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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의 방 / 김은상

 

 

그녀의 눈망울에 달이 차오르고 있었다.

 

저녁이 환해질수록

점점 작아지던 그녀의 방.

 

목련이 피어나고 있었다.

 

백태 안쪽 가만히 귀를 대보면

눈물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보다 야트막하게

대문 쪽으로 머리를 수그리고

 

코흘리개 아이들을 품고 있었다.

 

수레를 끄는 그녀의 등이 낡은

지붕으로 휘어져 가는 사이

 

아이들은 얼굴보다 큰 뻥튀기를 깨물며

흙벽 모서리에 난 구멍을 긁었다.

 

술에 취해 밤의 목덜미에 칼끝을 대고

새벽을 엎지르는 아비를 긁는 것인지.

 

그런 악천후를 피해 돌아오지 않는

이역의 어미를 긁는 것인지.

 

철없이 벽은 긁을수록 환해져,

 

커져가는 햇빛과 엉켜

킥킥대며 방바닥을 뒹굴었다.

<

봄을 향한 나무의 비명이 꽃이라면

고통은 적멸에 가닿는 생의 환호일까.

 

수북이 쌓인 폐지 속에 숨었다가

세상보다 아득한 온기에 몸을 말고

스르르……,

 

눈을 감아버린

어린 고양이들의 잠.

 

곪은 달은 아물었다

덧나기를 반복하며

목련나무 가지 위에서 부풀었다.

 

혹 월식이 그리워지는 그믐이면

그녀는 명치끝에 고인 울음을

마른 밥그릇 떨어뜨려 설거지했다.

 

닦을수록 그늘이 깊어지는 꽃의 이명,

화들짝 달무리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아무도 깨지 않은 목련의 밀실이 있었다.

 

 

 

 

[수상소감]

 

사랑할 수 있을까?

 

청년의 어떤 날이었다. 삶의 기근을 원망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물었다.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태어나고 싶냐고. 어머니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태어나고 싶지 않아. 나는 벽에 주먹질하며 소리쳤다. 그럼 왜 살아야 해? 엄마도 다시는 살고 싶지 않은 이 세상을. 어머니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순간 알 수 없는 분노와 침묵이 뒤엉켜 방 모서리를 적셨다. 어머니가 내 손을 어루만졌다. 고요한 목소리가 울음을 끌어안았다. 사랑해라.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그때 즈음이었다.

 

시작의 난제는 동일성의 시학에 있었다. 모든 비유가 세계에 대한 폭력이거나 나에 대한 자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가 지켜 온 신념은 무기력하기만 했다. 내가 당신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당신도 내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가끔 분열을 앓았지만 이 또한 불가해한 삶을 향한 변명이거나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들이 명치 가득히 차오를 때면 마음의 저편에서 어머니의 말이 불효처럼 떠내려 오곤 했다.

 

김수영은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이 사랑이며 그것이 시의 형식이라 했다. 나는 수많은 시의 형식을 연습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곳에 사랑하는 자의 어쩔 줄 몰라 함이 있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다만 나에게 있어 시를 그만 쓴다는 건 사랑을 멈춘다는 뜻이었고, 사랑을 멈춘다는 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절필을 다짐하면 늘 누군가가 찾아오곤 했다.

 

이재훈 형이 그랬고, 길상호 형과 강재남 누나가 그랬다. 김산과 기혁 시인이 그랬고 김지명 시인이 그랬다. 리안 형, 박민혁, 김대진, 변혜지와 같은 소중한 문우들 역시 따뜻한 온기로 곁을 내주었다. 내가 시를 쓴다는 건 당신을 사랑하기 원한다는 의미였으며, 아직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남아 있다는 선언이었지만, 정작 나는 나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고마운 이름들이 많다. 김영국, 조영애, 현근, 영근, 준근, 은경, 애상, 은희. 나는 이들의 아들이자 동생이며 형이고 오빠이지만 매 순간 철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이 자리를 빌려 무한한 고마움과 애틋함을 전한다. 그리고 은사인 박형준 교수님과 김춘식 교수님, 박판식 시인께도 고개를 숙인다. 제자로서 한 번쯤 근사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었다. 끝으로 마음속에 간직한 이름들을 호명할 수 있도록 행운을 선물해 준 상상인 편집진과 심사위원께도 감사를 표한다. 나에게 주신 행운에 보답하는 길이 온전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의 모습을 살아내는 일임을 다시금 기억하겠다.'

