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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의 방 외 4편 / 이경호

 

 

꽃핀 꽂은 별들이 첨벙첨벙

청어의 입으로 들어가는 날

 

삶을 꾸덕꾸덕 말리는 죽도시장 좌판

잔가시를 뱉는 짧은 겨울햇살

노파는 수심을 알 수 없는

주름 바다를 키운다

 

사주단지 앞세워 시집오던 첫날밤부터

비린내로 쩐 소매

노파의 주름이랑은 청어 떼가 헤엄치는 길

 

청어는 노파의 살과 뼈를 다 갉아먹고

고단한 물빛 지느러미를 흔들며

고향 심해바다로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봄꿈을 꾼다

 

청어뱃속에 바람소리 여물어 갈 때

파랑노래가 된다

노파는 작고 푸른 부레를 베고 눕는다

 

첫 별이 뜨면 수평선 너머로

청어의 방 하나 생기고

그때부터 하현달은 자라기 시작한다

노파는 어디로 갔나

낮하늘에 낙관 하나 희미하게 찍어두고

 

 

 

 

이유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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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관절염

 

 

무릎이 멍든 밤이면, 멍을 뚫고 굴참나무가 자란다

 

굴참나무엔 도토리거위벌레가 기생하고

개똥지빠귀 철새가 몰고 온 창백한 구름,

구름을 접는 달빛 계단에

어린 개암나무 그늘이 주저앉아 운다

 

땅 밑을 굴러간 도토리들이 나무뿌리를 더듬다가

햇빛을 외면한 어둠에서 만난

휘파람소리

 

늙은 뿌리 혈관은 내일을 예감하고

꽃과 잎은 대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관절염을 앓는다

물관과 체관을 흔들어대는 푸른계절

나뭇잎은 더운 숨으로 허공을 나부끼게 한다

 

굴참나무 옹이에 들어앉은 상처

환절기에 파르르 떨며 살아남은 잎맥들의 시간

 

건조한 발목에 장수풍뎅이가 터를 잡고

숲은 바람의 숨결을 쌓아 올린다

어제를 쌓고 오늘을 여며, 내일을 만들고 있다

 

 

 

 

 

귀신 고래의 혈통

 

 

나는 사월에 죽은 귀신고래의 혈통

나의 내부는 함부로 어두워지지 않는다

봄빛 떠도는 적막에서 태어나

수평선 넘나드는 비명소리를 가졌다

 

눈물 젖은 눈으로 울다가 귀신을 만나면

죽은 고래의 영혼이 옮겨온다는데

등줄기에 업보를 짊어지고

물빛 다리를 파도더미에 놓는다는데

 

나의 전생은 잔별로 풀어헤친 윤슬

내 가문의 뿌리를 찾아 헤매는

파도더미는 흰 핏줄을 다발로 허공에 터트린다

최초의 피가 뿌리를 내릴 뭍이 없다

 

헛것을 보는 눈이 침침하다

 

구천을 떠돌던 공기방울들이

노을과 피를 나눠가질 때

따개비로 주저앉는 저녁이 돈다

습습한 플랑크톤 잔뼈를 뱉는 정어리 떼가 밀려온다

 

누가 귀신고래의 혈통을 찾아 헤매는가

나는 귀신고래가 숨어서 키운 상처다

 

 

 

 

 

새를 기다리는 밤

 

 

빛바랜 이파리 사이로

새가 숨소리를 묻고 그림자로 흔들리고 있다

 

구름이 머물다 떠난 자리

벌거벗은 바람이 날선 하루를 벗겨낸다

 

발가락에 피를 말리며 떠다니는 무수한 새들의 수다

푸른 한나절 바람을 품었다 날리는 중이다

 

애기무덤가 칡꽃 술에

뜨거운 입맞춤 하는 부리들

 

칡꽃에 찍힌 입술자국은

계절을 잃어버렸다

 

환한 향기로 발아하는 그믐밤

붉은 꽃물 떨구며 새를 기다리는 밤이 야위어가고 있다

 

 

 

 

 

그렇지

 

 

바다는 수심으로 파도를 키운다

 

가시를 발라먹은 손가락

받아들일 수 없는 어둠

이러지도 저러지도 꼼짝할 수 없는 궁지

파도가 온몸에 푸른 흠집을 내도

밥에 섞인 모래 씹는 기분으로

바람을 걸러내는 모래

 

깊고 캄캄한 바다 푸른 밑에는

긴 창과 단단한 칼로 무장한

사람 사람들

성난 짐승으로 사납게 무리 져 오는 비린내

 

낚싯배는 미끼속에 바늘을 내리고

해초 사이를 비집고 다닌다

귀속을 간질이는 물결

눈동자를 파고드는 날개짓

부서지는 바람소리

끌어안고 뛰어내리는 절벽

깨지면서 길을 연다

 

어둠을 찌르고

부서지는 방향으로

넓고 하얀 바다가 고요의 심지를 세운다

 

 

 

[당선소감] 시창작에 도전하다

 

30대 초반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인생계획표를 작성하고, 즐거운 목표를 세웠다. 정년까지는 열심히 일하고, 정년 이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내가 계획했던 일은 세계를 여행하며 여러 풍광을 사진기에 담는 일 이었다.

종부(宗婦)로서 고생한 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숨어 있었다. 그러나 아내의 건강은 해외여행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같이 있고 싶어 하는 아내의 권유와 틈틈이 시를 읽고 위로를 받으며, 자연스레 시창작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글쓰기 소질은 없지만 노력하다 보면 잘 쓰게 되지 않을까? “끝이 무디다 보니 구멍 뚫기가 어려울 뿐, 한번 뚫리게 되면 그 구멍은 크게 뻥 뚫린다.”는 옛말에 조그만 희망을 걸었었다.

오늘 당선소식은 이런 나의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게 아닐까! 열심히 쓰다보다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격려가 아닐까! 제2의 인생은 시창작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잘 익어 향기가 오래 남는 시작품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을 위해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미흡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한국문학방송 관계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경위]

 

올해로 열 번째가 되는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다. 이번에도 과거(1회~8회)의 경우와는 달리 응모자격 제한(공모 요강)에 따른 순수 미등단자(문예지나 전국·지역 일간신문 등의 신춘문예, 현상공모전 등에서 당선 또는 수상한 사실 없는)로서, 170여 명이 응모했다.

 

1차 예심에서 23명이 선발되어 본심으로 상정됐고, 본심 1차에서 5명(작품수로는 25편. 1인 5편 응모)이 선정됐다. 본심 2차에서는 각 작품별로 채점(점수)제 방식을 통해 최종적으로 1명이 당선자로 결정됐다.

본심은 채점과 집계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심사위원끼리도 누구인지 그리고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도록 철저히 미공개 및 보안을 유지했다(심사위원의 소신과 자율성, 공정성 등 보장). 채점 착안 사항은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부합·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이었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본심은 조영민 시인, 권오성(필명 권이화) 시인, 이경숙 시인(아래 사진, 무순)이 각각 맡았다.

 

- 심사위원 조영민, 권오성, 이경숙 시인

 

 

한국문학방송에서 시행한 2019년도(10)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이경호(67) 씨가 당선됐다.

당선작은 <청어의 방>, <환절기 관절염>, <귀신 고래의 혈통>, <새를 기다리는 밤>, <그렇지> 5편으로, 채점(점수)제 방식인 본선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고르게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써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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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해 외 4편 / 이경숙

 

그 해부터 마을에선 해 기르기가 유행하였다

해가 잔뜩 달리면

투명한 유리 글라스에 진득한 주스를 가득 뽑아 마실 거예요,

둥글게 생긴 소녀는 바짝 마른 혓바닥으로 해를 굴렸다

겨울이면 해는 물을 뒤집어썼다

녹는점에서 어는점으로

얼음은 속으로 열기를 가두는 법을 알았다

 

해에선 조금 쓴 맛이 났다

하얀 종이에 해를 곱게 싸 내어놓는다면

저녁엔 마른 생선 한 조각을 간사한

혀 밑으로 숨길 수 있다

 

말라가던 주홍빛 껍질과 다르게

뒷집의 해는 꽤 무럭 자랐다

숨구멍으로 단맛이 베어나는 것도 같아

그는 어느 선데이 비료를 뿌리의 똥구멍으로

찔러 넣어주었다

해가 잔뜩 웅크린 날

 

해의 부스러기를 핥을 때면 새하얀

눈물이 떨어졌다

노모는 차광막 붉은 모자를 눌러쓰곤

지문이 지워진 손가락으로 검을 땅을 파내고

그녀가 흘린 땀방울은 쉽게 부유했다

가난 대신 쏟아지던 땀에는 소금 한 줌이 자란다

 

해는 촘촘히 태어나는데 빛은

쉽게 태어나는 법이 없다

해 기르기가 유행하는 날이면

나는 쓴맛이 나는 해를 꿈처럼 와그작,

베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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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의 흔적

 

 

초록의 잎사귀로 잠 못 이룬 별빛이 내려앉았다

소리 없는 말발굽

달리던 날들이 늘어날 때마다

푸르게 새겨지던 유목의 흔적

탯줄이 잘린 후 남은 조직처럼

유목의 흔적은 몸 어디를 떠돌았다

탄생의 의미에 대해 말해주듯

늘어지던 어머니의 탯줄

탯줄로 이어지던 흔적들

아이는 모체의 흔적을 마시고 자란다

해가 지날수록 크게 번지던 흔적은 붉다가

파랬다 초록으로 변하곤 했다

어느 초원을 맨발로 달리고 싶은 날이면

빨간 보자기를 둘러매고 날아오른 어린 날

어쩌면 나는 별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

세상과 입맞춤한 자리에는 엉덩이 어느 부근을 맴돌던 푸른

유목의 흔적이 떠돈다

낡아버린 흔적은 검은 꽃으로 피어나는 거란다,

할머니의 주름진 세월 사이엔

지난날 숨겨졌던 흔적들이 피어나는데

오랫동안 제자리에 머물던 나의

발끝은 아직 깨끗했다

발굽이 되지 못한 발끝

잘린 갈기를 기르면 움직일 거라던 시계바늘엔

아직 뿌연 먼지가 쌓여있다

자박, 제멋대로 자란 풀잎을 밟으며 달리고 싶어

나는 고삐를 풀고 단단한

땅을 발끝으로 밀어낸다

45억년 동안 새겨진 지구의 흔적들

자유를 찾아 헤매는 것들의 몸엔 유목의 흔적이 있고

이제야 발굽을 갈아 끼운 몸에선

유목의 흔적이 자란다

 

