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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귀 / 김륭

 

 

가끔씩 귀를 자르고 싶어, 내 몸을 돌던 피가

네모반듯하게 누울 수 있도록

 

그러면 우리 집 고양이는 온통 벽을 긁어놓겠지만 혀를 붓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나는 누군가의 뱃속에서 지워진 내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고 가만히 첫눈이 온다고 속삭이는 여자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심장을 꺼내 뭇 남자의 무릎을 베기도 한다더군요

 

그러니까 나는 자궁을 들어낸 어머니 뱃속 가득 담겨있던

신발 한 짝이었음을 기억해냅니다

 

달의 귀를 잘라 마르지 않는 그녀의 우물은 누군가의 손목을 베개로 삼아야 들을 수 있는 노래, 우두커니 아무리 울어도 나무가 될 수 없는 나는 축축한 밤의 옆구리에 의자를 갖다놓는 나는 달팽이, 신발을 주우러 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쩌죠? 귀를 잘라버린 무덤은 허공에 입을 그려 넣고

그녀는 밤새 눈사람을 만들지만 더 이상

무릎은 벨 수 없다더군요

어머니, 나뭇잎 좀 그만 떨어뜨리세요

 

뱃속에서 우는 아이의 심장을 가만히 꺼내

늙은 고양이를 만드는 그녀를 위해

밤은 가끔씩 종이가 됩니다

 

 

 

원숭이의 원숭이

 

nefing.com

 

 

9회 지리산 문학제가 함양관내 상림공원의 함양문화예술회관에서 내달 27일 열린다. 이날 시상식을 가질 제9회 지리산문학상에는 김륭 시인이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수상작으로 김륭 시인의 달의 귀4편이 최종 확정되었다.

 

금년도 지리산문학제는 계간 시산맥과 지리산문학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게 되었다.

 

지리산문학상의 새로운 도약에 걸 맞는 수상자 선정을 위해 김명인 시인 등 심사위원들의 고심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랜 격론 끝에 제9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시인으로 김륭 시인을 선정하였다.

 

심사위원들은 일상을 훑는 시선은 충분히 감각적이고 눈빛은 다른 말을 할 줄 알며 상상력은 주행하고 있다. 그 언어는 뒤로 갈 때에도 갑갑하지 않으며 나아갈 때에도 투미하지 않고, 속도를 사용한다라고 김륭 시인의 작품을 평했다.

 

심사는 김명인 시인 외에 황학주 시인, 김행숙 시인이 맡았으며 각 시인의 수상작품과 수상소감, 심사평 등은 계간시산맥가을호에 소개될 예정이다.

 

지리산문학상은 함양군과 지리산문학회에서 제정해 첫해 정병근 시인이 수상한 것을 비롯해 유종인, 김왕노, 정호승, 최승자, 이경림, 고영민, 홍일표 시인이 각각 수상했으며 엄정한 객관성의 확보를 통해 전국적으로 권위가 있는 문학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리산문학제를 그동안 주관해 온 지리산문학회는 전국에서 드물게 올해로 36년을 맞고 있는 문학회로 매년 지리산문학동인지를 발행해 왔으며 문병우, 정태화, 권갑점 등의 시인과 노가원, 곽성근 작가와 정종화 동화작가, 박환일 문학평론가 등을 배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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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 김륭

 

 

1.

실직 한 달 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

 

2.

구름을 몰아본 적 있나, 당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내 머리에 총구멍을 낼 거라는 확신만 선다면 얼마든지 운전이 가능하지

총각이나 처녀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들은 오줌부터 지릴지 몰라

해와 달, 새떼들과 충돌할지 모른다며 추락할지 모른다며 울상을 짓겠지만

당신과 당신 애인의 배꼽이 하나인 것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위질하는 것은 주차딱지를 끊는 말단공무원들이나 할 짓이지

하늘에 뜬 새들은 나무들이 가래침처럼 뱉어놓은 거추장스런 문장일 뿐이야

쉼표가 너무 많아 탈이지 브레이크만 살짝, 밟아주면 물고기로 변하지

 

3.

