흉한 90년대에 '새로운' 노동 시인(나는 그를 그냥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의 탄생을 축하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이철산의 <야생 황기>7편을 가작으로 상정한 것은 어쩌면 그가 더 길게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신뢰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시는 시인의 생애를 두고 볼 일이기 때문이다.

 

- 심사위원 황지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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