 

 

 

 

꿈으로 달리는 선박

 

 

나는 매일 잠을 엉성하게 베어 물었다

구름을 닮은 잠

잠은 폭신했고, 부드러웠고 아무런 맛도 없었다

 

꿈으로 항해하는 선박에서

매일 저녁을 표류했다

꿈은 언제나 신중해야 해,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은 하나씩 늘었다

 

의미 없는 기념일들과 시끄러운 정적

왁자하게 떠들던 영화

추억을 필름으로 정의한다면

열아홉 번째 필름은 돌려보지 말도록 해야 한다

꿈이 가장 많이 피어나던 날들 그러나,

아홉수 질긴 생이었으므로

 

꿈은 매일 타올랐다

어쩌면 타 버리는 걸지도 몰라

 

버려진 꿈은 저의 원동력이 되었어요,

 

유명한 100억불부자의 이야기

그는 그 꿈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만 숨겼다

 

선박은 꿈이 없어지면

천천히 추락하는 법

무너지던 이야기들과 어린 문장들

배가 낡아가는 동안에 나는

새로운 잠을 베어 물었다

구름을 닮은 잠에 대하여

 

밤은 길고 잠은 언제나 짧은 것이다

 

 

 

 

 

빨간 망토 소녀의 우화

 

 

음지에선 꽃이 자라지 못해요 나의 손끝은 언제나 그림자 뒤에 있고 내 손에선 꽃이 피어날 수 없어요 음푹 파인 손마디에선 눅눅한 잡초만 기어 올라오는데 쉿, 아무도 그림자는 자르지 않기로 해요

내일 아침엔 오동나무로 커다란 지게를 만들 거예요 할머니가 선물한 빨간 망토를 입고 할머니를 산산조각내기 위해 모두들 슬픔의 눈물을 흘리겠지만-사실은악어의눈물이라도- 나는 한쪽 입술을 한껏 끌어올려 웃어 주겠어요-가장진실된웃음과울음은반비례하다는걸모르는사람들그들에게주어지건할머니의조금여린몫시지만

그건배부를수없고사람들은벌써다음제물을탐색하고있어요이빨이나가거나주름이깊게패인낡은빛들-

 

겨울은 꽤나 오래 쌓이는 법 악어는 숨을 쉬려 고개를 삐죽 내밀다가 그대로 얼어붙어요 앞으로 나흘, 그의 가족은 입에 대해 웃다가 나흘이 지나면 울면서 그를 삼킬 거예요-이런것이바로악어의눈물과같은법칙이되는것입니다-

 

아버지는 몇 달 째 빈손으로 들이치고 어깨에 짊어진 노을은 자꾸만 무거워지는 중이예요

 

세 조각으로 나눈 버터 향 쿠키는 이틀을 먹을 양식 한 조각은 잘게 부수어 할머니의 등 뒤에 숨겨 놓아야 해요 줄어든 양식과 늘어나는 입 이건 언제나 물음표의 법칙 언젠가 버터 쿠키의 향을 들이쉰 곰과 같은 것이 할머니를 잘게 찢어낼 준비를 하고

 

사실 할머니가 준 건 하얀 망토지만 빨갛게 물들 거예요 곧

노을이 우리의 그림자를 덮을 예정이므로

 

등 뒤로 해가 저물어가네요 안녕, 나의 초대형 입, 그랜드-

마마?

 

 

 

 

 

흐린 청춘 사용법

 

 

열아홉 종이 한 장에 떠밀려 나는 서린 날 위로 발을 뻗었지

한순간에 떨어진 바닥을 맨발로 짚은 나에게

달은 자신의 허물을 벗어주었다

그날부터 반푼이가 된 나는 한 평

백오십센치 침대 위에 몸을 뉘였다

다행인건 키가 백사십을 웃돈다는 것

 

청춘들은 누구보다 값싸게 살아야 한다던

어느 부자의 말을 반찬삼아

얼어버린 밥덩이를 씹었지 십킬로

한 푸대로 한 해를 버티던 나에게

천장에 매달아놓을 조기는 사치였다

 

닳은 지문과 입구만 최신식이던 고싯방

읽히지 않는 지문 덕분에 난

선물 받은 휴대폰도 잊고 다시

지문을 지우러 나갔지

그래도 오늘은 천오백원 인생

어제의 딱 두 배의 값으로 살았다는 것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흐린 하늘과 옹골진 식당에서

삼백여 입들과 먹던

이천육백몇십원의 점심식사에 대해

 

밤은 잊힌 나에게 비웃음만 옅게 남기고 떠났다

잔뜩 비가 올 것만 같은 날

청춘은 천원으로 하루를 버티는 것이다

 

 

 

 

[당선소감]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지만은 않습니다.

 

시인은 가장 낮은 곳을 맴도는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그들과 ‘함께’ 감정을 터뜨리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그것이 시가 저에게 준 삶이자, 제가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시의 단면을 본 이상 이제는 더욱 시를 향해 걸어 나가야겠지요.

 

이런 기회를 열어주신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담당자분들과 심사위원분들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울며 성장하겠습니다

 

 

[심사경위]

 

올해로 아홉 번째가 되는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다. 이번에는 과거(1회~8회)의 경우와는 달리 응모자격 제한(공모 요강)에 따른 순수 미등단자(문예지나 전국·지역 일간신문 등의 신춘문예, 현상공모전 등에서 당선 또는 수상한 사실 없는)로서, 210여 명이 응모했다.

 

1차 예심에서 50명이 선발되어 본심으로 상정됐고, 본심 1차에서 7명(작품수로는 35편. 1인 5편 응모)을 선정했다. 본심 2차에서는 각 작품별로 채점(점수)제 방식을 통해 최종적으로 1명이 당선자로 결정됐다.

본심은 채점과 집계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심사위원끼리도 누구인지 그리고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도록 철저히 미공개 및 보안을 유지했다(심사위원의 소신과 자율성, 공정성 등 보장). 채점 착안 사항은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부합·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이었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본심은 하상만 시인, 서상규 시인, 우경주 시인, 김은자 시인(아래 사진, 무순)이 각각 맡았다.

 

- 심사위원 하상만, 서상규, 우경주, 김은자 시인

 

 

한국문학방송에서 시행한 2018년도(9) 신춘문예 현상공모에 이경숙(37) 씨가 당선됐다.

당선작은 <공해>, <유목의 흔적>, <꿈으로 달리는 선박>, <빨간 망토 소녀의 우화>, <흐린 청춘 사용법> 5편으로, 채점(점수)제 방식인 본선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상대적으로 고르게 높은 점수를 획득함으로써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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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밤, 몽상가의 일기> 외 4편 / 권오성

  

 


밤, 몽상가의 일기

 

 

귀가 밝은 아버지 옆에서 죽은 바다를 생각하다가
꽃의 휘파람 소리를, 붉은 물고기가 밤을 따라가는 소리를
눈으로 듣는다                                      
기적이 울리고 밤이 오고 
기차는 빠르게 꽃의 마을을 빠져나간다                         
그런 날이면 눈발은 산책자처럼 밤을 스쳐가고 
목동은 먼 곳에서 잠든다

 

귀가 밝은 아버지 옆에서 귀를 열어야 할까 
꽃의 플랫폼에서 얼어가던 구름, 술잔 속으로 날아왔던 미지의 새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똑 똑, 누가 내 귀를 두드리는 소리
붉은 물고기를 데리고 눈이 아름다운 방랑자가 찾아왔을까
방랑자가 바이올린을 켜 꽃의 목을 비틀거나
마을을 지키는 붉은꼬리쥐뱀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소리일까
마치 밤의 내장을 물고 늘어지는 짐승들처럼
내 귀를 물고 늘어지는 꽃의 휘파람소리일까
이런 날 일기를 쓰는 몽상가에게는 
술이 오르고 취한 새벽이 온다

 

아침이 오기 전, 죽은 바다를 위한 파반느를 쓴다는 건 
기적을 울리는 일이지만, 
흰 상자를 짜는 귀가 밝은 아버지 옆에서 
방랑자의 노래는 얼마나 오래 써졌던가
눈발은 산책자처럼 스쳐가도 상자에 담길 노래는 오래 남는다 
미지의 새가 구름을 베고 상자 속에서 잠들어간다
그만 귀를 닫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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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데미안, 우리가 어린 동생과 철모르고 피던 칸나와 작은 가오리연을 두고 
집을 떠나온 것은 실수였을까?
새점을 치던 아침과 빛나는 회초리로 우리의 등을 때리던 햇빛이 
가는 발목 안에서 둥지를 넓히고 있었는데...

 

그때, 발 앞에 놓인 바다에서는 고기잡이배들이 꿈의 예감을 길어 올리고 있었고, 배에 탄 그들은 부리와 날개를 가진 자처럼 새의 냄새가 나는 어부들이었다.
 
