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의 그늘 / 우대식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시라
이 가을날 나의 사랑을
얼마 남지 않은 저 잔광의 빛으로
당신을 몰고 가는 일
그것이 내 연애법이다
그 몰입에 얼마나 당신이 괴로워했을 줄
모든 빛이 꺼지고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처럼
당신과 내가 어느 풀밭에 앉아 있다 하자
젓가락을 들어 당신은 내 입에 음식을 넣어준다
음식 밑에 바쳐진 당신의 왼손
그 아래로 그늘이 진다
왼손의 그늘,
지상에서 내 삶이란
당신이 만들어준 왼손의 그늘에서 놀다 가는 일
놀다가 가끔 당신이 그리워 우는 일
코스모스처럼 내 등을 툭 한번 쳐보다가
돌아가는 당신의 늦은 귀가
그림자가 사라질 때
나의 연애는
파탄의 골목길
용재 오닐의 비올라 소리 같은 깊고 슬픈
당신의 오랜 귀가
[심사평]
특히 매회 수상자에서 비껴간 우대식의 시가 이번 수상 대상자로 심사위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우리 시의 흐름이 지닌 어떤 영악스러운 계산성에 그가 그동안 편승하지 않고 묵묵히 극복해가고 있는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 나는 그의 어눌한 연애가 갖는 그만의 파탄의 골목길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한다. <왼손의 그늘>! 그것이 보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이 바로 파탄의 골목길이다. 그 삶의 환유를 우리는 소중하게 읽어야 한다. — 정진규
우대식의 시에는 살아온 자기 생의 상처가 있고, 고뇌하는 자기 생의 사유가 담겨 있다. 언어로 그린 간결한 이미지의 데생 같은 우대식의 「시詩」는 지금까지 살아온 시인의 가파른 삶의 궤적을 나타내 보인다. 자기 삶과 시와의 대비가 간결하고 극명하게 드러나 있는 이 같은 우대식의 진일보한 화법은 시로서의 높은 성취를 보여준다. — 김종해
그의 시 가운데 「왼손의 그늘」에서 그 떨림은 사뭇 독특한 반향을 일으킨다. ‘지상’의 화자가 ‘놀다 가는’, 그러다가 ‘당신이 그리워’ 울 수밖에 없는 ‘당신이 만들어준 왼손의 그늘’은 황량한 만큼 아름답고 아름다운 만큼 황량한 역설의 미학을 드리운다. — 오태환
시가 만들어주는 <왼손의 그늘>에서 놀다 가는 일이 얼마나 쓸쓸하고 애틋한지 그는 늘 돌아가려는 곳이 있어 보인다. 그곳이 고향 같기도 하고 애인의 품속 같기도 하고 그가 추구하는 시의 아름다움이 완결되는 곳 같기도 하다. — 조말선
'문예지작품상 > 현대시학작품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 현대시학작품상 수상작 (0) | 2018.09.07 |
---|---|
[스크랩] 제15회《현대시작품상》수상작 - 거리의 왕 노릇 외 9편/이재훈 (0) | 2014.11.02 |
2012년 현대시학 작품상 (0) | 2014.06.15 |
2011년 현대시학 작품상 (0) | 2011.08.29 |
2010년 현대시학 작품상 (0) | 2011.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