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경북일보 문학대전 시부문 당선작] 최정연
금상
정열식물원(최정연 경북 영덕)
이곳에 와 본 것 같아
저 프리지어 그늘 아래 나 노랗게 꽂혀있네
공터의 노랑나비 몇 겹의 쪽문 열고
정열식물원으로 들어가네
잎 숨결 따라 하늘하늘 패인 길을 헤매네
쪽문마다 노란 등이 켜지네
문이 열리네
쇼윈도우 저 편, 알몸으로 진열된 내가
또 몇 개의 나로 분재되고 있네
거울 속 수 만개의 꽃눈들이 화르르 타오르다
한 방울의 눈물로 출렁, 허공에 내가
매달려 있네 키득키득 웃고 있네
온몸으로 엉키고 있네
뿌연 앞산의 소문처럼 꽃 지네
마음 한 줄기 물관을 지나
너를 버리러 간 사월 한 때, 정열식물원 앞에서
나 문득 푸르고 정다웠던 나를 보았네
꽃들의 머리 위로 노란 눈물 뚝뚝 흘러내리는
나비야, 나비야
나 싱싱한 맨몸으로 오래오래 꽂혀 있었네
최정연씨 "축제의 자리 초대받는 행운 주셔서 감사"
사람들이 사라진 철지난 바다는 지금에야 비로소 자신들의 시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듯하다. 부서지고 다시 뛰어오르고 또 하얗게 녹아내리는 그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마치 새로운 생을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오래 전 모교의 스승은 늙지 않는 시를 쓰라고 제자들에게 조용히 가르쳤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디에도 가지 않고 밤톨 같은 아이들 가갸거겨 장단 맞추며 나는 멜랑꼬리 신부로 늙어가는 중이었다.
손잡이가 떨어져버린 질그릇 속의 선인장을 쓰윽 뽑아 흙을 털어주고 원예 치유 프로그램 메뉴얼대로 가시꽃을 옮겨 심는다. 돌보지 않은 가시선인장이 움찔 놀라며 묻는다. 누구세요? 난 동굴에서 지금 막 나왔어. 눈이 부셔. 그렇게 날이 다시 시작되었다. 계축 북방운에 큰 연고는 없으나 모든 일에 재수가 돌아오리라, 몽땅 털리고도 또 속아주며 오늘의 운세를 점쳐본다. 당신의 이름 풀이까지 훑어보며 이제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원한다고 예쁜 내 이름으로 주문을 건다. 유배지 같은 이곳에서 들판에 깨를 심으니 들깨가 되고, 고구마를 심으니 산노루가 뛰논다. 산 들 바다가 모두 기름지다. 그야말로 내 삶의 체험현장이다.
축제의 자리에 초대받는 행운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내 유년의 모든 스승인 해달별 너희도 오늘 안녕? 고운 목소리로 허밍하며 밖으로 나를 끌어내 주신 '화림/글함문학' 동인들 고맙습니다. 나의 영원한 아군인 남편 혁전씨 날마다 안쓰럽지만 어디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니 또 고맙네요. 그리고 내 미래의 든든한 후원자들 한결, 한성, 엄마를 진짜진짜 부탁해. 사랑해.
심사평 "신선한 시각과 뛰어난 언어구사 능력 돋보여"
우리 시는 많은 변모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시인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요즈음, 시가 난해하다 못해 어불성설(語不成說)이 되고 마는 시들이 많다. 시가 의미 있는 것이 되자면 난해할지언정 어불성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좋은 예로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를 보면, 흰 돛단배들이 떠 있는 지중해를 비둘기들이 거닐고 있는 기와지붕에 비유한 첫 행의 이미지는 얼마나 눈부실 만큼 정밀하고 치밀합니까. 이와 같이 시가 난해해도 그 의미가 시의 보편성의 어느 언저리에라도 닿아있어야 그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 될 뿐 아니라 또한 기존의 우리 시의 보편성의 테두리를 넓혀주는 구실을 하게 된다.
예심에서 넘어온 작품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들은 '정열식물원', '기억 분실', '유전 혹은 유혹', '뿔의 기억'이상 네 편이었다. 이 가운데 '유전 혹은 유혹'과 '뿔의 기억'은 시법(詩法)이 독특하고 개성적인데 반해,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에 비해 난해하고 모호한 문장들은 장식적이고 기교적인 언어의 쇄말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 작은 것과 큰 것, 버려야 할 것과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해 내는 큰 안목을 갖추어야 비로소 독자들이 의심하지 않는 한 편의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기억 분실'은 다소 거칠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 매끄럽거나 산뜻하게 정리되어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를 지니고 대상을 투시하는 눈이 날카롭다. 상상력도 풍부하다.
'정열식물원'은 시각이 미세하고 미명의 세계를 가시화하는 뛰어난 언어구사는 시가 언어예술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확인시켜 준다. 다만 이 작품의 시적 성취도를 다소 방해하는 난해시적 요소―예컨대, '쇼윈도우 저 편, 알몸으로 진열된 내가 / 또 몇 개의 나로 분재되고 있네'와 같은 구절을 걷어낸다면, 이 시의 완벽성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좋은 시인의 출현을 축하하며 대성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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