어둠 속의 바다를 가만히 만져보니 알을 깨고 나온 새의 피였다

 

소소리바람이 어부들을 흔들 때면 우리도 흔들려, 때로는 
바다란, 가는 정맥을 끌고 도도한 폭풍 속에서 위태롭게 껍데기를 지키는 새로운 알 같은 것임을 예감하면서도

 

(어린 동생은 얼마나 자랐을까
칸나와 가오리연은 아직도 밤의 겨드랑이 속으로 붉은 폭탄을 던질까?
추락을 모르던 불꽃전사들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끝까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해안가의 경이로운 모래알이라지만
고기잡이배들이 그물로 껍질을 부수고 새를 길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일찍, 진흙이 찾는 표정을 어떤 분이 예감했듯이 
어린 손이 어린 손을 마주잡고 새점을 치던 아침, 우리가 찾는 표정이 어두운 바다에 있을 것을 예감한 것은 새가 알 속에 있을 때였다

 

 

 

 

다시 만날 때까지

 

공이 굴러 눈사람처럼 커진다 
자꾸 커져서 밤이면 내 잠속으로 찾아온다 푸른 염소 몰고 온다

 

새는 언제나 머리위에서 장미꽃을 꽂고 나를 본다

 

염소가 안 올 때도 있고, 새가 울 때도 있다
오늘처럼 염소를 몰고 왔을 때 내 몸속으로 강물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강물도 불면서 공처럼 굴러간다 
공을 따라 이대로 백 년을 내려가면 바다에 닿겠지, 우리 돌개바람 불어와도 거기서 만나자

 

잠 속이 아무것도 아닌 빈 마을이었을 때, 
염소와 새는 어디서 왔을까? 
처음 눈이 내리듯이

 

백로처럼 왔다가 쪽배처럼 떠난 사람아
잠 속으로 샛바람이 새 울음처럼 섞여들어 당신 이마에서
꽃이 지고 나비가 지고
 
진자리마다 수염이 빠진 구멍처럼 어느 날부터 공이 되어 거리를 굴러다니는 사이 
우리가 키우던 염소는 가는 발목을 끌고 바다에 닿겠지 
우리 반은 죽어서 그렇게 만나지는 것
반은 살아서 이렇게 헤어지는 것

 

 

 

 

수수께끼변주곡

 


수수께끼처럼 살다간, 카론성 성주의 옷자락에 눈이 내린다

 

잉카제국의 마추픽추는 지금도 눈이 내리면 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팬파이프를 불던 목신은 별들의 울음을 들으며 자란다는데

 

카론성 성주가 잠든 고성에는 눈이 내려도 별들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목동의 휘파람을 들으며 자라던 양떼들은 깨지 않는다

 

바람이 눈을 털고 정원 옆으로 목장의 문을 열면

 

키 큰 향나무가 잠든 양들을 부르는 소리
돌이 된 새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소리

 

마추픽추에서는 아직도 별들이 눈 내리는 쪽으로 귀를 기울일 때
눈 속에서 양들이 오므린 입으로 풀을 뜯다가
목신의 팬파이프가 들리면 잠 밖으로 천천히 발을 내민다는데

 

누가 성주의 옷자락 위에 독한 잠의 꽃씨를 뿌렸을까
독을 품은 꽃들이 바람의 풀피리에 맞춰 
성주의 묘지에 깊이 발을 내리고

 

잠 속까지 촘촘히 눈이 내리고

 

누가 잠 속으로 내려가 목동의 휘파람으로 
수수께끼변주곡 (님로드*)을 연주하는지 고성의 바깥에는 
스스로 우는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곤 한다


*님로드(Nimrod)는 영국 작곡가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9번곡으로 밝고 화사하면서도 장엄하다

 

 

 

 

 

광염소나타

 

 


처음 본 신의 얼굴에서 광기를 보았다
어쩌면 절정이 오기 전부터 핏줄의 길목에서 나를 기다렸는지 모른다

 

피할 수 없는, 레시터티브의 경건함으로 페달을 밟는 순간, 건반에서 뜨겁게 피가 솟아올랐다
피는 리듬을 타고 현으로 뻗어나가 어느새 불이 붙고 있었다

 

악보를 태우며 불은 먼 시간으로 번져나갔다 
광기의 뼈대를 한 옥타브씩 넘어가는 화마의 성난 스케르초가 불의 천형을 견디며 밤의 지붕위로 뜨거운 순간을 틀어 올리는 동안, 
피는 마지막 한 방울을 겨누어 저만치 서있는 동백꽃을 살라먹고 
 
내 머리 위에서 착한 동백꽃물이 든 별이 죽어가는 때
화기 낭자한 내 얼굴이 번쩍 피아노에 비친다
활활 불타는 건반위에서 미친 듯 춤추는 손가락을 훔쳐보며 광분하던 신의 얼굴이 그만큼 빛나던 것처럼,

 

불의 뿌리로 돌아가던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
재가 된 십자가위에 떨어지는 새벽 종소리는 태초에 들었던 불꽃판타지였을까
 
나는 이제야 죽음의 깃을 달고 코다로 질주해 간 아름다운 불새가 되었다

 

 

 

 

□ 권오성 프로필

△경북 안동 출생(1961)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전문가과정) 수료 △계간 《미네르바》 신인상(2014)

 

 

 

 

 


■ 심사경위

 

  올해로 여덟 번째가 되는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다. 이번 응모자는 450여 명에 이르렀다.

 

  1차 예심에서 70여 명을, 2차 예심에서 22명을 선정했다. 이 22명이 3차 예심으로 넘겨졌다. 여기서 최종적으로 본선에 올려질 7명의 작품 35편(응모자별 5편)이 가려졌다. 그 35편에 대해 각각 응모자 인적사항(성명, 연락처 등) 모두를 완전히 삭제한 다음 무작위로 불규칙하게(뒤섞어) 편철했다. 그 후 곧바로 본심으로 넘겼다.

  본심은 채점이 종결될 때까지는 심사위원끼리도 누구인지,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도록 미공개 및 보안을 유지했다. 또한 집계(평정)된 점수에 대해 각 심사위원이 당선자 결정을 인준(이 단계까지도 본선 응모자 성명 미공개)할 때까지도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응모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심사위원 전원이 당선자를 인준한 후에야 심사위원과 당선자 및 본선진출자들의 성명을 각 심사위원에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렇듯 한국문학방송의 당선자 결정방식은 심사위원간 작품추천 및 토론 형식이 아닌 것이다.


    채점 기준은 각 심사위원별로 동일했으며, 각 작품별로 100점 만점에 하한(최저)점은 설정하지 않았다(최저 0점까지도 가능). 채점 착안점은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부합·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이었다. 당선자 선정 기준은 각 심사위원별로 각 작품 및 다섯 작품 모두의 합계점에서 차하(상위 점수를 장원, 준장원, 차상, 차하로 구분) 이상을 받은 사람 중 장원 항목이 가장 많은 사람이 당선되는 기준으로 평정이 됐다. 이번 당선자는 그 요건을 모두 충족하였으며, 총점에서도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응모자격은 기성작가(시인)와 예비문인(문학도)을 가리지 않으며(남녀노소ㆍ국적 불문, 누구나 응모 가능) 신인등용문 성격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기성작가(시인)에게 주어지는 재평가의 한 방편에 더 가깝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신인등용문은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가 아니라도, 국내에만도 3백여 종이나 된다는 문예지와 중앙 및 지방 일간지(신문) 등 수없이 많다.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에는 해마다 응모자 중 상당수가 기성작가(시인)로 파악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그 벽을 넘은 문학도(미등단 신인)는 없었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본심은 김규화 시인, 문정영 시인, 이국화 시인, 이향아 시인(아래 사진, 가나다순)이, 예심 1차와 2차는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3차(예심 최종)는 조영민 시인(《현대시학》 등단)이 맡았다.


올해도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한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매번 추구한다. 그래서 심사방식도 채점제인 것이다. 본선진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인비(人秘)키로 한다. 본선진출자나 낙선자 모두의 사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진심어린 큰 감사와 아울러 아쉽게도 낙선된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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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잎꿩의비름* 외 4편 / 김은자

 

 

움켜잡은 손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창칼에 쫓겨 낭떠러지에 몸을 던진 여자 죽은 뿌리에 걸려 바위틈 몇 알의 흙을 부여잡은 여자 수직으로 날이 선 채 과부처럼 살아온 여자의 살결에서 살의가 빛나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실족이라 했지만 엄연한 개화였다 은장도를 가슴에 품고 산 맨발을 보아라 흙을 딛지 못하면 살 수 없어 비탈에 집을 지었다 얼마나 많은 바람을 끌어안아야 했을까? 꽃잎이 어긋나 있는 것을 보니 수천 번 엇갈린 것이 분명하다 계곡의 습기를 모아 터지는 눈망울 마주나거나 돌려 난 녹백색 잎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난다 산비탈 아래 마을의 반짝이는 불빛이 진홍색 눈물처럼 짙다 아찔하면서도 고혹적인 자태 절벽 위를 날던 새가 둥근 저녁을 편다.

 

* 산비탈 바위틈에서 자라는 돌나물과에 속한 여러 해 살이 풀의 이름

 

 

 

 

 

폐염전

 

 

무너진 서른세 번째 소금창고가 그녀였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모른다

무거운 도시를 이고 풀썩 주저앉은

케케묵은 소금집이 애를 순산하고도 버림받은

소래 여인이었다는 것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풍경을 위해 이목구비를 지운 여자

풀숲으로 돌아가는 저녁이면

머리 위로 흰뺨검둥오리 날아오른다

바람만은 지우지 못하고 떠난 그녀,

번제를 위한 그녀만의 방식이었으리라

쓰러진 소금창고 정지된 시간 위에

여체는 광물처럼 누워있다

촛농처럼 녹아내린 발가락들이 바다로 쓸려갈 때마다

염전이었던 방은 파도소리를 토해 놓는다

축적된 것들이 소금처럼 고요한데

시체 한 구가 민물에 밀려갔다 밀려온다

습지의 갈대들은 느리게 돌아가는

무성필름처럼 동작과 대사가 맞지 않는다

과거를 알아듣는 사람은 없다

염부들이 팔뚝에 불뚝 솟은 힘줄 같은 전설을

말없이 바닷물에 밀어 넣는 밤

백야(白夜)다,

스러진 것들이 경계를 허물며 갈대숲을 피워 올리는 하얀 밤

소금창고 지붕이 바람에 휘날린다

오래 잊고 살았다

소금창고 양철지붕 위에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를

비무장지대처럼 살다 바람이 된 갯골 여자를

 

 

 

 

 

화장

 

 

관이 불 속으로 들어가자 나는

죽을힘을 다해 엄마를 불렀다

안 보이는 영토가 썰물처럼 밀려들어 갔다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천착되어가는 시간의 무늬들이

탯줄이 끊긴 갓 태어난 아기처럼 오열했다

엄마와 나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 편히 쉬세요’

