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문학동네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구현우
도그빌
꿈에서 주운 개를 꿈 밖에서 키운다. 내가 먹는 밥을 먹인다. 내가 아는 곳으로 데려간다.
발코니로 간 나의 개는 밑에서 올라오는 담배연기를 태연히 빨아들인다.
그게 발코니의 냄새인 줄 안다.
한강으로 간 나의 개는 낯선 두 아이가 공 하나로 웃고 우는 장면을 지켜본다.
그게 가족인 줄 안다.
세탁소로 간 나의 개는 모피코트를 벗어놓고 나온 여자를 따라간다.
그게 마음인 줄 안다.
현관 앞에 멈춘
나의 개는
문을 열어두어도 안에서 불러봐도 꼼짝없이 앉아 있다.
주인과
타인이
그게 그건 줄 안다.
언제 어딘가로 사라졌는데, 나는
나의 개가 있었다는 것마저 잊어버린다.
이전인지 이후인지 모르지만
꿈에서 만난 개를 꿈에서 방치한다. 오줌을 뿌리며 따라오는 소리가 아직 뜻이 없는 낱말처럼 들린다.
꿈 밖에서 나는 혼자 이인분의 요리를 먹는다.
익숙하고도 익숙해지지 않는 도시를 걷다가
나의 개를 닮은 개와
나의 개를 하나도 안 닮은 개와
개도 아닌데 개로 불리는 남녀노소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본다.
도시는 한꺼번에 어두워지고
내가 없는데 내 방에 불이 들어온다.
자각몽
양의 이미지는 온순하지
막상
양을 그려놓고 보면
온순하지 않지
그것은 구름
그것은 연기
그녀로부터 달아나고 멀어지다가
빨간 기와가 붉은 벽돌이었단 사실과
울타리 너머도 울타리란 걸 알았을 때
그 때 나는
새하얘졌어
이해하기 전에 뭉게구름
뒤로 뭉게구름이 지나가
변명하기 전에 담배 끝에서
연기가 이어지고
연기로 이어지고
끝나버린 연애가 계속되고 있어
주파수를 돌려
오래된 노래를 틀어놓고
그녀를 알기 전의 내가 되어서
백 마리 이백 마리
양을 세
눈꺼풀을 내렸다 들어올렸다
반복하다가
환상이었던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던가
진짜 양을 보지 못했으니까
진짜 양은
가짜 늑대에게
잡아먹혀버렸으니까
허브
날마다 탁자에서 허브가 자란다. 허브를 먹으며 동생이 자란다. 귀가 얇은 식물은 모든 감정을 이해한다.
모르는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커브 아이와 어른 오가는 발에 차일 때마다 쓰임새가 달라지는 돌, 돌,
동생과 나는 같은 탁자를 쓴다.
탁자는 넓고 허브는 많고 동생은 탁자의 허브 또는 허브로 된 탁자를 먹는다. 탁자는 식탁으로 쓰일 수 있다. 책상으로도 쓰일 수 있다. 허브로 된 탁자는 자라는 성질이 있다.
담 하나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쌓인다.
밤마다 담을 두드리는 소리 똑똑 쿵쿵 흑흑 하나둘, 하나둘,
나와 동생이 칼날과 연필로 새긴 수만 가지의 틈,
허브가 시들어 죽는다. 그래도 상관없이 동생은 자라고 있다. 탁자는 딱딱한 성질이 있으며 그건 죽은 동물의 시체에서나 만져볼 수 있다.
허브든 탁자든 결국 관상용 식물이 된다.
나는 오른쪽으로 동생은 왼쪽으로, 다를 것 없는 심정으로.
자꾸만 벽돌이 쌓인다.
들은 적 없는 울음소리가 낯익어지면 가족이 된다.
날마다 골목이 늘어 많아지는 서랍 하나둘, 하나둘.
허브를 씹으며 현관을 나서는 동생과 나,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목격자들
탁하고 번뜩이는 눈빛 야생의 너와 나, 다져진 나와 너는 살아서는 친해질 수 없을 테지만
물체와 나, 이렇게 만났으니 더듬더듬 만져봐도 괜찮지
뺨을 너와 맞대던 줄무늬고양이는
수풀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아 보이지 않지만
목소리가 들려
수풀- 너머 아파트의 외벽, 그늘, 창문, 그러니까 그즈음의 영역이 줄무늬고양이가 되어
울고 있어
나와 같은 곳을
행인들과 주민들이 보고 있어 다만
내가 본 것과 다른 고양이를 보고 있거나
줄무늬를 기억하거나
아니면
또 다른......
물체가 된 너는 도로 위를
구르고 구르지
인간적인 눈이 많은 번화가의 밤이라
생물이던 너, 사물로 남은 너는
프레임 속에서 요리되는 중이야
맹목적인 눈도 의심 섞인 눈도 아닌 인간적인 눈
표지판과 빵 냄새와 영어 학원과 알코올이 뒤섞인
그림자가 따로 걷고 있어
기묘하게도 너를 꼭 닮아
마치 사람인 것도 사람이 아닌 것도 같은데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어
누군가 받았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무언가
통째로
삼겨버렸어
본능 이상의 것
폭설이 우리를 산장에 묶어두었다. 주인 없는 산장에서 보낸 이틀. 눈은 한시도 그치지 않았다. 산장이 눈에 파묻히지 않는 게 안도와 오해를 낳았다. 우리는 네 명이고 이틀 전에는 세 명이었다. 산장보다 좋은 곳을 찾으러 간 한 사람, 나빠져도 혼자가 좋다던 한 사람 있었다. 너희 말을 도저히 더 못 들어주겠다고, 차라리 눈 속으로 들어갔다. 모르는 두 사람은 언제부턴가 우리는 함께였다. 식량이 반에서 반으로 줄고 있었다. 산장은 아주 따뜻해서 지내는 동안 방한복을 벗고 있었다. 산장은 아주 넓어서 우리가 안 쓰는 방들이 수십 개가 넘었다. 먼지 쌓인 빵을 먹으며 우리는 정도껏 쌓이는 눈을, 겨울이 지나고도 비참히 내리는 눈을 보았다. 장작이 떨어지자 의자 다리를 부러뜨렸고 의자 다리를 잃어버리자 소설을 넣었고 소설이 재가 되자 역사를 던졌고 역사가 사라지자 성경을 찢었다. 잡담이 아니라면 말을 아꼈다. 벽난로가 식고 우리는 세 명이 되었다. 따뜻해졌다. 빵 대신 빵가루 묻은 먼지를 먹었다. 우리를 떠난 그 사람이 더 잘 지낼 거란 생각이 들어서 슬프게 추웠다. 눈이 비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산장을 떠날 수 없었다. 이미 내린 눈이 녹지 않은 채 얼어붙었다. 식량이 떨어지고 우리는 두 명이 되었다. 배가 불렀다. 여름이 분명했는데 우리는 산장에 묶여 있었다. 소모적인 대화가 계속되었다. 눈과 비가 절반씩 내리고 있었다. 춥고 배고팠지만 우리는 한 명이었다. 혼잣말을 하다 죽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우리에 관한 뉴스가 평생 실종으로 보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구현우 1989년 서울 출생. 안양예고와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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