 

 

 

 

[심사평]

 

1상상인작품상후보로 1차 심사를 거쳐 올라온 11편의 작품들은 고루 미학적 품격과 개별성을 갖추고 있어서 우선 본심으로 올릴 세 작품을 고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심사를 맡은 우리는 가변차선, 목련의 방, 잎사귀이 세 작품을 본심에 올리자는 데 모두의 의견이 빠르게 일치했다. 난관은 지금부터였다. 최종에 오른 시편들은 하나 같이 완성도가 높아서 어느 한쪽에만 점수를 주기가 애매했다. 무엇보다 세 작품의 언어가 가진 경향이나 성질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는 있어도, 각각의 문학적 가치를 놓고 본다면 그 미학적 위상이나 의미심장함의 경중을 따지는 자체가 부질없이 느껴졌다. 이는 선정 이유를 변하는 여타의 글에서 흔히 만나는 푸념을 여기서도 반복하듯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선택을 치열하게 번복한 끝에 제1회 상상인작품상 수상작은 김은상 시인의 목련의 방이 선정되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목련의 방은 두 개의 풍경으로 나눌 수 있다. 밤마다 술에 취해 식구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아비와 집을 나간 채 돌아오지 않는 어미, “얼굴보다 큰 뻥튀기를 깨물며 흙벽 모서리에 난 구멍을 긁고 있는 아이들. 이처럼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되는 가족 서사가 시의 배경이라면 신산한 삶의 비명과 울음이 전경화된 것이 목련의 방이다. ‘은 가족 서사 속에 갇힌 고통과 울음을 바깥으로 외재화하는 동시에 네모난 흙벽안으로 그것을 투영시켜 가둔다. ‘은 수레를 끌며 폐지를 줍는 그녀의 방이자 삶이고, “햇빛과 엉켜/ 킥킥대며 방바닥을 뒹굴던 아이들의 공간이자 생이다. 그리하여 가난과 폭력에 노출된 마음은 방에 갇힘으로써 극복되거나 해소되지 않는다. 마음이 회복되지 않은 시는 그것을 읽는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구체로 드러나는 타자의 서사가 보편적 슬픔을 획득했음은, 극복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미적 대상으로 바뀌었음을 가리킨다. 이러한 비극성은 한국인에게 꽤 보편적이다. 그리고 이 보편성이 지닌 공감의 힘이 존재의 슬픔을 승화시킨다. 넉넉한 보편성의 미학과 더불어, 김은상의 시가 의식의 고투로 더욱더 나아가기를 응원한다.

 

- 심사위원  이성혁 전해수 신상조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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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소금이 온다 / 김은순

 

장독대 그늘을 짓는 봉숭아 터질 무렵

소금이 온다

신한 비금도에서 소금 가마니를 등진 노새가 온다

수평선에 뜬 해와 달도 지고 온다

비금도와 도초도 사이를 유영하는

숭어와 농어 냄새가 함께 온다

 

밑창 구멍 뚫린 빈 항아리에

소금을 가득 채워 놓으면

종일 출렁이던 비금도 바다가 빠져 나온다

 

어머니는 빠져나온 비금도를 돌배나무꽃이라 불렀다

소금이 와서 바다 향으로 가득 채우던 날

항아리가 깨졌다

소금은 날짐승 길짐승도 찾는다지

발굽과 손톱이 빠지지 않기 위한 까닭이라지

 

이따금 돌배나무에서 배꽃이 피었는데

바다 냄새가 났다, 그런 날엔

부리 다친 새들이 소금꽃을 찾아 날아왔다

 

 

 

 

[금상] 연 / 최규목

 

외줄 위 한 잎, 영토가 광활하다

펄에 뿌리박고 뭍으로 줄기 밀어 올려

우레에 아픈 잎새 청약잎이 벌판이다

 

삼족오 깃발 세우고,

산맥너머 초원으로 군마 달리던 땅이다

새벽마다 펄펄 펴는 향기 진한 홍련백련

어느 왕조가 건져 올린 우리 얼인가

 

줄기 위의 잎사귀에 그늘이 진다

 

넓고 큰 잎에 요동이 진다

백가쟁명 해법들에 분단이 울고 진

 

* 요동 : 요하의 동쪽, 고구려의 옛 땅

 

 





[은상] 양각 / 최류빈

 

양각은 이기적, 배경을 뒤로 보내면서야 탄신한다. 섬처럼 돋아 홀로 잊혀지지 않으려 모든 양각은 듬성듬성 돋아나 정수리를 밝게 빛낸다고 믿었다. 낮게 깔린 저 먼 것들을 뒤로한 채 우뚝 솟은 솟대가 되어 혈관 같은 몸체로 교신하는. 양각의 묘선描線은 때론 날카로운 고함 힘껏 도드라져 볼록한 마루를 타고 내려오는 곡면마다 사연을 주워 담는다. 양각은 그렇게 거칠게 성난 바다의 높은 파고처럼 가라앉을 일 없을 줄, 하나의 장단이자 음각의 대변인 되어 주저앉을 일 없을 줄 알았다

 

불쌍한 양각은 홀로 등대가 되어 스스로 정수리가 되길 자처한다. 빛을 발하는 양각은 하나의 광-원이지만 밝게 빛나는 전력은 소진될 날 기다리는 죄수의 애달픔, 양각은 마모되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그의 모질게 용맹한 실선과 함께 막 태어난 새처럼 말랑거리는 주둥이 오물거리는 저 먼 뒤편의 음각들, 케케묵은 둥지에 겹겹으로 쌓아놓고 양각은 몸을 치장하고 밤바다로 나선다. 이기적인 양각은 호흡기관의 말단 책이 들이키는 공기로 먼저 목축이고, 도장의 마찰력으로 선두에 서 용맹하게 지휘한다. 이기적인 양각은, 이기적인 양각은 한 보 앞장선 만큼 고꾸라질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슬하에 헤일 수 없는 것들을 쓸어담고 홀로 이기적인 ………