엄마는 평소 화장을 지우던 저녁처럼

수건을 머리에 쓰고 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화장을 지우러 가는 거란다’

무거운 옷을 벗고 속뼈까지 태워달라는 엄마

흐린 날이면 하늘을 힘차게 날아가는

갈매기 눈썹 그려 넣었던 시절이 엄마에게도 있었다

슬픔과 웃음을 섞어 견고한 입술을 찍으며 살았던 시간

엄마의 귀는 접혔다가 펴지는 우산 같아

토란잎처럼 젖지 않았다

엄마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받아 쥐고 알았다

한 움큼의 웃음, 한 움큼의 울음, 한 움큼의 엄마

자리를 비운 사이 창 밖에는 겨울이 오고 있지만

하얀 맨발 엄마가 지금도 따스하다

 

 

 

 

 

버려진 집

 

 

버려진 것들은 구멍으로 살신하는 근성이 있다

구멍은 퇴화되어 바람으로 부활하는 마력이 있다

남겨진 것들은 모두 저 혼자 쓰러진 것들

혼자 우는 사이 구멍이 되고,

구멍이 통로가 되어 문으로 변한 것들이다

빈 창살이 바람과 몸을 섞어 부재가 되었다

행간마다 숨결을 놓지 않은 까닭이다

고독이 짐승처럼 뛰쳐나와 깨진 창문

버림받은 것들은 안으로 소리를 품고 있다

기울어진 빛들이 벽으로 위태롭게 쏟아진다

방목된 것들이 기원 속으로 스며드는 저녁

빛바랜 페인트가 몸을 추스르고 앉은 노파의 등처럼

허물어진 지붕 위로 쿨럭 쿨럭 마른기침이 새어나가고

침묵하던 것들이 흐르기 시작한다

떠돌던 새가 돌아올 징조다

이제 바람 소리를 기록하던 것들이 귀화하리라

마른 골격위에 별들이 휘추리처럼 매달려 있다

바람은 길게 누운 몇 세기전의 계절을 접신한다

방울을 세게 흔들며 버려진 자가 버린 자를 부르는 밤

한 뼘 열린 뒷문으로 스무 평 남짓 전답이 바다 같다

 

 

 

 

 

동태

 

 

동태가 생태보다 무서운 것은

토막 난 몸으로도 눈을 뜨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문객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후의 눈

내 살 누가 파먹나 사력을 다해 노려본다는 것이다

핏발이 선 눈빛에 말없이 수저를 놓는다

용서 같기도 하고 포기 같기도 한 눈빛이

내공처럼 탱탱한 울음을 채워 넣고 있다

흐릿한 기억으로 생을 감당할 수 없었기에

꽝꽝 얼도록 시력은 흔들리지 않는다

살이 달콤할수록 등골이 오싹해진다

썩은 동태 눈깔이라고 누가 비웃었던가?

동태 눈깔 파먹는 재미 쏠쏠하다고 입을 모으는 저녁

시선은 골격을 허물지 않는다

남은 한 점의 살점까지 지켜본 뒤 버려지리라

지느러미 불태우고 내장이 뿌려지도록

마르지 않는 눈길이여

동태가 보고 있는 것은 허공이 아니다

마지막까지 쏘아보는 냉혈의 눈동자

 

 

 

 

붉은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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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친정어머님을 떠나보낸 지난여름 이후 얼마간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숨을 거두시는 마지막 순간조차 곁에서 지켜보지 못한 딸로서 나 같은 사람도 시를 쓸 자격이 있는 것인가 한동안 먹먹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결핍의 연속이었던 이방에서의 시쓰기는 나의 시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알수없어 더욱 고독한 행진이었습니다. 의식 속에서 발효된 모국어가 이질 문화속에서 둥둥 떠다니는것 같은 날이면 그 모든것들이 고이지 않고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흐르다가 작은 돌뿌리 옆이라도 소신있게 피었으면 좋겠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뉴욕은 이번 겨울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추위를 견디느라 가시같이 변해버린 뒷 숲의 나무들을 보면서 잎이 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깊어졌을 무렵 당선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창밖을 보니 가시같던 나무가지에 어느새 봉우리들이 환하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시고 세워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한국문학방송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 떨리는 마음으로 시에 정진하겠습니다. 나의 시 쓰기에 묵묵히 뒤에서 응원해 준 가족들과 '붉은 작업실' 문학교실 문하생 여러분께 기쁨을 나누어 드립니다.

 

 

 

 

비대칭으로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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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경위

 

올해로 일곱 번째인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이번 응모자는 400명을 웃돌았다. 예심에서 8인의 작품 40(응모자별 5)을 선하였고, 40편에 대해 각각 응모자 인적사항(성명, 연락처 등) 모두를 완전히 삭제한 다음 무작위로 불규칙하게(뒤섞어) 편철했다. 그 후 곧바로 본심으로 넘겼다. 본심은 채점이 종결될 때까지는 심사위원끼리도 누구인지,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도록 보안을 유지했다. 또한 집계(평정)된 점수에 대해 각 심사위원이 당선자 결정을 인준할 때까지도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응모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심사위원 전원이 당선자를 인준한 후에야 심사위원과 당선자 및 본선진출자들을 각 심사위원에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렇듯 한국문학방송의 당선자 결정방식은 심사위원간 작품추천 및 토론 형식이 아닌 것이다.

 

채점 기준은 시행 첫회부터 올해까지 한결같은 기준이 적용됐으며, 각 작품별로 문법 · 어법 · 표현의 적절성(15) 주제와 내용의 부합 · 일관성(20) 감동 · 느낌(20)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20) 작품의 신선감 · 독창성(20) 작가적 역량 · 성장가능성(5) 등 총 100점 만점으로 되는 구조다. 당선자 선정 기준은 각 심사위원별로 각 작품 또는 다섯 작품 모두의 합계점에서 차하(상위 점수를 장원, 준장원, 차상, 차하로 구분) 이상을 받은 사람 중 전체 총점이 최고인 사람이 당선되는 기준으로 평정이 됐다. 이번 당선자는 그 요건을 모두 충족하였으며, 총점에서 최고를 기록함은 물론, 그 이전에 심사위원 모두로부터 차하 이상을 득점한 유일한 사람이다.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응모 자격은 기성작가(시인)와 문인(시인)지망생(문학도)을 가리지 않으며(남녀노소ㆍ국적 불문, 누구나 응모 가능) 신인등용문 성격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기성작가(시인)에게 주어지는 재평가의 한 방편에 더 가깝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신인등용문은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가 아니라도, 국내에만도 3백여 개나 된다는 문예지와 중앙 및 지방 일간지(신문) 등 수없이 많다.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에는 해마다 응모자 중 상당수가 기성작가(시인)로 파악되고 있으며 아직까지 그 벽을 넘은 문학도(미등단 신인)는 없었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본심은 정일남 시인, 쾨펠연숙 시인, 서상규 시인, 조영민 시인이,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맡았다.

 

올해도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한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매번 추구한다. 그래서 심사방식도 채점제인 것이다. 본선진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인비(人秘)키로 한다. 본선진출자나 낙선자 모두의 사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진심 어린 큰 감사와 아울러 아쉽게도 낙선된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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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부족 외 4편 / 최재영

 

 

말(言)로써 그려진 지도가 있었다

아이의 첫 울음으로 운명의 등고선을 점치고

짐승들의 귀도 처음인 듯 열리던 곳

누대 몸속으로 유전해 온 길이 있어

아슴하니 눈길 닿는 곳까지 획을 그었는지

그들의 생을 축척해도 영역은 가늠되지 않았는데,

몸에 길을 들여 가는 곳마다

부족의 영토는 새로이 확장되곤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좌표를 그렸으므로

어디에도 경계선은 없었으므로

간혹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들은 탯줄의 울림으로 지도의 노래를 배우고

가장 먼 별자리에 방점을 찍어

매일 웅장한 족적을 기록했으리라

모든 문명이 부족을 비껴갔으므로

말(言)의 사원을 짓고 탑을 올렸으리라

무지개를 필사하여 후세에 전하기를 수백 번

몸으로만 익혀 온 지도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으니,

태초 아름다운 지도는 멸실되었으니,

이로써 부족은 떠도는 것들의 기원이 되었다

 

 

 

 

필경사 Ⅱ

 

 

필력을 자랑하는 꽃들이

허공에 몇 점 획을 찍는 아침

말 못할 천기를 예감하였을까

누군가는 하늘의 전언을 필사하느라

지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도도하고 정교한 문장을 틔우는 중이다

바람의 어수선한 틈을 놓치지 말 것

두려움과 초조함을 감추느라

혹자는 애써 꽃받침을 활짝 열어 젖힌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세상의 징후를 기록하였던 바,

기록에는 별다른 기교가 필요치 않다며

담장 밑 그늘만을 꼼꼼히 채록하기도 한다

개화는 이미 밀서가 아닌 평서(平書)인 것

그러므로 꽃들은 쉽사리 서체를 내놓지 않는다

형형색색 눈부신 필력을 드러내기까지

그 미궁을 빠져나오는데 평생이 걸릴 것이다

꽃들은 비밀을 간직한 두려움으로 몸을 연다

일필휘지 내리긋는 격렬한 몸놀림

새로운 필경사가 피어났다는 소식이다

 

 

 

 

꽃이 말하다

 

 

꽃이 열리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다

봄 그늘에 앉아

무심한 바람이 둥글 펴지고

향기로운 햇살 몇 줌 도르르 구르는 것을 지켜보다

그 아득한 멀미 속을 헤매이다가

끓어오르는 절정들을 그만, 복사하다

꽃의 이마는 늘 신열에 휩싸였으므로

뜨거움 속에서 종종 길을 잃다

매번 허탕만 치고 돌아오는 길은

무수한 통점이었느니,

돌아보니 푹풍처럼 지나왔노라고

지나온 길은 단숨에 지워졌노라고

꽃이 닫히는 시점 또한 눈 멀고 말아

모든 찰나는 숨가쁜 적요에 들다

하여 천 년을 피어있어도 순간이라 기록하다

한나절 봄볕이 붉게붉게 소멸해 가다

그리고 진실에 눈 뜬 자들은 이윽고 말하다

봄은, 오늘 또 몇 번의 허구를 재촉하였는가

꽃들이 기울어가는 봄날을 탁본하여 후일을 도모하다

다시 처음인 듯,

 

