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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서성이다 / 이궁로

 

 

기차가 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다
대합실내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나무의자
일몰의 그림자 길어지면 차갑게 흔들리는
철로 주변의 측백나무 사이로 쓸쓸히 흘러가는 저녁
종착역을 알 수 없는 낯선 사람들 지루한 표정
딱딱한 마분지 차표를 건네는 매표원의 가느다란 손가락
아무도 일러주지 않는 출발과 도착의 낡은 시각표
의미 없는 부호처럼 굴러 다니는 비닐 봉지
너무 일찍 나온 것이다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가 보였지만
기차는 서지 않고 역을 지나쳐 간다
역을 지나쳐 가는 저 열차처럼
삶도 그냥 지나쳐 가야 할 때가 있는 것일까
대합실 밖에서 흔드는 이별의 손짓도
더 이상 슬프지 않다
이별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것과
재회를 꿈꾸며 사는 것도
열차가 다시 제 철로를 밟고 돌아오는 것처럼
생의 어느 지점에서 떠났던 사람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때에
한 번은 돌아올 것을 믿는 때문이고
자신이 타야 할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침묵이
세상의 침묵으로 이해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나는 천천히 돌아서 본다
수은등이 켜지기 시작하는 역 광장에
이별의 그림자처럼 서성이는 작은 별이 뜨고
작별의 인사를 나누는 내가 보인다, 그러나
아직 이른 시각이다, 기차가 오기에는

 

 

 

어둠은 밤의 너머에서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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