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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별 연애 지침서 / 이면(임현)


자판기

자판기 커피를 뽑을 땐 누군가 불쑥 내 손을 움켜쥘 것만 같아 허리를 숙이고 세상 가장 좁은 문에 기어들 듯 들여다보지 그러면 거기 작고 하얀, 뜨거운 손과 악수 할 수 있어 누군가의 심장을 녹여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지 몰라 데면데면한 얼굴들 사이에서 홀로 뜨거운, 키―스 들었어? 지금 네 손에서 뛰고 있는 그 박동소리


무엇보다 밀고 당기는 게 중요하죠 무턱대고 들어가려 했다간 벽이 됩니다 이건 원리예요 쉽게 변하지 않아요 열 번 두드려 안 열릴 문 없다지만, 요즘 세상에 어디 가당키나 한가요? 달로 내딛는 첫발처럼, 그래요 지구인을 위한 이벤트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쇼라구요 자존심은 6분의 1 만능열쇠나 맞는 열쇠나 그게 그거 아닌가요? 어쨌든 열어보란 소립니다 노크는 필수 기본부터 지켜요 그런데, 아까부터 왜 자꾸 밀어요? ‘당기시오’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윈도우

정기적인 업데이트 요망


막차

누군가의 내장이 되는 일이란 몰려오는 잠처럼 지루해 버튼같이 불거진 젖꼭지를 붉어질 때까지 누르고 싶어져 따옴표처럼 손을 들고 있어야 할 때도 있지 할 말 따위 그 안에 갇혀 들리지 않아 귀를 숨기고 자는 사람들 풍경이 바뀌어도 자리를 비킬 줄 몰라 동전 같은 무표정을 흔들고 싶어 꿈들이 짤랑짤랑 튀어나와 차창에 엉겨 붙을 거야 덜컹거리는 연애는 멀미가 나 뿌옇게 흐려지는 건 밖이 아니라 네 눈꺼풀이야 나는 온몸이 귀 먹먹한 고막을 뚫듯 밤을 미는, 지루한 숨소리를 듣는 중이지

 

 

 

꿈꾸는 거인 / 김효용


달의 지면을 외눈의 거인이 걷는다 당신의 방까지 이어진 가느다란 진동을 오랜 청취자인 화병이 듣고 있다 수도꼭지가 반쯤 자세를 틀고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감상을 쏟아놓는다 이국의 땅을 돌아온 침묵이 달의 계곡에 쌓이고 있다 들끓는 그 곳을 건너는 거인이 당신의 꿈을 꾸고 있다 길은 달의 뒷면으로 이어져있다 당신이 수도꼭지를 틀고 화병의 물을 가는 사이 달이 몸을 튼다 거인이 심연을 낚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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