 

 

 

빗살무늬

 

 

어제는 짐승의 시간이었어요

오랜 유목을 끝내고

수백 도의 펄펄 끓는 화기를 견뎌냈지요

어쩌다 가끔 순백의 쌀알을 받을 때면

온 몸 황홀해져 전율이 일곤 했지요

숨도 쉴 수 없는 암흑을 지나

날카로운 빗금을 몸에 두를 때까지

수천 년을 감당하기에는

나는 너무 소극적이고 협소하여라

폐허처럼 버려져 있을 때에도

수없이 겨울이 내리고 꽃이 다녀갔지요

그때 이미 소멸의 끝에서 당신을 알아버렸으니,

내게 유적의 냄새를 입히고

빗살 문양을 넣은 이는

자신의 빗장뼈를 갈고 다듬어

아직 오지않은 날들을 벼리었을까요

꿈에도 기교가 필요한 법이라지만

화려한 장식 따위 필요치 않아요

지금도 기원을 찾아 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는 끝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여요

 

 

 

 

목련 Ⅰ

 

 

창가의 목련이 흔들린다

이쪽을 기웃거리다 나와 마주치자

슬며시 외면해 버리는,

그 파문에 나도 잠시 흔들렸던가

목련의 한 시절이 내게 물들어

모두 북쪽으로만 가고 있나니

내 발걸음도 자연스레 북(北)으로 향할 밖에,

봄볕 몇 줌에도 꽃들의 좌우명은 바뀌나니

바람의 먼 기별에도

나는 자꾸만 눈물샘이 젖어들었으니

내 안의 그늘진 폐허도 한 번은 화들짝 피어날 것이니

나의 짧은 몇 걸음이

네게는 천 년을 견디는 일이어서

피고지는 주어들도 한 계절을 걷는 일이어서

봄날을 건너가는 그의 잔잔하고 기인 호흡이

얼룩처럼 어룽지는 몇 날

목련 안쪽의 세상을 내 더 이상 알 수 없으나

떨어지는 날들도 한 생일 것이니

지금 막 눈 맞추는 순간이

너와 나의 평생이다

이리 뜨거운,

밤새 천둥번개가 요란하였다

내밀한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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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다시 새해가 되었고, 여전히 신춘문예의 열병 속에서 응모를 했습니다. 아주 우연히 시작된 글쓰기는 내게 많은 실망과 좌절과 즐거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수없이 응모를 하고 낙담하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글쓰기의 노고와 번거로움, 그것은 기쁨이었고 환희와 같았으므로 기꺼이 낙방의 슬픔을 감내하였지요. 출 퇴근을 하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내 의식을 차지하는 가장 큰 부분은 바로 ‘글쓰기’였기 때문입니다. ‘글쓰기’의 어려움은 내게는 곧 즐거움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굴곡을 지나면서 얻어지는 한 편의 ‘시’...... 밤잠을 잊어도 좋을 향기로운 문장을 맞이하는 일은 어쩌면 내 평생의 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봄이 오는 소리들이 사방에 가득합니다. 이 싱그러운 내음을 향유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입니다. 응모 작품 모두를 당선작으로 한다는 심사방식이 새로웠으나 내 작품에 대한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용기를 내어 정진할 수 있도록 어깨 다독여주신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시’가 아니었다면 누리지 못할 호사입니다. 필시 내 다음 생도 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루파나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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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경위]

 

올해로 여섯 번째인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이번 응모자는 260여 명이었다. 예심에서 6인의 작품 30편을 선하였고, 그 30편에 대해 각각 응모자 인적사항(성명, 연락처 등)을 삭제한 다음 무작위로 불규칙 편철했다. 그 후 곧바로 본심으로 넘겼다. 본심은 채점이 종결될 때까지는 심사위원끼리도 서로 누구인지, 몇 명인지 전혀 알 수가 없도록 보안을 유지했다. 또한 집계된 점수에 의거 각 심사위원이 당선자 결정을 인준할 때까지도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응모자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심사위원 전원이 당선자를 인준한 후에야 심사위원과 당선자 및 본선진출자들을 각 심사위원에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이렇듯 한국문학방송의 당선자 결정방식은 심사위원간 작품추천 및 토론 형식이 아닌 것이다.

 

채점 기준은 시행 첫회부터 올해까지 한결같은 기준이 적용됐으며, 각 작품별로 △문법 · 어법 · 표현의 적절성(10점) △주제와 내용의 부합 · 일관성(20점) △감동 · 느낌(20점)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20점) △작품의 신선감 · 독창성(20점) △작가적 역량 · 성장가능성(10점) 등 총 100점 만점으로 되는 구조다.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교체 위촉함을 원칙으로 하는데, 이번 본심은 문정영 시인, 서상규 시인, 천향미 시인, 김다희 시인이,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맡았다.

 

올해도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한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매번 추구한다. 그래서 심사방식도 채점제인 것이다. 본선진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인비(人秘)키로 한다. 본선진출자나 낙선자 모두의 사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진심어린 큰 감사와 아울러 아쉽게도 낙선된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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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터너* / 우경주

 

 

무음의 협연이 시작되고 긴장이 흐른다

 

그는 연주자의 그림자

연주자와 한 몸이 되는 순간, 페이지가 넘어간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울려 퍼지고

여든여덟 개 건반을 눈으로 넘나들며

숨소리도 나지 않게

열 개의 손가락과 호흡을 맞춘다

 

그늘에 묻힌 그의 손끝에서

갇혀있던 갖가지 음표가 걸어 나오고

분위기는 날개를 단다

 

음악의 끝부분이 가까울수록

연주자의 두 손 보다 앞서가는 페이지터너의 눈

음의 선율에 발을 헛디딜까

악보를 넘기는 손끝에 진땀이 흐른다

 

드디어 절정이 고개를 꺾으면

피아니스트의 손이 건반에서 조용히 가라앉고

연주자의 머리위로

우레처럼 쏟아지는 관객의 박수소리

 

페이지는 제자리에 놓이고

그는 박수의 뒤편으로 밀려난다

 

* 페이지 터너: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

 

 

 

 

손가락 끈

- 노숙자들의 템플 스테이*

 

 

세상의 끈을 놓친 손가락이

끈 하나 붙잡고 한 발 한 발 짝을 지어가는 시간

오른쪽 둘째손가락 끝만 간신히 맞대고

눈 감은 사람이 눈 뜬 사람을 따라 간다

용주사 절 마당을 지나 다다른 돌계단

높낮이가 달라 서로 마음을 놓칠까

아슬아슬 손가락 끝에 온 마음을 매단다

 

눈을 뜨고도 깜깜한 세상

도시의 귀퉁이를 헤매던 바람들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바람 부는 거리에서 몸 하나 뉠 곳 없었다

 

손가락 끝에 잠시 흘러간 시절을 묶어놓고

불운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

메마른 손가락에 힘을 준다

이젠 거리의 질긴 끈을 놓고 싶다는 듯

따뜻한 끈 하나 갖고 싶다는 듯

 

붙잡을 곳 찾아 이곳에 모인 바람 따라

도시의 그늘도 함께 따라 왔다

골목을 헤매고 다닌

저 바람에서 노숙의 냄새가 난다

 

* 사찰체험

 

 

 

 

 

거위벌레의 집

 

 

뒤꿈치를

들고 바람이 지나간다

나뭇잎 포대기 한 채

참나무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그네를 탄다

도르르 말린 나무이파리

그 속에 어린것이 잠들어 있다

저 편안한 반동

다디단 잠은 단단히 포장되었다

흠 없는 잎맥 골라 꼼꼼하게 재단하고

홈질에 박음질까지

정성어린 손끝이 야무지다

원통으로 마무리한 저 품에 어미의 기도가 쌓여있다

애벌레가 나뭇잎 뭉치 뚫고 땅 속으로 들어가고

하늘을 나는 멋진 성충될 때까지

더위를 등에 업고 참나무에게 빌붙어

혼신을 다하는 거위벌레

자식을 위한 은 어미의 몫이다

버림받는 아이들의 눈물이

뉴스로 장식되고 따뜻한 요람은 사라지는데,

작은 거위벌레가

새끼를 위한 집을 짓고 마지막 숨을 거둔다

여름 숲속

둘둘 말린 나뭇잎 한 채

바람이 조심조심 어르고 간다

 

 

 

 

 

연두

 

 

다관 속에 아침을 담는다

여린 찻잎으로 숙우가 기울어지면 마른 잎이 오금을 펴는 소리

머금었던 하늘이 연둣빛이다

저 여린 찻잎이 토해낸 녹색의 피

뜨거움에 볶이고 수없이 주무른 손 끝에 덖여

밀봉된 입

그늘에서 서서히 말라간 찻잎의 마음들

이제야 찻잔 가득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나 한때 다향茶香처럼 푸르렀으니

그 물기어린 시절은 연두였으니

내 몸에서 빠져 나간 시간들은 헐거나 눈이 멀어

모두 퇴색되었다

 

우러난 차 한 잔, 오래 마른 침묵이 열리고

녹차를 따던 여린 손과

바구니에 담긴 햇살이 이렇게 싱그럽다

연두 한잔으로 마음을 채워

걸쭉한 피를 걸러낸다

마음의 응어리를 다 풀어 놓는다

 

 

 

 

 

설화(舌花)

 

 

내 몸에 자주 꽃이 핀다

 

사철 봉긋 봉긋,

명절이나 집안 행사 때가

가장 꽃 피우기 좋은 시기

입안에 숨어 있던 꽃씨를 틔워

알알이 쓰린 꽃잎을 혓바닥에 피운다

 

까칠한 설화

맵고 짠 음식에 닿으면 벌겋게 만개한다

좋아하는 평소의 음식 모두 물리치고

매미처럼 한세상 청렴하게 살다가겠다고

찬물로 세치의 혀를 달랜다

 

일복 많은 종부, 나는 저 꽃의 속내를 알지만

어찌할 수 없어

칭얼대는 설화를 달래가며 밤을 지샌다

 

몸이 몸에게 보내는 붉은 메시지

나는 그의 경고를 무시한다

 

꽃 피울 곳은 오직 이곳

설화가 지친 몸에 뿌리를 내린다

 

 

 

 

시계들의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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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다시 일어나 걷겠습니다"

 

수술 통증이 가라앉을 때쯤 찾아온 당선 소식에 기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사물들에게 말을 건네도 흰 종이 위에서 계속 맴도는 나를 보며 글 쓰는 일은 가야 할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거듭 절망하며, 이제 이쯤에서 멈추고 싶었을 때 뜻밖의 당선 소식은 주저앉은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힘을 내어 다시 걸어야겠습니다.

