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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시 / 한귀은

 

술잔 속에서 별을 본 사람

별을 건져본 사람은 알지

몸 안에도 우주가 있어

끊임없이 연약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더불어

우리 밖 우주도 거칠게 숨쉬고 있다는 것을

사랑이 드러눕고

투쟁이 가라앉고 마침내

죽음도 작은 열매 속에서

씨를 틔워갈 때

우주를 마셔 본 사람은 알지

누구나 한 번쯤은 병신이 되고

누구나 팔뚝에 힘줄이 불끈 솟는 술이 되고

종종 눈물이 눈에 가득 차서

부르지 않아도 눈물이 호출된다는 것을

그래서 또 술을 마시지

염전 가득 하얗게 표백되어 가는 소금

그 무수한 지상의 별들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지

술잔에 시가 뜨고

시 속에도 작고 여린 우주 하나가

첫 숨을 트는 울음을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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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판에 기대어 / 김인육
- 눈오는 날에

 

창 밖을 보아라
어깨동무를 하고
가야할 곳 어디든 두려워 않고
달려가는
저 눈꽃들을 보아라
하나, 둘, 무수히
제 목숨 땅에 눕히어
하얗게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위대한 정신을 보아라
저 무욕의 자세를 보아라
이 땅 어디에서든
죽음이 축조하는 평등의 세계여
죽음으로 더욱 눈부신,

저 눈발같이
희디흰 너희들 영혼도
눈이 되는가
눈이 되어 뛰어가는가
미안하다
스무 살의 들녘에선
나 또한 하얗게 눈이 되고 싶었던 것을
미안하다
꽃이 되지 못하는
언어의 시든 풀씨여
하얗게 백묵가루로 부서져 가는 고독한 나의 정신이여
오늘은
타성으로 부끄러운 교과서를 덮고
저 눈발같이
스무 살 영혼같이
푸드덕푸드덕
나는 시늉이라도 하고 싶구나
영혼의 눈 하얗게 뜨고 싶구나

 

- 제1회 교단문예상 가작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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