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수상] 아이 / 김영희
아이는 물속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반쯤 걸친 점퍼에서 봄이 어정거린다.
아이가 가고 그 자리에 서서
물밑을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산이 있고
집이 보였지만
사람모습은 없다.
고개를 들었을 때 아이는 저만큼 가고 있다.
아이를 부르려고 입을 벌렸으나
너무나 조용하여
소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다시, 물속을 내려다본다.
물결이 바람을 몰고 다닌다.
피라미새끼하나 보이지 않고
바닥은 말갛다.
아이는 좁고 긴 둑길 끝으로 멀어지고 있다.
물에 햇살이 바스라 지며
조각조각 떠다닌다.
반짝 돌아보는 아이, 빛이 모아진다.
[우수상] 명파리에서 / 김철향(본명 金滿年)
1
더는 갈 수 없어
7번국도 끊어진 길 위에서
나는 오랫동안 북녘 땅을 바라보았네
녹슨 바람 가르며
오래전에 떠난 길 하나
묵은 곰솔 수북이 키우며
아슴아슴 늙어가고 있었네
저 길을 따라 자박자박 걸어가면
은모래 넘실대는 명사십리지
저기 구선봉 발아래 잠길락 말락
가뭇이 떠있는 섬이 해금강이지
걸어서 시오리 길
흐린 날에는 바다 새 울음소리도 들리지
송곳니 세워 가르릉거리는 철책너머로
통절痛切한 길 하나
그렇게 가물가물 울먹이고 있었네.
2
허리 잘린 절개지
명파리 바닷가에는 언제부터인가
기다림에 짓무른 눈빛들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었네
그리움도 오래되면 박제 되는 걸까
명태처럼 쪼글해진 눈빛들
쪽빛대문에 걸어놓고
낡은 세월 한 올 한 올 깁고 있었네
허기진 기억 한 톨이라도 붙잡고 싶은지
구부정한 지팡이 탁탁 치며
밀려오는 졸음 쫓고 있었네
먼 바다로 늙은 귀 열어 두고
나즉한 해조음 따라
느릿느릿 북향 길 떠나고 있었네
3
이제 그만 통문痛門을 열어야겠네
어메 허리춤에 촘촘히 박힌
녹슨 대못 불끈 뽑아
꽃삽을 만들어야겠네
들쭉 꽃 애기진달래 빼곡히 심어
톡톡 꽃물 터지는 소리로
한나절 울어 누울 꽃밭을 만들어야겠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네
툭 터진 실핏줄 따라
아배 떠나오던 쑥국 길
절룩이며 걸어가야겠네
철책 마디마다 말간 혈이 돌아
찔레꽃 하얗게 피어나는 길을 살아서
살아서 돌아가야겠네
늙은 길이 돌아눕기 전에,
* 명파리: 강원도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휴전선 접경마을로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
[우수상] 날치횟집 / 지영환
[우수상] 별이 빛나는 밤에 / 임종훈
[장려상] 지금은 참선 중 / 정승렬
[장려상] 나에 사알던 고향은 / 정영채
[장려상] 나는 죽어야 산다 / 문영일
[장려상] 부두의 꿈 / 박현조
[장려상] 유년의 가을 / 김태옥
[장려상] 섬진강2 / 정윤순
[심사평]
예년에 비해 응모 편수가 점차 늘어 가고 있다는 것은 퍽 반가운 일이다. 올해에는 총 응모 편수2818편 가운데 시 작품이 1913편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마지막까지 올라온 작품들은 상당한 수준작들이었다. 시의 구성력, 이미지 처리, 그리고 리듬과 호흡들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인다운 신선감은 떨어진다는 느낌이었다. 기성인들의 시적 분위기보다는 소박하면서도 진솔하고 참신성을 주는 시가 오히려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최우수작으로 뽑힌 김영희의 '아이'는 호수 주변을 거닐며 물속에 투영된 내재적인 세계를 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심도 있는 이미지화에 호감이 갔다. 일상어를 무리 없이 구사한 작품으로서 엄밀한 시적 구조와 의미의 명징성이 드러나 있고, 리듬감 있는 구성력을 높이 사 최우수작으로 결정하는 데 이의가 없었다.
우수작으로 선정한 김만년의 '명파리에서', 지영환의 '날치 횟집', 임종훈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평범한 소재에서 정제된 언어를 가지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세 편 모두 주정적인 이미지의 내면세계가 차분하게 형상화됨으로써 전체적으로 시의 내용이 쉽게 전달되고 있다.
장려상으로 뽑힌 정승렬의 '지금은 참선 중'외 다섯 편도 우수작에 거의 근접한 수준들이었으나 안이한 시적 발상, 시적 구조와 섬세한 시적 표현 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끝으로 이름을 숨겨 응모한 기성이 있거나 표절이 있을 경우를 대비해 후보작 세 편을 예비해 두었음을 밝혀 둔다.
이제 문단의 일원으로 등단의 영예를 안게 되는 최우수작 입선자(月刊文學당선자와 동일한 예우를 받게 됨-편집자)와 그 밖의 입선자들의 치열한 투혼과 미래를 기대하면서 더욱 분발해 주기를 바란다.
- 권용태, 신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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