 

지나고 보면 어느 것 하나 그저 지나칠 것은 없었습니다. 긴 터널도 의미 있는 배경이 될 것이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무엇보다 시의 세계로 이끌어 주신 정수자 선생님. 마경덕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진기 시인님과 시담회 문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저의 부족함을 가능성으로 믿어주신 한국문학방송과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힘이 되어주는 남편과 아들, , 저를 아는 모든 고마운 분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심사경위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는 당선자의 응모작품 모두를 당선작으로 한다. 응모작 중 단 한 편이라도 각 심사위원으로부터 낙제점수(소정의 채점 기준에 의거)를 받으면 당선이 불가능하다.

 

이번 응모자는 350명 남짓이었다. 예심을 통과한 5명의 작품 25편이 인적사항이 완전히 삭제되고 불규칙한 순서로 편철되어 본심으로 넘겨졌다. 본심사은 채점이 종결될 때까지는 심사위원도 다른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몇 명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으로 진행됐다. 심사중에는 오로지 심사위원 본인만의 채점(심사용으로 사전에 설정된 소정의 항목과 점수)이 있을 뿐이었다. 즉 일반적인 심사방식인 심사위원간 작품추천 및 토론 형식이 아닌 것이다.

 

이번 본심은 정일남 시인, 배찬희 시인, 서상규 시인이 맡았다.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이나 낙선작에 대한 의견 등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한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매번 추구한다. 그래서 심사방식도 채점제인 것이다. 소정의 채점 기준에 크게 미달되지 않고 단 한 편의 낙제 작품도 없이 골고루 좋은 점수를 받은 사람들 중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어야 당선이 가능하다.

 

끝으로,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진심 어린 큰 감사와 아울러 아쉽게도 낙선된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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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의 아바타 외 4편 / 김다희

 

 

수도꼭지가 마른 눈물을 보인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철물점 김 씨를 불러

몇 번 수리를 해도

여전히 훌쩍거린다

팔순 앞둔 어머니

무릎에도 물이 샌다

그 누수엔 대책이 없다며

쇠붙이 무릎 끼워 넣는다

무릎에 세 든 쇠붙이는

제 무릎이 아니다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처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원형은 죽었다

사실 신도 죽었다

우리가 신봉하는 것은

신의 아바타인 것처럼

우리 집 수도꼭지든

어머니의 무릎이든

또 다른 아바타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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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시간의 나이테 같은 길이

둥글게 휘어지며 모퉁이를 지나간다

숨겨진 흔적이 꿈틀거린다

아픈 생각이 이 골목을 지나는 동안

꿈의 모서리가 닳아져 뭉툭해진다

하늘을 찾아가던 어린 날의 숨바꼭질

골목의 어깨보다 더 커버린 지금

골목에 들면 언제나 첫 눈이 내린다

그 골목 끝에는 아직

그 주소가 남아 있을까

골목이 깊어질수록 궁금해진다

부정하고 싶지 않는 상처의 풍경

골목이 굽은 허리를 펴고

내 눈물을 쓸어 내고 있다

그쯤에서 멈추고 싶은 길이여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화장을 지운 술래의 얼굴

 

 

 

 

 

어머니의 문자

 

 

바코드 넘버 19320628

수천 번을 입력시켜도

숫자는 늘 뒤죽박죽이었다

0에서 9까지 열 개의

조합이 어려운 어머니

치매퇴치용 문자 메시지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숫자 보다 배짱이 맞으신지

글자 수가 나날이 늘어간다

-따라바무거나 

딸아 밥먹었나 라는 말이고

-어지소시이음노

어찌 소식이 없노 라는 말이다

식민지의 가난한 딸로 태어나

글 한 자 배우지 못한 내 어머니

가끔은 신문지에 아는 글자

침 발라 꼭꼭 눌러 

따라 써보기도 하고 

읽어보기도 하는데

손바닥 보다 작은 휴대전화

그 속에 세상이 다 들앉았다고

닦기도 하고 금방울을 달기도 하고

어린 나를 키웠듯 정성이다

띄어쓰기 받침 다 무시해도

나에게는 신통하게 다 해석되는

어머니의 문자

 

 

 

 

 

내부로부터의 안부

 

 

책을 펴자 모서리를 찢으며 친구의 숨소리 들린다 궁서체가 미세하게 발을 뻗은 갈피에서 편지가 유언처럼 발견됐다 찢겨진 입술 누군가 비밀을 물고 있는 입술에 날 선 칼을 갖다 댄 자국이 붉고 선명했다 갈피갈피 겨울이 익어가는 견고한 내부가 보였다 친구의 안부가 몸을 웅숭그려 먼 길을 걸어 왔던 날, 수십만 마리의 일개미들이 모인 듯 봉투 속은 분주했다 신음 소리가 편지의 몸 밖을 수시로 나들었다 찢겨진 봉투처럼 친구의 生도 오래가지 않아 찢어졌다 나는 그를 외면했다 오늘, 다시 친구를 만났다 편지지에 맨몸을 밀며 묻는 안부가 숨가쁘고 침울했다 세상 모든 나무들 제 몸 말려 겨울을 준비하듯 친구의 겨울은 어디쯤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책갈피마다 겨울나무 우는 소리 웅웅 들린다

 

 

 

 

 

상처

 

 

봄이 산산조각 났다

꽃나무의 정거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무의 입술은 더 검고 어두워져 갔고

만년설 아래 가부좌 튼 氷河氷이 

검고 어두운 입술에 수혈을 시작했지만

봄의 기억은 나무의 힘줄을 따라 다시 찾아왔고

그의 갈비뼈 사이사이 

면경 같던 얼음이 몸을 찔렀다

나에게도 벚꽃 환하던 봄이 있었다

환한 그의 얼굴 속에도

거미줄처럼 얽힌 상처의 길이 숨어 있어

호요바람이 잦고

갈씬거리는 흔들림에도 허리가 굽었다

산다는 건 

환한 꽃에도 상처 내는 일이란 것을 살면서 알았다

봄의 상처 위로 푸른 잎이 돋고

나는 그가 남긴 

상처 속의 길을 외면했다

 

[당선소감]

 

 

누구나 날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번쯤 해보았을 겁니다. 새처럼 하늘을 훨훨 날아보고 싶은 생각 말입니다.

 

시를 쓰다 매듭이 풀리지 않는 밤이면 어김없이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 하나하나마다 길은 열려 있어 제각각의 형태로 음표를 그렸습니다. 시가 걸어간 자리에 알록달록 피어난 시의 칸타타. 꿈속은 금세 눈부신 시밭이 되었습니다.

 

코끼리는 상대의 이마에 코를 대고 마음을 읽는다 합니다. 시를 쓰면서‘나는 무엇을 내밀어야 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 하루도 지우지 못한 화두였습니다. 시가 일러주는 푸른 신호등 앞에 서서 생각합니다. 시의 어디쯤에 손을 넣어야 알토란 같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시의 의식과 희망이 자라고 있는 깊고 깊은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렇듯 버릴 수도 삼킬 수도 없는 詩는 늘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어느 날은 숨통을 죄기도 하고 어느 날은 뒤통수를 후려치기도 했습니다. 학이지지(學而知之), 곤이지지(困而知之)는 커녕 면강부지(勉强不知)한 아둔함에 언제나 시름시름 앓아야 했습니다.

 

입 안 가득한 떫은맛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지만 비바람을 이겨내면 떫은맛도 사라질 거라 믿었습니다. 믿음이 현실이 된 이 결실에 스스로에게 격려를 보냅니다.

 

부족한 사람을 選해 주신 한국문학방송에 감사드리며, 힘들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주변 詩 가족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심사경위]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는 당선자의 응모작품 모두를 당선작으로 삼고 있다. 응모작 중 단 한 편이라도 각 심사위원으로부터 낙제점수(소정의 채점 기준에 의거)를 받으면 당선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심사과정에서부터 작가의 역량을 보다 광범위하게 체크하여, 당선자를 보다 자신감 있게 세상에 선보이기 위함이다. 또한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로부터 정말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공모에 당당하게 당선될 만한 수준인지 평가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번 신춘문예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공지시 응모작품수를 5편으로 안내했으며, 예심과정에서 5편을 초과하거나 미달한 응모자는 심사에서 제외시켰다. 심사의 형평성 때문이다. 응모자들 중 일부는 공모규정(요강)을 주의 깊게 읽지 않고 대충 또는 건성으로 접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뿐 아니라, 분명히 공모규정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을 전화로 질문하는 등 갑갑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차년도 응모시에는 모든 응모자들이 공모규정을 먼저 주도면밀히 읽고 응모해 주시기를 이 자리에서 부탁드린다. 

