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본상] 나비, 우화를 꿈구다 / 김수형

- 이매방*의 승무를 보며

 

 

어깨를 들먹이다 흐느끼며

울음 끝 곤한 잠에 취한다

한 사람의 생애는 웅크림으로 시작되는가

온몸이 오므라드는 고독

손가락 하나 펼 수가 없다

이승의 사랑을 두리번거린 죄일까

꽃을 상상하는 동안

수천 번 눈물을 퍼 온 무늬가 온몸에 새겨진다

몸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춤이 천천히 발끝을 내님다

꽃향기가 반짝이는 순간,

단 한 번의 날갯짓을 위해

안간힘으로 몸을 비튼다

연못을 건너가는 노래들의 수런거림

오래 따르던 욕망의 길들이 흩어져 가는

풍경의 한 모서리에서

사랑이여, 얼마나 울었던가

그림자가 허공을 휘청이며 건너가

걸음만 남기고 사라진다

끝끝내 몸 속에서 살던 춤은 몸 밖으로 나왔다

그의 몸은 사라지고 춤만 거기 남아서

생의 가장 눈부신 날개를 햇살에 말리고 있다

 

* 이매방(1927~2015) 목포 출생의 한국 전통 춤 거목, 중요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 보유자

 

 

 

 

[남도작가상] 목포, 울컥 그리운 / 김옥구

 

 

1. 째보선창

 

할매는 두 손에 바다를 키운다

퍼덕이는 아침부터 간간한 저녁

할매는 바다를 끌어다 선창에 풀어 놓는다

 

물혹 같은 낮달이 짭짤하게 뜬 하늘

칼질 당한 하루도 지느러미가 잘리고

칼날이 수평선도 그었나

핏물 배는 저녁

 

2. 용꿈여인숙

 

주전자 가득 끓던 멀미가 살던 곳

말 한마디 없이도 서로의 눈빛을 잃고

눅눅한 이불을 당겨

누추한 꿈 덮어준 밤

 

목매달던 첫사랑 이름을 적어둔 벽

봄은 가고 먼 곳의 그대 아무렇게 늙어가도

언젠가 당신과 내가

한 번은 머물던 방

 

3. 김우진

 

축음기 속 그대 노래, 밀물에 부서진다

내 삶에 세 든 당신도 참 오래 견뎌냈구나

눈이 먼 사랑 하나가 서늘하게 밟는 음역

 

지금은 야윈 달빛을 이불처럼 덮는 시간

심금 뜯는 수평선이 빗방울 튕기면

이제야 바다를 건너는 파도의 맨발, 맨발들

 

 

 

 

[심사평]

 

전국전남의 예심 통과작 총30편을 숙독하였다. 각각 세편 씩 모두 열 분이었지만 누구의 작품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선고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11회의 연륜도 있었지만 예심으로 걸러진 작품은 시적 역량이 탄탄하고 세련되고 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 소재가 남도의 자연과 역사, 문화 등으로 제한된다는 점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다소 작위적이거나 답답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상당수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의욕이 앞서 주제나 소재가 서정적으로 잘 육화되지 않아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응모된 작품 중에 주목이 되는 것은 나비, 우화를 꿈꾸다, 목포, 울컥 그리운, 바지락을 읽다, 세발낙지, 목포 먹갈치등이었다.

 

이 다섯 분의 작품은 모두가 개성이 있고 나름대로 시적대상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하고 있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바지락을 읽다에서는 독자의 호응과는 다르게 시적대상을 너무 의도화하여 이끌려고 한 점(“우중의 중심, 이곳으로 모여든다” ), 부자연스러운 비유와 서술형 어조의 단순한 처리 등이 거슬렸다. 세발낙지의 작품은 시적 상상력이 다소 부족하고 이완된 긴장감이 문제가 되었고, 목포 먹갈치서술형 어조의 반복과 과거형, 시적 역동성이 다소 미흡한 점이 문제가 되었다.

 

최종적으로 나비, 우화를 꿈꾸다를 본상으로 목포, 울컥 그리운를 남도작가상으로 결정하였다.

 

나비, 우화를 꿈꾸다의 작품은 전통춤의 거목인 한 사람의 생애를 우화를 하는 나비의 형상으로 비유하며 그 표면 뒤에 내재하는 고뇌와 예술혼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묘사에서 진술로 넘어가는 과정과 마지막의 효과적 여운 처리가 수많은 절차탁마의 결과임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목포자연사박물관-공룡우표, 삼학소주또한 시적 상상력과 안정감이 돋보였다.

 

목포, 울컥 그리운작품은 목포의 가장 인상적인 세 부분을 그리고 있는데 <째보선창>에서는 지느러미도 칼질 당한 하루의 삶을 마지막 종장에서 선명하게 잘 처리하고 있다. “문이 먼 사랑 하나가 서늘하게 밟는 음역音域이라든지 파도의 맨발, 맨발들의 표현도 쉽게 얻어진 표현들이 아니다.

 

두 분에게 축하를 보내며 아쉽게 탈락한 다른 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모두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 우리 시단에 좋은 역할을 하는 시인이 되어주길 바란다.

 

본심위원 : 이지엽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