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거리를 물으면 금방이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운전기사와 길을 잃어도 쥬게르 쥬게르(괜찮아 괜찮아)만 연발하는 가이드를 보면서 나는 모든 지나간 날들을 아래라 부르던 내 할머니의 시간에도 새겨진 게 분명한 몽고반점과, 싸울 때면 쥐게라 쥐게라(죽여라 죽여라) 악다구니를 쓰던 할머니의 지워지고 없는 몽고반점을 떠올리며, 고비에다 주막을 차리겠다는 사내와 쏘다닌 열흘 동안을 나는 모든 지나간 날들과 아직 오지 않은 나날들을 어제와 내일로 셈하며 동업할 생각을 해 보았다
안상학 시인의 시집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가 제23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고 창비는 11일 밝혔다. 본심은 이시영·장철문·정끝별 시인이 맡았고, 예심은 신철규 시인과 오연경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심사위원단은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한 시대를 증언하면서도 우리의 미래를 투시해내고 있다”며 “삶의 터전을 민속학적으로 재현해내는 백석 시와의 친연성뿐 아니라, 개인의 삶이 역사적 사실로 변성되는 과정에서 발산하는 시적 에너지가 어떤 담론의 흔적보다도 곡진한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자로 선정된 안상학 시인은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8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시집 ‘그대 무사한가’, ‘안동소주’,‘오래된 엽서’, ‘아배 생각’,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 ‘남아 있는 날들은 모두가 내일’, 동시집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 평전 ‘권종대: 통일걷이를 꿈꾼 농투성이’ 등이 있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5·18문학상, 권정생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등을 받았으며,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천상병시상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출간된 시집 가운데 데뷔 10년 이상된 시인을 대상으로 역대 천상병시문학상 수상자를 비롯해 추천위원들의 추천을 통해 모두 33권의 시집을 추천했다.
이 가운데 1차 예심위원회를 통해 8권의 시집으로 압축했고, 3월초 본상 심사위원회를 열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 끝에 송진권 시인을 최종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4월20일이며, 제16회천상병예술제가 열리는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3명의 본심 심사위원들은 최종심에서 송진권 시인의 작품은 백석(白石) 시인 풍으로 농적(農的) 순환의 질서를 노래하고, 부엌을 잃어버린 시대 우리들 마음자리를 생각하게 하는 '들깨 같은 말들(어른들이 돌아왔다)'의 진경을 잘 드러내주었다고 입을 모았다.
시집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소의 배 속에서'와 '어른들이 돌아왔다'는 삶과 죽음 그리고 성장이라는 우리네 삶의 서사를 면면히 이어가겠다는 시 정신을 잘 보여주고 있고, 시집 곳곳에서 산견되는 작고 사소한 사물들과 '사람들'에 대한 가없는 그리움은 우리 시대 백석 시인의 현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우리 존재의 순환적이고 관계론적 상상력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시집의 시 가운데 '물 가둔 논' '찬물구덩이의 물' '가쟁이째' '둠벙의 사랑' 같은 시들은 가편(佳篇)이라 할 수 있다. 송진권 시인의 이러한 시적 특장(特長)은 농적 순환의 질서가 깨어지고 그런 삶의 질서를 수락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 시절에 우리로 하여금 '오래된 지혜'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옛 공동체가 깨어져버린 이 시대에 환대하는 마을은 환대하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냐고 나직하지만 굵직한 목소리로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송진권 시인의 시는 요설과 장광설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이 시절에, 자신의 터[place)를 지키며 평범한 이웃 사람들의 삶을 받아적는 시인의 자리에 대해 다시 한 번 강력히 환기한다.
특히 송 시인의 시와 동시는 어린 아이 같은 마음과 상상력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천상병 시인의 시 정신을 잇는 것으로 판단해 3명의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천상병시상 수상자로 선정했음을 밝힐 예정이다.
