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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 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해변의 발자국 / 유홍준


얼마나 무거운 남자가 지나갔는지

발자국이, 항문처럼

깊다


모래 괄약근이 발자국을 죄고 있다

모래 위의 발자국이 똥구멍처럼, 오므러져 있다


바다가 긴 혀를 내밀고

그 남자의

괄약근을 핥는다


누가 바닥에 갈매기 문양이 새겨진 신발을 신고 지나갔을까?


나는 익사자의 운동화를 툭, 걷어찬다

갈매기가 기겁을 하고 날아오른다






깊은 밥그릇 / 유홍준


못쓰게 된 밥그릇에 모이를 담아

병아리를 기른다 병아리가

대가리를 망치처럼 끄덕그리며 모이를 쫀다

부리가 밥그릇 속에 빠져 보이지 않는다

더 깊이 주둥이를 먹이에 박으려고

앞으로 기울어진 몸

발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깊은 밥그릇, 병아리를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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