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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몸을 열어 / 정경희

 

오이도 낙조대를 오르며 미라를 꿈꾼다

염치없이 날마다 불어나는 몸

세계를 수축시킬 수 없다면 내장을 꺼내어 바닷바람에 널고

차라리 몸을 말려 아픔을 줄여가리

식량은 밥도 빵도 아니다

향기로운 말씀이다 공기다

하는 일이란

딱딱한 호두껍질 속에서 미로찾기를 하거나

헉헉대는 할머니의 허리 굽은 숨을 넋놓고 바라보는 일

꼴찌로 돌계단을 내려오던 다훈증후군의 아이는

도시락을 준다는 선생님의 말에 다다다 달려간다

아이는 아직 잘 모른다

무거운 몸은 내 몸이 아니라는 걸

고통을 쓸어내리면 껍질처럼 가벼워진다는 걸

가벼워져야만이 몸을 내 속에 가둘 수 있다

싸리빗자루 파도는 뱃 속 쓴 물을 긁어내고

바다는 검은 배꼽을 말리고 있다

이제 하늘을 향하여 가부좌를 틀고

소나무 껍질을 씹는 일이 내게 남은 일

주름거죽에서 터져 나온 솔씨들 하얗게 날라간다

뻗쳐오르는 살을 환도뼈에 깊숙이 구겨 넣고

나는

부릅뜬 눈으로 수축된 문장들을 읽어야 겠다

부들이 마른 몸 켜는 소리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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