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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상] 오월사리 혹은 풀치의 춤 / 윤경예

 

 

나는 먼 데에서 와서 비늘이 긁혔다가 새로 돋는 정오의 바다를 봐요

 

심해의 어둠에 미끄러지는 걸 좋아하는 풀치들

아가미 내리그으며 쏟아지는 어둠 속에서

수평선으로 당겨졌다가 이내 물러서는 춤을 추고 있는지

 

당신은 그 춤을 오월사리라고 이야기했지요

 

바다의 첫말을 꺼내기도 전

귓불 먼저 몽글해지는 소리 같았죠

검은 여로 와서 함께 덮은 웅숭깊은 별의 덫개였을까요?

 

가늘고 긴 당신의 숨소리처럼 봄빛 덜 빠진 바다

아직 두꺼운 낯을 가진 여름은 시작되지 않았죠

그래서 심해는 차고 깊고 해초들은 무섭게 자랐죠

 

어떤 쪽에서도 출항기를 쓰는 뱃고동 소린 들리지 않았죠

그러나 저 무수히 많은 오월사리가 사라진다 해도

당신은 결코 저 춤을 건지는 일은 멈출 수 없다고

물이 살져 오른 포구에서 기어이 닻을 올리고 있었죠

 

심해 밑이 아가미 명당인 걸 당신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다순구미 볕을 괴고 있던 당신의 어깨가 들석거릴 때

다 갯바닥에서 피어오르는 저 춤 때문에

머리 풀린 어스름이 해안가로 변져온다고 했지요

 

심해는 비늘밖에 보이지 않아 심해라지요

나는 지금 뼛속까지 훤히 비추고도 남을 저 춤을 따라가요

내 몸이 짠내 나는 파도임을 아는 난 풀치니까요

 

 

 

 

[남도작가상] 국도 1호선 표지석 앞에서 / 김현장

 

 

대의동 모퉁이에 엉거주춤 앉은 노인

검게 바랜 손으로 표지석을 만진다

멀어진 신의주 고향길

눈 가득 울음 고여

 

목젖까지 차오른 그 사연을 펼쳐보면

동란 때 목포로 와 머구리 잠수부로

가는 줄 하나 의지해

잠든 바다 깨웠다

 

평화광장 머구리횟집 칠흑 내리 밝히는데

가을비는 알콜과 섞여 부재로 다강고

적막 투명한 울음이

가슴을 적신다

 

 

 

 

 

 

[심사평]

 

목포문학상 후보작으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을 숙독하면서 응모하신 분들의 뜨거운 목포 사랑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단 그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했는가에 따라 좋은 시냐 아니냐가 판별된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 여기서 표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방법에 있어서 문체나 문장의 완성도도 중요하거니와 작품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명확해야 한다. 시는 삶에 대한 명상과 언어에 대한 명상이 얼마나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도 표현의 방법에 포함될 것이다. 시는 한사코 형이상학이 아니다. 현란하거나 난해하게 쓰려는 유혹을 뿌리쳐야 소통과 공감의 좋은 시가 완성될 것으로 믿는다.

 

후보작 중 갯벌을 읽다문장” “경전등 기시감이 느껴지는 단어들과 표현들로 신선함을 느끼기 어려웠다. 응모작 세 편의 수준도 심사의 대상임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곳에 갔네는 치열한 시적 감각이 아쉬웠다. 동시에 관념성을 극복하는 것도 중요한 점임을 부탁드리고 싶다. 목포의 신사는 상상력은 좋으나 그 상상력을 구체적인 실존 경험으로 되살렸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바다의 후손 갈매기” “밤이면 해골을 쓰고 달려오는 파도” “백구두를 신고와 같은 표현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폐항은 주제에 맞추려 하다 보니 이미지나 표현 자체가 너무 어둡다. 오히려 폐항이라는 시적 대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긍정적 사유가 녹아들었더라면 훨씬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십이동파도선의 해남청자, 새를 품다는 시조로서 정형적인 언어 구조상 자유시보다 훨씬 미학적 균형이 요구되면서 동시에 공감대 형성도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주었으면 좋겠다.

 

최종적으로 오월사리 혹은 풀치의 춤을 본상 당선작으로, 국도 1호선 표지석 앞에서를 남도작가상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본상 당선작 오월사리 혹은 풀치의 춤은 제목도 시에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신선하고 시적 사유와 사물을 바라보는 개성적인 눈이 남다르다. 특히 탄탄한 구성과 신선한 표현 그리고 이미지의 전개가 힘이 있어 시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함께 응모된 두 편의 작품들도 긍정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자신만의 문체의 완성도가 높다.

 

남도작가상 당선작 국도 1호선 표지석 앞에서는 목포가 신의주까지 대한민국 국도 1호선의 기점이라는 표지석을 소재로 하여 동란 때 목포로 와 머구리 잠수부로삶을 살아온 실향민 노인을 등장시켜 한 편의 드라마를 아주 자연스럽게 시조의 형식에 잘 담아낸 점이 감동적이다. 특히 첫 번째 수의 울음이 세 번째 수에서 긴 적막 투명한속울음으로 승화되면서 국도 1호선 표지석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상징성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당선되신 두 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탈락하신 분들께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요즘처럼 모순이 난무하고 완고한 마음의 시대에 시가 얼마나 소중한 위로와 안식을 주는 것인지 심사 내내 느꼈음을 고백한다.

 

본심위원 : 허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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