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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은림에 가면 / 김대호

 

 

은림에 가면

큰 고개 아래 버스가 서고

나물 보따리와 도시로 나가 자취하는 아이들 내린다

때로는 서울로 도망간 옛날 머슴 빌린 양복으로 돌아와

몰락한 늙은 주인 무릎에서 목을 놓기도 한다

쪽문으로 담배만 팔던 가게

선거 끝나도 몇 년씩 붙어 있던 벽보

시어머니 굶겨 죽인 덕군마누라

농약 먹고 죽은 이발관 춘석 아저씨,

이제 담뱃집은 객토 사업하는

둘째 아들네 새집 지어 살고

소먹이던 아이가 군대 갈 때까지 붙어 있던 벽보는 보이지 않는다

우물가 아낙들 모이면 수다밥이 되던 덕군마누라

의심받던 정신병 커져서 어느 날 집 나갔고

그 후 소문은 무성했지만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다

백 가구 남짓 동네에 이발관 있던 그 시절

도살장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눈물 찔끔거리며 머리털 뽑혔는데

참외 농사로 대부분 부농의 자식이 된 아이들

한 시간 넘게 잡는 도시로 나가 이발하고 온다

 

고생했지만 아들 공납금이 더 무겁던 논농사 왕골 농사에서

고생은 하지만 통장이 늘어나는 참외 노사로

이곳 은림의 경작 풍경이 바뀌고 난 뒤,

제사 지내면 집집마다 음식 나누던 풍습

겨울 사랑채 모여 동치미 국물 떠먹고

뒤란 묻어둔 김치 무 서리하던 시절은 가고

화면 앞에 말없이 앉아 졸다가 잠이 들고

큰 힘이었던 소 종일 갖힌 채 사료 먹고 비육된다

 

은림에 가면,

빈 집이 늘고 남은 집들은 무너져

옥상 가진 양옥으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금상] 달동네 / 우분숙

 

 

바람의 어깨너머 살며시 고개 내미는

코스모스, 지친 나를 반긴다

좁은 골목 사이로

누이의 코고무신 같은

달님만이 비치고 있다

어둠을 몰고 온 거리에서

아이들의 딱지 치는 소리 들린다

짝 잃은 고무신 한 짝

희미하게 웃고 있다

골목 어귀 숨어 핀 맨드라미

붉은 목젖이 서럽다

어두운 달동네

코흘리개 두고 떠난

어미가 미워

혼자 울고 있는 아이,

돌아서는 그림자 속으로

달님만이 숨어 울고 있었다

 

 

 

 

[당선소감]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 순탄한 길들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오르막길을 오르고 때로는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면서 문학이란 길을 걸어온 지 4년, 앞으로도 이 길을 꾸준히 걸어갈 것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구 여성 예지 대학에서 시인 서지월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면서 조금씩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항상 좋은 시들만 엄선하여 열정적으로 가르치며 늘 문학의 정도를 일깨워 주시는 선생님께 큰 감사를 드리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목요일마다 시 창작에 몰두하는 <대구시인학교> 회원들- 이미 당당하게 등단한 이은림, 정이랑, 이향희 등 뜻을 같이한 문우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님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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