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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의 거리 / 최승철

 

  상점이 닫히고 오래 준비된 침묵이 찾아온다
  찢긴 종이들이 우우 소리를 내며 시간 위에 날린다
  표정 잃을까봐 도시의 밤을 뚫고 간다
  아스팔트 위를 뚫고 간다 악을 쓰며 지나간다
  무언가 눈으로 꽉 메어져 왔다 흩어졌다
  변압기에서 찌이익 고압 전류가 타고
  어떤 곳에서도 덧난 상처들은 비명을 질러대지 않았다
  아버지를 피해 떠돌아 다니는 부랑 소녀를
  역전에서 만나 나는 소주 몇 잔에 눈이 붉어졌다
  곰팡 번진 벽지처럼 젖은 안개가 흐물거리며 내렸다
  나는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다 이상도하지
  무너지지 않는 고층 건물 난간에서 다시
  한번 마주보는 바닥과의 거리를 인정한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개의 눈이 빛났다
  한때 별들이 알약으로 뜨는 줄 알았어요
  그녀는 시신경 풀린 눈동자로 가로등을 바라보았다
  눈이 꽉 터질 것만 같다 울음을 잊고 싶은 건
  어머니의 자궁을 떠난 이후부터였을까
  그녀의 손톱이 내 가슴을 할퀴며 어디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
  마른 가로수에서 장마철 습한 공기가 새어나오고
  안개는 발목 아래로 깔리며 우우
  나는 더 깊게 신음(집에가자집에가서이야기하자)했다
  안개 밖으로 떠도는 바람의 환유, 돌아보면
  피톨 밖으로 새어나간 體溫이 가늘게 떨렸다

 

 

 


 

신림동 마을버스 / 최승철

 
    밥알 닮은 눈빛들 손잡이를 찾는다
    구두굽이 어느새 한쪽으로 찌그러 들었다
    창 밖으로 긴 머리 여자가 울고 있다
    곧 나타난 취중의 사내는 자꾸 여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려 애쓴다
    이혼한 형이 생각나려는 순간
    호프와 양주의 입간판이 좌회전에 쓸린다
    마을버스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을
    순대 속처럼 하나의 움직임으로 단단하게 움켜쥔다
    신림동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창자를 따라 내려가는 음식물이 이러할까
    헤드라이트가 골목에 주차된 차 밑을 비춘다
    오래 묵은 담배꽁초와 찢어진 정보지 한 장
    불빛 사이로 잠시 비쳤다 사라지고
    공복으론 눅눅한 얼굴들 몇 들어왔다 밀려난다
    충청도와 전라도 사투리를 흉내내던
    나에겐 그만그만한 중소 도시가 고향이었다
    마을버스는 정차할 때마다 변비 앓듯 사람들을 쏟아놓는다
    불 꺼진 반지하의 어둠을 더듬는 손,
    센서등처럼 어떤 지나침에 심장 두근거리면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떠올린다
    그 뒷 배경이 어지럽게 파꽃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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