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눈 / 이재무
마을 회관 한 구석 고물상 기다리며
한 마리 늙고 지친 짐승처럼 쭈그려 앉은,
흙에서 한 때 쟁기가 되어 수만 평의 논 갈아엎을 때마다
무논 젖은 흙들은 찰랑찰랑 얼마나
진저리치며 환희에 들떠 바르르 떨어댔던가
흙에 생 담궈야 더욱 빛나던 몸 아니었던가
논일 끝나면 밭일, 밭일 끝나면
읍내 장터에, 면사무소에, 군청에, 시위 현장에
부르는 곳이면 가서 제 할 도리 다해온 그였다
눈 많이 내렸던 그해 겨울밤은 만취한 주인 싣고 오다가
멀쩡한 다리 치받고 개울에 빠져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저 또한 팔 다리 빠지고 어깨와 허리 크게 상하기도 했던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노동의, 그 오랜 시간을
에누리 없이 오체투지로 살아온 그가 오늘은
바람이 저를 다녀갈 때마다
저렇듯 무력하게 검붉은 살비듬이나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몸의 기관들 거듭 갈아 끼우며
겨우 오늘에까지 연명해온 목숨 아닌가
올 봄 마지막으로 그가 갈아 만든 논에
실하게 뿌리내린 벼이삭을 달디단 가을 볕
쪽쪽 빨아마시며 불어오는 바람 출렁, 그네 타는데
때 늦게 찾아온 불안한 안식에 좌불안석인 그를
하늘의 깊은 눈이 내려다보고 있다
시인 이재무(48)씨가 계간 <서시>가 주최하고 윤동주문학사상선양회가 후원하는 제1회 윤동주상 문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수상작은 시 <깊은 눈> 등 5편이다.
윤동주 시인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윤동주상은 우수한 작품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생의 건강성'을가진 시인을 선정한다는 취지로 올해 제정됐다
수상자에게는 24일 오후 6시 서울 인사동 대성그룹 강당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1천만원의 상금이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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