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 정현종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
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날처럼
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神)이든
어른이든 애이든
아저씨든 아줌마든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모든 귀가 막혀 있어
우리의 행성은 캄캄하고
기가 막혀
죽어가고 있는 듯.
그게 무슨 소리이든지 간에,
제 이를 닦는 소리라고 하더라도,
그걸 경청할 때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심사평] 거울 속의 꽃을 꺾는 詩境
사람에게는 사물의 이치를 새겨들을 수 있는 나이가 있다고 한다.그렇다면 시의 나이는 얼마나 오래 살아야 귀가 트이는 것일까? 제12회 공초문학상 수상작으로 정현종 시인의 시 ‘경청’을 심사위원 전원일치로 결정하면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다.
정현종 시인은 60년대 들머리에 시단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후 사물에 대한 깊은 인식을 서정성으로 용해시킨 첫 시집 ‘사물의 꿈’으로 이미 시단에서 자기 좌표를 설정해놓은 시인이다.그리고 시대적 현상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사람과 자연,사람과 시간 등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화두를 불지펴 놓았다.
시선집 ‘고통의 축제’와 시집 ‘사랑할 시간은 많지 않다’로 한꺼풀씩 말의 껍질을 벗겨오면서 오늘의 수상작 ‘경청’을 담고 있는 시집 ‘견딜 수 없네’에 이르러 그의 시 세계는 한층 자유로워지고 사물과의 내통에 있어서도 평화로워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경청’은 이 시대의 갖가지 소음을 진공흡입기로 빨아들이는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다.통신수단이 첨단화되고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있음에 비해 사람들의 귀는 점점 절벽이 되고 눈도 어두워지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불행의 대부분은/경청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의 말문부터가 매우 직설적이면서 심상치 않은 경구를 담고 있다.
“대통령이든 신이든/어른이든 애이든/아저씨든 아줌마든/무슨 소리이든 간에/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은 아주 귀에 익은 듯하면서도 새삼 아프게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특히 “내 안팎의 소리”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밖의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것은 더욱 어렵다.
얼핏 보면 쉬워 보이는 ‘경청’의 세계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현종만이 뽑아낼 수 있는 수월경화(水月鏡花)가 숨어있다.즉 “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한 고요 속에/세계는 행여나/한 송이 꽃 필 듯”에 부딪치면 아하 저 공초선생의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시법을 얻었구나 하는 울림을 받는다.공초문학상의 빛을 더해준 정현종 시인께 경의를 보낸다.
- 심사위원 이근배·김종해·임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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