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고무신 / 박용우
어린 동생이 끌려가던, 길이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눈물로 던진, 길이었다
여기다, 여기다 하며 두려움이 떨어뜨린, 길이었다
누이가 주워 가슴에 품고 가는, 길이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
까마귀도 종소리에 숨죽인, 길이었다
섯알오름에서 노을이 핏물처럼 흘러내리는, 길이었다
땅 밑에서 고구마가 굵어지고
땅 위에서 고구마 꽃이 자주 빛 울음을 터뜨리는, 길이었다
누이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막고
초경을 앓던, 길이었다
동생에서 누이에게로 흘러내린 붉은 핏줄기가
상모리(上慕里) 불타는 골목마다 비린내를 몰고 가는, 길이었다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 당선작이 선정됐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김병택)는 지난달 28일 본심사를 진행한 결과 소설 부문 '1988년생'(현수영, 본명 손원평, 서울시), 시 부문 '검정고무신'(박용우, 경남 김해시)을 각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소설 당선작은 7000만원, 시 당선작은 2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4.3평화문학상은 4.3의 아픈 상처를 문학작품으로 승화함과 아울러 평화와 인권?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주특별자치도가 지난 2012년 3월 제정해 제5회에 이르고 있다. 2015년부터는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이문교)이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지난해 5월 27일부터 12월 20일까지 이뤄진 이번 4.3평화문학상 전국공모에서는 시 1402편(126명), 소설 125편이 접수됐다.
소설부문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 제주4·3 정신의 문학적 형상화에 중점을 뒀으며 평화와 인권에 대한 전형성을 보여주는 작품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당선작 '1988년생'은 “한국사회에 미만한 진짜를 가장한 가짜들, 약자를 악랄한 사기술로 착취하는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이 이 소설에 등장한다. 재벌의 은폐된 비리를 목숨 걸고 고발하고 그들의 저항은 비장하거나 영웅적이거나 하지 않고, 게임처럼 경쾌하게 행해진다.
심사에서는 "소설의 주인공은 그러한 저항의 몸짓들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왜소한 순종적 자아를 벗어내고 주체적 자아를 되찾게 된다. 위트가 넘치는 싱그럽고 유쾌한 소설이다"고 평했다.
시 당선작 '검정고무신'에 대해서는 "제주4·3의 비극을 소재로 삼아, 가족의 슬픈 정한을 줄기로 잡고 민담과 현실의 비애를 날줄로 엮은 그 구성과 기법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 심사위원들은 특히 "제주4·3의 진실이 명백하게 규명될 때만 이 정한의 끝이 나타날 것이다. 매우 역량 있는 시인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5일 오전 11시 제주도청 삼다홀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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