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옆구리를 긁다 / 임솔아

 

 

빈대가 옮았다 까마귀 몇 마리가 쥐 한 마리를 사이좋게 찢어먹는 걸 구경하다가 아무 일 없는 길거리에 아무 일 없이 앉아 있다가 성스러운 강물에 두 손을 적시다가 모를 일이지만 풍경의 어디선가

 

빈대가 옮았다 빈대는 안 보이고 빈대는 안 들리고 빈대는 안 병들고 빈대는 오직 물고 물어서 없애려 할수록 물어뜯어서 남몰래 옆구리를 긁으며 나는 빈대가 사는 커다란 빈대가 되어간다

 

비탈길을 마구 굴러가는 수박처럼 나는 내 몸이 무서워지고 굴러가는 것도 멈출 것도 무서워지고

 

공중에 가만히 멈춰 있는 새처럼 그 새가 필사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처럼 제자리인 것 같은 풍경이 실은 온 힘을 다해 부서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모래들이 있다

 

빈대는 나 대신 나를 물어 살고 빈대는 나를 물어 나 대신 내 몸을 발견한다 빈대가 옳았다 풍경을 구경하다가

 

 

 

 

2013 신춘문예 당선시집

 

nefing.com

 

 

 

[당선소감] 시는, 아침마다 버려지는 일 나를 격려해준 사람들에게 감사

 

   앞집 아이가 리코더를 분다. 절름발이처럼 그 소리는 뒤뚱거린다. 가끔은 삑삑 파열음을 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주뼛주뼛 웃는다. 아이는 앞집에 있고, 나는 내 방에 있지만, 소리는 앞집과 나의 방을 건너다닌다. 창밖과 창 안을 건너다닌다. 조용히 해, 개새끼야, 어른의 목소리가 들리고, 리코더 소리는 싹둑 잘려나간다.

 리코더 소리는 매일 잘려나간다. 그래도 아이는 매일 꿋꿋하게 리코더를 분다. 나는 리코더 소리에 맞춰 엇박자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톱을 깎는다. 내 몸에서 자란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똑딱똑딱 자를 수 있다는 게 이상하다.

 손톱은 왜 그렇게 꿋꿋하게 자라나는 걸까. 하지만 죽은 사람의 손톱은 자라지 않을 테지. 이런 것들이 시라고 여겨 왔다. 그것을 나는 가능성의 절룩거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침은 번번이 나를 세상에 내팽개치고, 아침마다 나는 그 사실에 어쩔 줄을 몰라 해 하고, 어째서 꿈은 나만 이 세상으로 내쫓는 것일까, 그 비밀을 아침마다 매일매일 알고 싶어 한다.

 이렇게 아침마다 버려지는 일을 시라고 여겨 왔다. 나의 파열음이 보석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해주신 나의 선생님 김소연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그 말씀은 실은 불가능한 약속 같았지만, 나는 매일매일 간절하게 그 불가능을 믿었다.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nefing.com

 

 

 

[심사평] 차고 세심한 상상의 기류 이미지의 변주 시도한 수작

 

 신인의 순간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제 막 시인의 자리로 들어서는 한 사람의 것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순간이랄 수 있는데, 우리는 신인의 순간을 통해서 호흡을 환기하고 새로운 조짐을 투찰(透察)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인을 맞이하여 우리 시는 그 처음이 되는 자리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순간을 위해 올해 중앙신인문학상에는 총 743명이 투고했다. 이 대부대에서 예심을 거쳐 14인이 본심에 올랐다.

본심에 오른 작품 중 최종적으로 박세미·김희정·임솔아씨의 작품이 논의됐다. 박세미씨의 작품은 ‘미미’나 ‘검은 콩 하나가 있다’ 등에서 잘 조율된 장면의 교류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이 조율의 촘촘함 때문에 좀 더 무심하게 멀리 진전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검은 콩 하나가 거대한 식칼의 날을 마주보고 있다’와 같은 강인함이 어조와 형식의 유인을 뚫고 날카롭게 살아 움직였으면 하는 바람이 뒤따랐다.

김희정씨의 ‘동생을 지켜라’ 등은 다양한 착상과 활달하고 서슴없는 포착이 매력적이었다. ‘저주파의 침묵은 늙은 벽들의 고막을 시원하게 긁어준다’와 같은 구절에서 보이는 거의 반사적 감각이 돋보였다. 그런데 이 감각이 ‘카톡카톡, 나비를 부름’이나 ‘아프리카 1호점’에서 감각의 전면전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감각의 재능으로 일정하게 회귀하고 마는 점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임솔아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하는 데에 이론(異論)이 없었다. 보내준 11편의 작품 각각이 완성도가 높은 풍광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옆구리를 긁다’ ‘두꺼비’ ‘꽃들은 오월에 완벽했다’는 서늘하도록 선명하고 넓으며, 위태로우면서도 태연하다. ‘옆구리를 긁다’는 ‘빈대가 옮았다’에서 시작해 ‘빈대가 옳았다’로 나아가기까지의 이미지의 변주를 시도한 수작이다. 주체를 존재와 비존재의 전위(轉位)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장소가 되게 하는 ‘빈대’는 역동적이고 다면적으로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힘차고도 세심한 상상의 기류라 할 수 있다.

 

본심 심사위원=김기택·이수명(대표집필 이수명)/ 예심 김행숙·신형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