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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용

-대추씨에 관한 소고

 

 

너는 없는 것처럼 있다 아무도 너의 존재를 몰라보지만

너는 모든 것을 보고 있는 듯이 있다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이

유령의 형체처럼 만져지지도 않지만 너는 너와 만나는

모든 것을 유체처럼 통과 한다 유체처럼 통과하므로 누구도

너의 존재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너는 안다 자신이 지금

누구의 육체를 지나왔는지 무엇의 몸과 함께 머무르며

숨결을 심장의 두께를 느끼며 그것의 체온이 얼마나 따듯했는지

차가왔는지 만져도 느껴지지 않는 손길로 눈빛으로 지나왔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너를 유령처럼 바라본다 꼬집으면

아프고 한 끼를 굶으면 허기에 시달리는 고된 육신을 가졌다는 것을

모른다 모른 척 한다 그냥 유체 이탈처럼 너를 바라보며

역시 유령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때 마다 너는 일회용으로

포장되고 무덤이라고 느낀다 그것을 잊기 위해 사유 또한

유리의 벽을 투과하는 햇볕처럼 차가운 언어의 벽을 혼신으로

스며들지만 그것 또한 일회성으로 포장되고 소모될 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누가 그랬지? 돈이 되지 않는 것은

치욕일 뿐이라고- 혼자 책을 뒤적이며 사색에 잠겨 보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그냥 유체처럼 너를 통과해 간다 그렇게

유체 이탈하는 것은 생활일 뿐- 남루하게 누더기

누더기 기워 입은 것 같은 사유만 광고 끝난 거리의 전광판처럼

녹슬고 쇠락해 갈 뿐이다 그래도 너의 눈은 빛난다

물방울 거울처럼 빛난다 물방울 거울에 비친 모든 것은

마치 얼음 조각처럼 맺혔다 스러지지만 너의 눈은 빛난다

자신을 유체 같다고 생각하므로 어느 무엇에도 일회용으로

소비되고 소모되지 않는다는 듯이-

 

 

 

 

비는 사람의 몸속에도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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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문 계간지 포엠포엠은 인간문화재 한유성(19081994)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한유성문학상을 제정하고 제1회 수상자로 김신용(72) 시인을 선정했다. 수상작은 '대추씨에 관한 소고'라는 부제가 붙은 '()'이다.

 

한유성은 선생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9'송파산대놀이', 3'송파다리밟기놀이'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일생을 바쳤다. 고인의 업적을 기려 석촌호수공원에 한유성 흉상을 세운 송파구(구청장 박춘희)가 문학상을 후원한다.

 

김신용 시인은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 1집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등이 있다. 2005년 천상병문학상, 2006년 노작문학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525일 오후 5시 송파구청 대강당 4층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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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골 시편 민달팽이 / 김신용

 

 

냇가의 돌 위를

민달팽이가 기어간다

등에 짊어진 집도 없는 저것

보호색을 띤, 갑각의 패각 한 채 없는 저것

타액 같은, 미끌미끌한 분비물로 전신을 감싸고

알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간다

햇살의 새끼손가락만 닿아도 말라 바스라질 것 같은

부드럽고 연한 피부, 무방비로 열어놓고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는 것인지

냇가의 돌침대 위에서 오수(午睡)라도 즐기고 싶은 것인지

걸으면서도 잠든 것 같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걸어간다

꼭 술통 속을 빠져나온 디오게네스처럼

물과 구름의 운행(運行) 따라 걷는 운수납행처럼

등에 짊어진 집, 세상에게 던져주고

입어도 벗은 것 같은 납의(衲衣) 하나로 떠도는

그 우주율의 발걸음으로 느리게 느리게 걸어간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아내가 냇물에 씻고 있는 배추 잎사귀 하나를 알몸 위에 덮어주자

민달팽이는 잠시 멈칫거리다가, 귀찮은 듯 얼른 잎사귀 덮개를 빠져나가버린다

 

치워라, 그늘!

 

 

 

 

도장골 시편 - 민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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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문학상 운영위원회는 제6회 노작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김신용(61) 씨를 8일 선정했다. 수상작은 '도장골 시편-민달팽이' 5편이다.

 

노작문학상은 시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쓴 노작 홍사용(1900-1947)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선영이 있는 경기도 화성시 문화계 인사들이 주도해 만들었다.

 

상금은 1천만 원이며, 시상식은 128일 오후 730분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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