 

이번 응모자는 170명 남짓이었으나, 숫적인 과다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내공(실력)이 있는 응모자가 과연 몇인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예심을 통과한 5명의 작품 25편이 본심으로 넘겨졌다. 본심으로 넘어가는 작품들은 응모자 성명, 연락처 등 인적사항이 완전히 삭제됐다. 올해 심사위원도 예년과 같이 세 분이었다. 한국문학방송 심사위원은 해마다 전원 달리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채점(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심사는 심사위원간의 작품추천 및 토론방식이 아닌, 심사위원 개별적으로 매 작품마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각각 점수를 매겨나가는 채점방식이다)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는 각 심사위원은 다른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게 진행됐다.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담당했으며, 본심은 박남주 시인(《현대문학》등단), 이화국 시인(《현대시》등단), 장종권 시인(《현대시학》등단) 등(가나다순) 세 분에게 맡겨졌다. 이번 본심에선 심사위원들이 거의 공통된 평가(채점) 결과를 보여주었기에 '원 오브 뎀(One of Them)'을 선정하는 데 별 다른 논의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이나 낙선작에 의견 등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한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어떻게 둘 것인가를 놓고 매번 크게 고민한다. 심사방식도 타 매체들과는 달리, 매 작품마다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을 구체적 평가항목으로 설정하고, 그 항목들에 미리 배점을 하여 매 작품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채점 테이블을 삽입한 가운데 채점해나가는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이러한 방식은 초회부터 해마다 동일했다. 이번 당선작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각 항목들에서 타 응모자들의 작품보다는 상대적으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가 누구인지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인비(人秘)키로 한다. 타 매체의 신춘문예나 현상공모 등에 당선된 분도 있고 기등단자로서 시집을 몇 권씩이나 상재한 분도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에서다.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진심어린 큰 감사와 아울러 아쉽게도 낙선된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당선된 분께는 큰 축하를 드린다.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역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란 말이 맞을 정도로 정말 어려운 관문이란 사실을 시행(진행)할 때마다 느끼면서,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당선자도 소위 '선택받은 시인'의 반열로 인정받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보기에 늘 긍지와 명예를 지녀 주시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박남주, 이화국, 장종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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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며 외 4편 / 천향미

 

 

길에 대한 명상은 첫 호흡부터 숨이 가빠왔어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오른 타워 전망대에서 산복도로가 있는 마을을 내려다 본 적 있었어 비늘을 세운 뱀 한 마리 산허리를 휘돌아 바다 쪽으로 꼬리를 감추었어 가난한 사람들의 공화국은 산의 칠 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었으므로 예고 없는 쓰나미에도 흔들리지 않았어 방주 같은 마을버스가 실어 나르는 소식은 자주 덜컹거렸어 유리창에 표기된 937번 번호표는 평화의 상징이 되지 못한지 오래 되었고 창틈으로 새어나온 소음이 자동차 바퀴에 깔려 불구의 언어로 너덜거렸어 소화되지 않은 날 것, 비탈길에서 체증을 앓을 때

 

막다른 골목이 허공을 지우고 계단을 만들었어

 

 

 

 

모노레일

 

 

전신암검사(PET-CT) 진료기가 사내를 스캔하기 전

의사는, 눈을 감고 두 팔을

머리위로 올리라고 지시한다

영락없는 항복의 자세

불온한 영혼이 지구를 베고 누워

비로소 겸허해지는 시간이다

X-Ray조사기 조용히 스크리닝되면서

사내의 몸이 영상으로 치환된다

별안간의 불안한 심중(心中)까지 읽어갔을까

감은 눈 속에서 의식이 흔들리자

영혼의 중심 경고 없이

방향 잃은 채 궤도를 이탈한다

폭풍을 만나 비틀거리던 몸을 세우듯 불안하지만

곧은 직선 위를 달리고 싶은 사내

손상되어 폐기하려던 마음의 횡단면 한 장

마그네틱에 재빨리 입력한다

검사를 마치고 공명통 속을 빠져나오며

걱정스럽게 내려다보고 있는 아내의 두 손을

모노레일에 달라붙듯 꼭 붙잡는다

자기부상열차처럼 마찰 없이 팽팽한

평행선을 그으며 내닫고 싶은 싸늘한 겨울 한낮

신발등에 안착한 눈송이들 금세 녹지 않는,

 

 

 

 

반시

 

 

운문사 가는 길목 국도변

사내가 씨 없는 감을 팔고 있다

바구니 마다 그렁그렁 설익은 눈망울

잠시 몽상에 잠기는 동안

주홍빛 질펀하게 절집 앞에 풀어 놓는다

맞배지붕 받치고 서 있는

배흘림기둥 오래 바라보던 사내

이태 전 배불러 집나간 아내를 떠올리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다

늦가을 햇살을 밀치며 일주문이 열리고

밀짚모자 속에 붉은 볼을 숨긴 탁발승

가사장삼을 손차양 삼아 바삐 길을 나선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깨에 멘 바랑이

풍경처럼 가볍다

사내의 눈빛, 잠시 바랑위에 얹혔다가

시계추 되어 흔들린다

더 이상 새가 날아들지 않는 감나무 한 그루

까치밥 연등처럼 높이 매달고

비구니 청정 수도도량을

밤새 비추며 서 있다

 

 

 

 

허수아비와 자전거

 

 

딸아이와 함께 간 허수아비 전시장은

추억이 뉴스가 되는 현장이다

귀밑머리 희끗한 여자가 떠올리는 그림은

어린 시절 채마밭을 지키고 서 있던 키 큰 허수아비

허름한 베옷에 밀짚모자를 쓴 허수아비를 배경으로

다섯 살 딸아이가 V자를 그린다

즉석에서 현상되는 디지털 사진처럼

고욤나무 그늘 드리워진 언덕을 내려오는 아버지,

선명하게 현상 된다

거슬러 올라 바퀴가 멈추는 채마밭 부근

허수아비 멱살을 잡고 공회전 하는 아버지

끊어진 체인이 기억 속에서 이어지고

까르르 내 웃음이 아버지의 안장을 차지하고 앉는다

헛돌던 은륜의 바퀴가 속력을 얻는다

아버지가 밟던 힘찬 페달의 힘으로

 

 

 

 

그림자를 캡처하다

 

 

그림자 하나가 왼쪽 뇌를 갈고 있다

몸을 갖지 않은 4차원의 기호로 표기되는 이름

나는 가끔 그림자의 안부가 그리울 때 있다

기억해낼 수 없는 형체를 어둠에게 물어

더듬이를 붙이고 시크릿 코드로 기록해 둔다

길게 혹은 짧게,

빈번한 입맞춤은 수신규칙이 생략되어 전송된다

몇 개의 점과 선으로 타전되는 모르스(Morse)부호

··· --- ··· --- ··· --- ··· --- ···

내란(內亂)의 징후는 말줄임표로 요약되어

다급한 당신 심장으로 타전 된다

지류를 벗어난 물소리 스며든 골짜기

빛의 발원에 관계한 적 있던 그림자

이끼로 자라고 있다

풀어보면 해독불가의 암호는 없다

12월을 뜨겁게 살았던 순교자의 흔적

골목마다 길게 핏빛으로 새겨져 있다

 

 

 

 

바다빛에 물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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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길에 대한 명상은 첫 호흡부터 숨이 가빠왔다. 한 줄의 시와 만나는 일도 그랬다. 수많은 갈래 길, 그 중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시의 길은 우윳빛 안개에 덮여 일정한 거리만을 보여주었다.

 

시란 어쩌면 미지의 안개 속을 더듬어 내가 또 다른 나에게 도달하는 길, 희붐하던 길이 세밀화 그림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여리디 여린 실핏줄인 길들과 만나야겠다.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이 내 가까이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잦은 부고와 병문안, 예기치 않게 수술방에 들어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던 일,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3개월 째 투병중인 시숙님···.

 

절박함을 눈앞에 두고 시에 매달렸던 일이 당선의 영광으로 돌아오자 나는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불온한 영혼이 지구를 베고 누워 비로소 겸허해지는 순간이다.

 

TV 뉴스에서 대설(大雪) 소식을 알리고 있다. 세상의 모난 것들 둥그렇게 순해져 길을 잃겠다. 두렵지 않다. 막다른 골목이 허공을 지우고 계단을 만든다.

 

 

 

[심사경위]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는 당선자의 응모작품 모두를 당선작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심사과정에서부터 작가의 역량을 보다 광범위하게 체크하여, 당선자를 보다 자신감 있게 세상에 선보이면서, 정말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공모에 당당하게 당선될 만한 수준인지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번 신춘문예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공지시 응모작품수를 5편으로 안내했으며, 접수과정에서 5편을 초과하거나 미달한 응모자에게는 보완토록 주문하는 등 응모자 1인당 정확히 5편씩을 접수받았다. 심사의 형평성 때문이다.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는 응모자수가 많건 적건 그 수를 일체 밝히지 않는 것을 전통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양적(量的) 우월감 과시 또는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심에서 거르고 또 걸러진 5명의 작품 25편이 본심으로 넘겨졌다. 본심으로 넘어가는 작품들은 응모자 성명 등 인적사항이 완전히 삭제됐다. 올해 심사위원은 세 분이었는데, 채점(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심사는 심사위원간의 작품추천 및 토론방식이 아닌, 심사위원 개별적으로 매 작품마다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각각 점수를 매겨나가는 채점방식이다)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의 심사진행 중에는 심사위원끼리도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모르게 진행됐다.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담당했으며, 본심은 권순자 시인(심상등단,주변인과 시편집위원), 신지혜 시인(현대시학등단, 뉴욕예술인협회장), 하상만 시인(문학사상등단, 1회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당선) 등 초·중진을 가리지 않고 선발·위촉된 분들이 맡았는데, 주어진 시간을 초과하면서까지 참으로 신중하고 꼼꼼한 평가 자세를 보여주었다. 이들 심사위원은 모두 시단에서 촉망받는 비교적 젊은 문재로써 응모작품에 대한 보다 신선한 시선, 예리한 관조,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할 정도의 집중력 등으로 심사에 임해 '원 오브 뎀(One of Them)'을 선택하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고 평가된다.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이나 낙선작에 의견 등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한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어떻게 둘 것인가를 놓고 매번 크게 고민한다. 심사방식도 타 매체들과는 달리, 매 작품마다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을 구체적 평가항목으로 설정하고, 그 항목들에 미리 배점을 하여 매 작품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채점 테이블을 삽입한 가운데 채점해나가는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이러한 방식은 초회부터 해마다 동일했다. 이번 당선작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각 항목들에서 타 응모자들의 작품보다는 상대적으로 골고루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가 누구인지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인비(人秘)키로 한다. 문단에 적지 않게 이름이 알려진 문인들을 포함하여 기성작가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프라이버시 고려가 주된 이유이다.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진심어린 큰 감사와 아울러 아쉽게도 낙선된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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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외 4편 / 서상규