구름을 몇 번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해나 달을 로터리로 낀 사거리에서 마음 내키는 데로 핸들만 꺾으면 집이 나오지

붉은 신호등에 걸린 당신의 내일과 고층아파트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보다 깊은 어머니 한숨소리에 눈과 귀를 깜빡거리거나 성냥불을 긋진 마

운전 중에 담배는 금물이야

차라리 손목과 발목 몇 개 더 피우는 건 어때? 당신

꽃 피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사람뿐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새가 아니라 벌레야

구름이란 눈이나 귀가 아니라 발가락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얘기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말이야 그걸 아는 나무들은 새를 신발로 사용하지

종종 물구나무도 서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구름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콜택시처럼 와 있는 구름의 트렁크를 열어보면

죽은 애인의 머리통이나 쩍, 금간 수박이 발견되기도 해

초보들은 그걸 태양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지

 

 

 

 

2007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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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는 지독한 슬픔의 일종,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해

 

당신, 이젠 절망할 일만 남았군.”

 

마산 우무석 시인이 내게 한 첫마디다. 도대체 이건 또 뭔가? 역시 나보다 수가 높군. 빙그레 웃는 데는 몇 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당선소식을 푸드덕, 한 마리 새처럼 날려보냈더니 번쩍, 한 마리 물고기로 토막쳐 되돌려주는 솜씨란. 좀더 깊고 아프게 울어야겠다는 내 가슴을 뒤집어 절망이란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만들어주는 시인이 곁에 있다는 건 행복인가, 불행인가?

 

그러니까 최근 내가 알게 된 몇 가지를 말하자면 이렇다. 구름이 택시보다 빠르다는 것, 허공도 축구공 같은 공이어서 요리조리 잘 몰고 다녀야 한다는 것, 가끔씩은 발을 헛디뎌야 한다는 것, 그래야만 나를 좀더 두들겨 패고 비워낼 수 있다는 것이다.

 

느낌이 왔다. 얼마나 편한 일인가. 좀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죽음이 삶을 살살 달래가며 데리고 산다는 느낌이 당선 통보와 함께 뒤통수를 쳤다. 고백건대 나는 아직도 시()를 잘 모른다. 다만 삶도 죽음도 간섭할 수 없는 아주 지독한 슬픔의 일종이어서 평생 데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한참을 울었다. 외롭다는 말이 뿔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웃었다. 겨울 하늘보다 꽁꽁 얼어붙은 가슴으로 웃는 일이란,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온몸에 돋아난 뿔부터 삭여야 했다.

 

감히 부를 수 없는 이름들이 너무 많아 가뜩이나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가 복잡하다.

 

동국대 김선학 교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마산대 이성모 교수님, 시사랑경남지회 회원들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족한 내게 지리산의 힘을 안겨주신 지리산 시인들의 큰형님인 선덕형과 병우형께, 나의 보물 권갑점, 정경화 시인을 비롯한 함양문협 회원들과 지리산문학회 회원들께 이 영광을 돌린다.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부모님과 단미, 문화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큰절 올리며 평생 그 은혜 잊지 않고 살 것을 약속드린다.

 

 

 

원숭이의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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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적 발상·상상력 뛰어나현실 고통을 경쾌하게 노래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최찬상의 폐가 앞에서’, 이용헌의 게발’, 김륭의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3편이었다. ‘폐가 앞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난하고 안정돼 있다는 점에서, ‘게발은 시적 형성력이 뛰어나고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으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점이 다소 진부하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되어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를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는 시적 발상과 그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현실의 크고 작은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될 정도로 마취당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에서 오는 이 위안의 마취력은 실은 현실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는 화자의 능청스러운 독백이 시종일관 시 전체를 끌고 가는데, 그 화자는 실은 대응력이 결핍된 실직자다. 실직당한 이의 고통스러운 현실적 상상력이 이러한 역설적 상상력의 시를 낳은 것이다.

 

선자들은 그의 상상력의 뿌리가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스러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 크게 신뢰가 갔다. 엄숙함과 진지함에서 벗어나 이토록 경쾌하게 고통을 노래함으로써 우리를 위로해주는 시도 드물다.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천양희·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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