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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진

 

 

여기서 잠시 불을 붙였다 갑시다

 

여름을 빨리 불러오고 싶었어요 하지(夏至)의 높은 태양을

만원버스 안에서 같은 리듬으로 동시에

흔들리면서 서로를 기대하고

 

기다리면서

 

손이 녹을 수 있도록

몸이 따뜻해지도록

태울 것들을 좀 찾아봅시다

 

종점은 처음인가 봐요 당신에게서 반환점의 냄새가 나는데

한번 뒤돌아서 봐요 저 사람이 말하길

당신이 어제 앞에 앉았던 사람과 닮았다는데

 

잘 타는 것들 연기가

적게 나고 불빛이 멀리까지 가는 것들

내 전임자는 이런 여유를 허락한 적이 없었죠 원심력처럼 창밖을 보세요

동지(冬至)의 가까운 저녁을

저기 물미역처럼 하늘거리는 플라타너스들

 

전에는 이렇게 불을 피워 소식을 전했습니다

나는 잘 지냅니다 덕분에

 

잘 지내지 못해요

 

모닥불은 처음인가 봐요 어두웠다 밝아지는 건

주변의 습도가 높아서 그렇습니다 가스가 많으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다시 점점 멀어진다면

기념품 가게에서 그냥 나오는 사람처럼

여러 번 집었다 놓은 믿음은 어디쯤일까요

 

영생하는 사람은 늙지 않을까요 언제부터

소년이나 노인의 모습으로

망원경을 들어 기점을 찾아보세요

 

점차로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게 보일 겁니다

 

 

 

 

 

[수상소감]

 

마음이 자꾸 슬픈 것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나. 왜 이렇게 날이 서 있나. 왜 이렇게 쉽게 분노를 하는가.

 

근데 왜 나는 이렇게 화가 날까.

 

화를 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고 어떻게 화를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하철을 걷다가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사람 때문에 울컥 화가 난 적도 있습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전에는…… 미워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조금 미워하긴 했지만 다시 만난다면 잠깐의 어색함을 견딘 후 다시 잘 지낼 수도 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워하는 사람도, 만날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은 원체 그렇게 생긴 것이었습니다. 요 몇 년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을 다시 배우고 있었습니다. 분노, 슬픔, 후회, 회한, 죄책감, 미안, 부끄러움 같은 것들. 새삼 이것들이 이렇게 낯선 감정들이었는지 놀라웠고 여전히 슬프고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미안하고 여전히…… 화가 납니다. 여전히 쉽게 화를 내고 마땅히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기도 합니다.

 

나는 두려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누가 뒤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은지, 누가 내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지 경계합니다. 하지만 무엇이 최선의 방어가 될 수 있을까요. 같이 분노하는 것? 혹은 더 깊이 숨어 들어가는 것?

 

과거에 천착하고 기억을 곱씹을수록 부끄러운 일들은 계속해서 떠올랐고 그런 기억들 때문에 반성의 목록은 길어져 갔습니다. 시를 속죄하듯 써 내려갔지만

 

시는 속죄가 될 수 없고 나를 정화시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부끄러워하고 그것들을 직시하며 한 글자씩 눌러 써야했습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하며 쓰고 있었습니다. 시는 행동이 될 수 있을까? 시를 행동이라 부를 수 있을까.

 

지나간 감정과 행동들이 무거운 빚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 어찌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어찌할 수 없는 분노와 어찌할 수 없는 미안함 들을 청산하기 위해 애쓰며 지내고 쓸 것입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어쩐지 더 부끄러워졌습니다. 앞으로 더 경계하고 힘쓰라는 의미로 받겠습니다. 세 분 심사위원 선생님과 시산맥에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시인이 되겠다는 젊은 세대들의 관심과 열정은 여전히 두텁다. ‘여전히라는 부사가 필요한 것은 시를 쓰기에는 이 세상에 다른 것들이 무수히 차려지고 출현하고 있어서겠다. 하지만 시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시인다운 시인이 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이라는 것의 의미는 시인들의 행보에 기운을 실어주고 더더더 시인이 되어 가고 있음을 축복해 주는 일일 터.

 

9회 시산맥 작품상 본심에 넘겨온 작품은 총 5편이었다.

 

강재남 <일인칭 자기지시적 시점>

김관용 <바늘>

김정진 <()>

유병록 <짐작을 넘어>

전비담 <빈 삼다수 물병이 그리는 이름>

 

심사위원들이 당장 바랐던 것은 잘 쓴 시를 찾는 일이었겠지만 본심에 오른 여러 편의 시 앞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일에 몰두하였다. 이 작은 선별의 작업이 시단에 풍부한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이 될 거라 생각하니 더욱 그러했다.

 

몇몇 작품에서 보이는 푸릇푸릇함은 고마웠다. 몇몇 작품에서 파도치는 역량들도 뜨거웠다.

 

그러다 두 편의 시로 압축을 보인 것은 그 두 편의 시에서 그 무엇을 넘어서는 면이 분명 보여서이고 작품의 밀도 또한 묵직해서였다. 시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어떤 깊이에의 도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정진 시인의 시와 유병록 시인의 시가 바로 그 두 편이었다.

 

김정진 시인의 작품, <()>에는 상징적인 질문과 인간의 감정이 배치되어 있다. 두 배치가 교차하면서 사람을 흡인한다는 점이 시를 여러 번 읽게 해주었으며 짧지 않은 시임에도 시가 일찍 끝나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유병록 시인의 작품, <짐작을 넘어>에는 인간사에 소금이라는 재료를 끼워 넣어 한 편의 시로 아주 잘 절여 놓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금의 뒷맛 끝에 찾아오는 단맛을 읽었달까. 인생의 여러 신호들을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마음도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심사위원 모두는 그의 시 또한 여러 번을 읽었다.

 

본심에 오른 두 작품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는 두 작품의 호소력에 몸과 귀를 기울였다. 수상작 한 편을 가려내는 일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면, 상의 목소리를 좀 더 멀리 퍼뜨리려면 그 편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최종결정한 작품이 김정진 시인의 작품이다. 김정진 시인의 이 시에는 시를 쓰면서도 삶을 그리워하는 아련함을 시 속에 제대로 풀어 놓은 것 같았다. 그 순정을 높게 치는 것으로 했다.

 

수상작 <()>만큼 새로움이 기쁨이 되는 상은 늘어나야 한다. 폼 잡는 상 말고, 시인 아닌 시 자체만을 격려하는 일도 많아져야 한다. 이 상과 이 상의 수상자가 그 받침이 된다면 더 없이 좋겠다. 아울러 좋은 시를 읽게 해준 젊은 시인들께 감사한다.

 

- 심사위원 장옥관 정채원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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