 

 

그도 포유류의 유전자로 태어났다

검게 때 낀 옷을 비막(飛膜)으로 접고

막대그래프로 다리를 세워 발자국들이 지나는

지하도 바닥에 거꾸로 매달려있다

생이 뒤집힌 빈 주머니로

허기가 일상이 되어

쥐의 몸통으로 엎드려있다

햇살이 고양이털무늬로 발톱을 숨긴

바깥세상을 피해 그림자의 동굴 속에서

마른 쥐꼬리 같은 손을 내밀고 있다

손금에 절망의 궤적이 음각된

굴레를 드러내놓고 있다

 

마치 잠에 빠진 듯 미동도 없는

그가 꿈속에서 날개를 펼친다

철길에 뻗은 회귀선을 따라

관자놀이에 새파란 정맥을 일구며

유년시절을 향해 날아간다

밤하늘이 따스하게 품은 달빛으로

앙상한 흉곽 가득 양력을 부풀려 닿은 간이역

어둠의 발음으로 쉰 목젖을 감싸며

사투리가 정겹게 흘러나온다

어머니가 청색으로 물든 눈물을 닦아주며

어린 왕자의 귀한 혈통인 양

젖 냄새가 흥건한 가슴으로 안아 준다

태반 속 아기처럼 낮게 엎드린

그도 포유류의 유전자로 태어났다

 

 

 

 

술패랭이꽃

 

구겨진 지폐처럼 파도가 인다

세월의 바람에 접힌 구김살이

서러운 곡절로 실려온다

아픔을 견디다보면 추억이 되듯

상처의 무늿결을 곱게 펼쳐

한 떨기 꽃을 피운 술패랭이,

보랏빛 그늘을 드리운 얼굴에

술기운이 붉게 번져있다

쌍꺼풀수술로 초승달 눈을

보름달로 열어놓았지만

세상이 그믐달로 더 어두워졌다고

지난 시절의 흉터를 휘갑친다

구차한 목숨을 세우기 위해

지독한 돈 멀미에 휘돌리며

홀씨로 날려 섬까지 팔려왔지만

장보고 같은 남정네가 없었겠느냐

속눈썹 한 짝을 뭍에 떨군

인연의 그리운 한때를

꽃술에서 자아낸 무명실로

이불홑청을 시치듯 박아나간다

명치에 말린 응어리를 더듬으며

한 땀 한 땀 풀어놓는 첫사랑에

홍자색 낯빛을 수줍게 물들이며

분내를 폴폴 퍼트린다

사내의 거친 근육으로 일렁이던

파도가 욕망에 부푼 수작을 그치고

죄지은 듯 잔잔해진다

꽃향기에서 이는 파동이

가파른 어깨에 나비의 우화를 깨운다

몽환에 휩싸인 날갯짓으로

술패랭이 꽃품에 간곡하게 안긴다

그녀의 섬이 포근하다

 

 

 

 

마의태자

 

검은 상복처럼 입성에 때 낀

태자가 왕조의 노을빛에

긴 그리메를 늘인 채 걷고 있다

성골의 후예임을 드러내는

불거진 광대뼈와 첨성단 위에 뜬

북극성처럼 형형한 눈빛

은행나무가 단풍든 금관을 씌워주며

알알이 익은 눈물방울을 떨군다

천년 사직을 일으키소서

백성들을 굽어 살피소서

땅바닥에 그림자를 엎드려 통곡하는

가로수들이 한 발 한 걸음마다

곱게 물든 낙엽을 깔아준다

군왕은 눈물을 보이지 않는 법도에

가슴 속에서 성덕대왕신종이 울립니다

만 백성을 지키지 못한 죄인입니다

어찌 하늘을 우러를 수 있겠습니까

고개를 깊이 숙인 걸음에 옥쇄가 찍힌다

왕조를 하직할 게 아니라

왕권을 부흥시키겠다는 결의가

발자국에 돋을무늬로 되살아난다

머리 푼 바람이 태자의 큰 뜻을 읽고

서라벌로 파발마를 달린다

햇무리를 두른 환두대도의 칼날을

어둠이 칼집 속에 고이 품는다

밤하늘에서 폭포가 용틀임하듯 쏟아지는 

황금달빛의 물보라가

선왕들의 별자리를 새겨놓는다

혈맥이 뜨겁게 파동치는 지문으로

역대 왕의 이름을 짚으며

노숙자사내가 금강산골짜기 같은

서울역 지하도의 유배지에 든다

 

 

 

 

오이꽃

 

느낌표로 자란 오이 끝에

바짝 마른 꽃잎이 붙어있다

일생의 굴레를 두른

꽃자리에 어머니가 보인다

 

넝쿨로 뻗어 올라간 비탈에

밭 한 뙈기를 일군다

잎새의 호미질로 김을 매는

광합성에 땀방울이 돋아나

거름으로 발효되듯 뚝뚝 떨어진다

밭이랑이 뼛속 저리게 뻗은

지친 몸으로 노을을 끌고 와

초저녁별로 밥을 짓는다

달빛 분화구 같은 허기로

식구들이 밥 한 그릇을 비울 때

멀건 숭늉으로 끼니를 때운다

자식들의 열매꼭지가 자랄수록

목숨을 세우는 삶이 등을 짓누른다

강파른 세월의 궤적으로

마른 살에 주름이 늘어난다

관절이 닳은 무릎의 통증에

아무도 몰래 잠을 설치며

낮달같이 고된 일에 매달린다

변성기의 굵은 목청으로 여문

자식들이 푸른 화살을

세상 밖으로 쏘아 올린다

 

정수리의 백회혈(百會穴)에 뜬

어머니 별자리에서 번지는

오이꽃향기가 몸속 구석구석을

충만한 기운으로 밝힌다

 

 

 

 

푸른 논을 보다

 

막 떠오른 햇살로 촘촘히 짠

밀짚모자를 쓴 지리산이

섬진강의 물빛 흰 고무신을 신고

논두렁에 난 물꼬를 본다

지난밤 별빛의 꽃가루받이에

벼꽃이 하얗게 피어있다

배흘림줄기에서 입덧하듯

알슨 이슬이 청청 매달려있다

햇발에 돋아난 삽날로 고랑을 쳐

수로에 피돌기 기운을 채운다

잎사귀 푸르른 혈청과

물비늘의 백혈구가 무논에 일렁인다

오뉴월 볕이 거름빛으로 발효되어

굵은 땀방울로 맺힌다

지리산이 이맛전을 닦기 위해

모자를 벗은 선한 눈매가

황금이삭의 알곡을 닮아있다

간곡하게 풍년을 기원하며

산모같이 뱃구레를 부풀리는 논배미

뿌리 끝 태동이 잎줄기로 뻗친다

살여울을 일구며 돌아온 은어의

수박 향 비린내가 물살에 실려와

대궁 속 물관을 휘감아 오른다

하루의 충만한 노동으로

햇무리에서 노을이 풀린다

해거름에 꼴을 한 짐 진 아버지

고샅까지 마중 나온 아이의

작은 동산 그림자를 앞세워

천왕봉이 사립문을 들어선다

 

 

 

 

철새의 일인칭

 

nefing.com

 

 

[심사경위]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는 당선자의 응모작품 모두를 당선작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심사과정에서부터 작가의 역량을 보다 광범위하게 평가하여, 당선자를 보다 자신감 있게 세상에 선보이면서, 정말 한국문학방송 신춘문예 공모에 당당하게 당선될 만한 수준인지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번 신춘문예는 공지시 응모작품수를  5편으로 안내했으며, 접수과정에서 5편을 초과하거나 미달한 응모자에게는 보완토록 주문했다. 심사의 형평성 때문이다.

 

응모자수는 많건 적건 올해부터 한국문학방송은 일체 밝히지 않을 방침이다. 그것은 양적(量的) 우월감 과시 또는 단순한 숫자놀음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심에서 거르고 걸러진 5명의 작품 25편이 본심으로 넘겨졌다(2009년에는 10명이 본선에 올랐지만 심사위원들의 부담이 컸을 뿐만 아니라, 평가의 난맥상이 다소 감지되기도 했다. 하여, 이번에는 본선 상정 대상자를 크게 압축하였다). 본심으로 넘어가는 작품들은 응모자 성명 등 인적사항이 완전히 삭제됐다.

 

예심은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이 담당했으며, 본심은 김두한 시인(《현대시학》등단, 문학박사), 박남주 시인(《현대문학》등단), 이송희 시인(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최용석 문학평론가(문학박사, 전 중앙대 강사) 등 초, 중진을 가리지 않고 선발·위촉된 네 분이 맡아 참으로 신중한 평가 자세를 보여주었다. 초진급 위원은 보다 신선한 감각, 중진급 위원은 보다 폭넓고 깊이있는 관조 등으로 심사에 임하므로써 전체적으로 보다 객관적인 심사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이다.

 

당선작에 대한 작품평이나 낙선작에 의견 등은 별도로 내지 않기로 했다. 한국문학방송의 신춘문예는 타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과 '차별성(개성)'을 어떻게 둘 것인가를 놓고 이번에도 크게 고민했다. 심사방식도 타 매체들과는 좀 달리, 작품마다 '문법·어법·표현의 적절성', '주제와 내용의 일관성', '감동·느낌', '시적구조와 메타포의 깊이', '작품의 신선감·독창성', '작가적 역량·성장가능성' 등을 구체적 평가항목으로 설정하고, 그 항목들에 미리 배점한 가운데 채점하는 방식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그렇기에, 당선작은 그와 같은 항목들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가 누구인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인비(人秘)키로 한다. 문단에 적지 않게 이름이 알려진 문인들을 포함 기성작가들이 상당수 있기에 그분들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으로, 이러한 방침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

 

당선은 되지 못했을지라도 이번 신춘공모에 참여해 주신 모든 응모자 제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과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다음 기회에도 큰 관심과 함께 도전장을 다시 꼭 던져주실 것을 아울러 부탁드린다.

 

― 정리: 안재동 시인(한국문학방송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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