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호 동인지는 빛을 잃고 어둠에 갇혀 지낸 시간의 기록입니다. 외롭고 쓸쓸해서 시를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담담하게 그려내기도 했습니다. 평이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포착한 시를 읽으면 여전히 반짝임을 잃지 않았음을 알게 됩니다. 열 명의 기발표작 혹은 신작시에 덧보탠 시작노트는 어쩌면 무디어지지 않으려는 감성의 몸부림일 것입니다. 시in동인지를 기다려온 독자들에게 큰 감동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체 응모작 중 의욕적인 작품들이 많았지만, 의욕이 앞서고 문학적 형상화에서 미흡한 작품들이 많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신라에 대해서 듣고 공부한 내용을 시에 넣어 쓰거나, 경주의 신라 문화에 대해서 찬양하는 자세로 일관하거나, 사변적인 내용은 좀 곤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신라는 유물로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경주와 연관될 때 그 의미가 새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당선작인 "할머니를 모시고 오다"는 죽은 신라가 아니라 오늘과 대비시킨 살아있는 신라의 이미지로 시적 완성도가 뛰어납니다. 현대성과 고전의 조화가 무르익었다고나 할까요. 신라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로 내려오는 문맥성을 가지고 있음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제목은 "분황사의 할머니"로 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헌화가"도 새로운 문맥에서 구성한 시적 자질이 보입니다. 가작인 "경주를 걸으며"는 현재의 지도 속에서 신라를 끌어내는 솜씨가 인정되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는 정서의 산물이며, 외적 지식은 시 속에서 완전히 녹아 있을 때 시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응모자들은 유의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오다"는 시인의 삶에 근거한 깊은 체험을 우려내어 박제화된 신라가 아니라 현재와 연결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높이 사 당선작으로 선정하였고, "경주를 걸으며" 역시 지도 속에서 신라를 발견하는 발상의 참신함으로 시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가작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밖에 "굴불사지" 작품도 깨끗하였고,"신라고분의 재미" 등도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