한편 송 시인은 1970년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시집 '자라는 돌'과 동시집 '새 그리는 방법'이 있다. 현재 '젊은시' 동인과 격월간 '동시마중'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2일 김종삼시문학상 시상식이 ‘예술가의 집’에서 열렸다. 본 시상식은 김종삼 시인 기념사업회와 대진대학교가 주최하고 ‘김종삼시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했다. 제3회 김종삼시문학상 당선작은 길상호 시인의 시집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이다. 길상호 시인에게는 김종삼 시인을 형상화한 트로피와 1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었다.
김종삼 시 문학상은 김종삼 시인(1921∼1984)을 기념하기 위해 2017년도에 대진대학교가 후원·제정한 상이다. 김종삼 시인은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1947년 월남하여 시집 ‘돌각담’으로 데뷔하였고 ‘민간인’이라는 시로 현대 시학상을 수상했다. 김종삼 시인은 사람들의 가난함과 고독함에 대한 순수시를 써오며 과감한 생략을 통해 여백의 미를 추구했다고 알려져 있다. 작품집으로는 개인 시집인 ‘누군가나에게물었다’ 외 두 편, 시선집 ‘북치는 소년’, ‘평화롭게’, 연대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공동시집인 ‘본적지’가 있다. 1984년 사후에는 김종삼 시인의 모든 시집과 시를 담은 ‘김종삼 전집’이 출간됐다.
본 상의 심사기준은 김종삼 시인의 시 정신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데뷔한지 10년 이상의 작가들의 작품집 중에서도 해당 연도에 발매한 시집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수상자인 길상호 시인은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하였으며 현대시동인상, 한국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등을 받았다. 현대인들의 외로움에 대한 서정시를 쓰는 것으로 알려진 길상호 시인은 “우리의 죄는 야옹”, “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 외 3편의 시집을 출간했다.
김종삼 시 문학상의 심사는 김명인 시인, 정호승 시인, 김승희 시인이 맡았다. 심사평을 맡은 김승희 시인은 “2020년에 심사 작들 모두 개성이 강하며 주제가 다양한 시집들이 많았다. 요즘 시인들의 재능이 빛나고 있다.”라며 문학상에 투고한 모든 작품들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김 시인은 “김종삼 시인은 가장 추상적인 현대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생활의 밑바닥을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는 내용 있는 생활 시인이다. 이 때문에 현실의 무게가 깃들어있는 길상호 시인의 시집에 마음이 갔다.”라고 말했다.
단상에 나온 길상호 시인은 “이번 시의 시제를 준비하면서 이름이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나는 부모님 께서 지어주신 이름을 잘 달고 있는가 고민했다. 48년을 돌아보니 지금 내 스스로가 내 이름을 너무 방치한 듯하다.”라며 울먹였다. “김종삼 시인의 시처럼 제 시도 어떤 사람들에게 목마름을 해소 시킬 수 있는 역할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내 이름을 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후 뉴스 페이퍼와의 인터뷰에서 길상호 시인은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었던 김종삼 시 정신에 대한 질문에 “김종삼 시 정신이란 사람, 동물 가리지 않는 세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 중에서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인 듯하다. 아마 저와 제 시 속에서 김종삼 시인의 그런 정신을 봤기 때문에 이 상을 주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축사를 맡은 이숭원 운영위원장은 길상호 시인을 축하했다. 이어 원래 순서였던 이면재 대진대학교 총장은 개인 일정으로 인하여 불참하였고 대신 신재희 기념사업회 회장이 대리로 전했다. 이면재 총장은 “3회째인 시문학상이 점차 커지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라 말했다. 그리고 “작년 봄에 김종삼 시인의 부인이신 정귀례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여사의 명복을 빌었다.
한편 이 시문학상을 기념하기 위해 팝페라가수 팀 ‘라클라쎄’의 Westlife의 ‘You raise me up’과 뮤지컬 이순신의 ‘나를 태워라’ 공연이 있었다.
내년에도 더욱 다양하고 개성 강한 작품들이 나오길 바라며 김종삼 시인과 시인의 시 정신을 기념하고 그와 같은 시인을 발굴해 내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