 

[은상] 이를 뽑다 / 유영희

 

좀 전까지도 아무렇지 않던 이가

들이댄 거짓말 탐지기에 쏙 뽑혀 나왔다

변명할 틈 없던 입이 벙어리장갑처럼 불룩해졌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사랑 한번 하지 못한 죄

결백을 주장하기엔 너무 늦었다

 

내 몸에 싱크홀 하나 생겼다

뿌리 뽑힌 나무의 구덩이

이장을 한 구멍 같기도 하고

숭숭 뚫린 골다공 같기도 하다

 

실뿌리 끝에서 뽑아 올린 수액이 말라가는 동안

함박눈 내리던 정월 초닷새

훌쩍 떠난 아버지가 욱신거린다

 

부식된 뿌리를 감추고 살았을 아버지

탐지기를 들이대기도 전 쓰러져버린 고사목은

빠르게 허물어지는 어둠처럼 깎여나갔다

마취 풀리자 통증으로 피어나는 구멍

무너진 한쪽 언저리를 끝내 실토할 수 없다





 

[동상] 공기방울, 당신은 올라가고 / 박준영

 

인터넷은 커피를 마실 것이고 하루는 뜨거울 것이다 그래 날이 밝았어 가볍게, 가볍게 오늘은 가볍게 떠오르고 싶어

 

스위치를 켜고, 덜 깬 물들이 아침을 끓인다 유리 포트기 너머 조용한,

 

한판 승부, 물기둥과 공기방울의 튀기는, 커피향이 짙게 퍼진다 모닝커피 한잔에 숨을 쉬는 유니폼들, 소리는 커지고 빌딩은 높아간다

 

오후의 사무실은 강철발굽 닮은 포트기 안의 발광

 

, 뜨거!

 

비명은 방울과 충돌한다 물, 불이 어울러 기포는 기포로 들끓고, 거품 구겨지는 소리는 점점 가늘어진다

 

죽다 남은 달이 부글거리며 서쪽으로 하얘간다 뱃속에서 부레를 넣고 두둥 비행을 꿈꾸던 유니폼들이 추락한다 보름달이 뜨는 그믐

 

당신은 올라가고 나는 추락하고

 




 

[동상] 나흐트 무지크 / 김진열

 

하늘과 땅을 잇는 비가 내리는 날

골목에 파르르 줄 끊어진 기타

추락의 몸짓에도 꿈이 있었을까

떨어지는 빗방울은 울림통 위에 톡톡

밤이 깊어지면 누웠던 몸 일으켜

물의 율동이 어우러진 마이너 합주

통각을 잊기 위한 몸놀림이다

흠뻑 젖은 몸으로 불협화음을 이루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갈래 갈래의 춤

빗줄기 강해지면 감정은 골이 지고

잦아들면 그리운 음색으로

목울음 짙게 토해내는 세레나데

과격한 선율들이 천천히 힘을 거두고

풀어놓은 밤바람을 듣던 굽은 골목

저만치 무료했던 안마소 간판이 깜빡 인다

아픈 만큼 상처를 노래했고

깊어진 흉터는 공명통이 되었다

 

*나흐트 무지크 : 모차르트 세레나데 13.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에서 인용.

 

 


 


 

[동상] 나는 내일의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요 / 손지형

 

기억되고 싶어요

어제 나를 본 이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오늘 홀로 낮잠이나 자야 한다 해도

나는 내일의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요

 

그 신념으로 나는 어제도 살아내었고 오늘도 살아왔어요

내 요동치는 심장과 저 가느다란 시계 침이 항상 같을 수는 없는 거겠죠.

나는 그저 이 시계 침과 박자를 맞추던 내 심장을 기억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박동을 기록하고 싶어요.

 

이 다음에 누군가는 시계 소리가 아닌

누군가의 심장 박동에 맞춰 살아갈 수 있기를.

나는 오늘 밤도 가장 의미 있고 가장 쓸모없는 낱말들로

내 오랜 천장을 채웁니다.





 


[가작] 마른 빨래 / 이남훈

 

고향집 뒤뜰

널어놓은 노모의 흰 저고리가

줄을 탄다

봄볕에 잘 마른 몸

소맷자락 흔들며 어깨춤을 푼다

 

좁은 어께가 줄 위에서 펄럭인다

검정 치맛자락에 얹힌 바람이

공중제비를 돈다

묵은 춤사위가 펼쳐질 때마다

신명난 이팝나무 꽃잎이

중모리로 강물 위에 뿌려진다

 

늘 젖은 옷으로 걸어왔던

어미에게도

저리 가벼운 어깨가 있었던가

옷고름도 여미지 못한

흥이 있었던가

 

바지랑대가 허리를 굽혀

눈물 마른 옷을 내린다

물기 가신 외줄에서

어미의 살 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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