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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관목 / 최재영

 

전 생애가 꾸덕꾸덕 말라가요

누구의 음모였을까요

내 눈을 관통해 갈 야만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눈부신 햇살과 싱싱한 비린내는 덫이라는 걸

눈이 뚫리고서야 깨달아요

생을 단번에 뚫고갈 무엇이 있다면

온몸으로 안을 밖에요

내 안의 비밀 하나씩 벗겨지는 동안

피 흘릴 겨를도 없이 통증은 커지기만 하고

마침내 남은 기름기마저 떨궈내고 있네요

깊고 푸른 심해를 돌아오는 내내

내 몸엔 파도의 지문이 선명하게 찍혀

자꾸만 혹독한 풍랑을 불러들여요

달빛은 벼랑 끝까지 나를 몰고가고

바다의 기억을 말리는 보름 동안

늑골마다 숨가쁜 바람이 빼곡하죠

장대 끝에 매달려 짜디짠 굴곡을 더듬어도

출렁이는 노래는 다시 부를 수 없어요

파도를 후렴처럼 끌고 다니던 생의 구비

기억조차 서러운 경계에 이르러

더욱 날카롭게 파고드는 낯선 풍경들

아, 저기 망망대해를 마주한 당신

그 찰진 입맛으로 또 나를 관통해 가는 군요

그리하여 과메기,

 

 

 

 

 

[우수상] 호미곶, 상생의 손 /  전선용(全善勇)

 

누구를 향한 손짓인가

언젠가 다시 돌아오겠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던 영화가 문득 생각났다*

 

제 몸을 묻고 하늘을 향해 뻗은 팔

땅속으로 들어가면서 무언가 남기고 싶은 메시지 같기도 하고

뒤집어 보면 봄꽃이 새순을 밀고 올라오는 것 같다

 

허공을 떠받치고 있는 저 팔은 어느 쪽일까 궁금해졌다

솟는 것일까, 아니면 매몰되는 것일까

 

불쑥 솟은 손바닥,

삼보일배하며 오체투지를 불사른 수도자 손처럼

선명한 지문 대신 희미한 무상만 덩그러니 놓였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은 공

우주 행성이라도 담을 의문의 '클레마티스' 큰꽃으아리가 활짝 폈다

바람이 쉬어가는 자리,

갈매기 몇 마리가 해풍에 젖어 비린 부리를 닦고

갯바위가 바다를 밀어내면서 물꽃을 피운다

 

갯바위에 이끼 돋는 봄이 오면

생식본능을 발동하는 꽃들은 치마를 걷어붙인다

꿀이 흐르는 치마 속을 노려보는 눈

벌과 나비가 신전 물두멍 성수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상생이란 주고받는 것

벌이 몸부림치다 떠나간 자리

새 생명을 위한 작은 잉태가 눈꺼풀을 치켜올린다

 

바다 끝을 물고 있는 하늘과 땅은 동류

바라보며 붙잡은 손길에 무한 공감이 담겼다

주먹을 풀고 손을 활짝 편 이유를 알 것 같다

모든 것을 수용하겠다는 의지

마주하지 않으면 번식은 없는,

손가락 사이에서 끼룩거리는 갈매기

벌건 대낮에 흘레 짓 하며 상생하고 있다.

 

 

 

프로필 [profile]

- 4회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 시 부문 특선.

- 16회 용인문학 "신인상" - 시 부문

- 9회 농촌문학상 시 부문 "우수상"

- 2014년 용산도서관 두텁바우시 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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