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매 / 이주연
할매는 올해도 어김없이
내 손을 이끌고 향하는 곳은 철쭉이 만발한 도라산전망대
고쟁이 속 쌈짓돈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3장의 눈물의 지폐를
나는 달그락 소리내며 6개의 위안동전으로 대답한다.
할매는 동그란 두 개의 창에
삼촌의 이름을 부르며 오십여년의 시간여행을 떠난다.
할매는 꼭 살아 돌아오겠다던 삼촌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삼촌이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철쭉화단을 머리에 얹은채
눈물범벅으로 삼촌과의 마지막 이별을 하고 있다.
할매는 올해도 어김없이
철쭉이 만발한 도라산전망대에서
삼촌과 빼닮았다하는 내 얼굴 어루만지며
오십여년의 짧은 시간여행을 마무리한다.
할매는 6개의 동전에
오십여년의 기다림을!
오십여년의 ..을!
오십여년의 모정을 담아내고 있다.
지리산 위령제 / 장세진
-철쭉꽃
세석에서 천왕봉까지
낮게 포복해서 넘어가는 빨치산 같은 철쭉들
콩알처럼 돌돌 뭉쳐진 화약 꽃망울을
무수히 쟁여 놓았다가
지지직 꽃망울 속의 뇌관을 향하여
사월의 햇살들이 기관총을 당기듯이 타들어간다.
팔이 잘린 상이군인 같은 고로쇠나무들이
다리 잘린 미군포로 같은 갈참나무들이
타다다닥 연발탄 터지는 소리를 내고
다채색의 폭발음이 잇달아
그날처럼 지리산 계곡을 핏빛으로 물들인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코를 막고
가만히 엎드린다 엎드려 그날처럼
지천에서 쾅쾅 터지는 수류탄 터지는 소리에
푸른 바람이 되어
동굴 깊이 숨은 봄들이 빨치산처럼
손을 번쩍 들고 걸어 나오길 기다리는 것처럼
꽝꽝 터지는 철쭉들의 짙은 꽃내음이
화약냄새처럼 가득한 지리산 위령제에서,
나 한때 빨치산 나의 아버지의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총알 같은 아픔을 깨물고
여기저기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아침부터 내리는 봄비들은 발목이 달아난 채로
저 들판 어디 발목지뢰처럼 묻혀 잠든
씨앗이라도 밟았는지,
스멀스멀 아지랑이 피는 계곡마다
기어오르는 다래 넝쿨들도 탁탁
천왕의 고지를 탈환하지 못한
혼들을 위로하는지
탁탁탁 축포를 무한정으로 쏘아댄다.
한탄강의 실안개 / 이재석
푸른 물결이
힘줄로 불끈 솟은
평강군 백암산(......)
실개천을 모아 모아서
새벽의 그리움에 등 떠밀려
살얼음 낀 잠을 털어 내고
굽이굽이 실개천 어깨동무하면
황톳물 속에
단단하게 박힌
옹알이 풀어 헤치며
온몸을 내던져
물길을 감싸주는 136 킬로
분단의 허리를
깨우며
상처난 협곡에서
푸른 바람이 되어
부딪히고 깨어난 동족이
깊숙이 묻어둔
긴 아픔을 어루만지는
江..
까맣게 타버린
가슴앓이로
깎아지른 사상(....)에
한 서린 울부짖음이
온몸을 휘어 감으며
발목 묶인 채로
멈춰야했던 서러운 땅
하얗게 누워있는
이름 없이 산화한 혼이
분단 문을 밀고 있는데
남북의 강심(江..)이 몸을 섞으며
설움을 떨쳐내고
파도가 밀려와 하나가 되는
강이 얼싸 안으며
실안개가 먼저 피어나
아픔을 묻어 버린다
'국내 문학상 > 보훈문예공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6년 보훈문예 일반부 우수상 (0) | 2013.04.20 |
---|---|
2006년 보훈문에 일반부 최우수상 (0) | 2013.04.20 |
2005년 보훈문예 일반부 우수상 (0) | 2013.04.20 |
2005년 보훈문예 일반부 최우수상 (0) | 2013.04.20 |
2004년 보훈문예 일반부 장려상 (0) | 2013.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